"나는... 살고 싶지 않아..."
그 말은 조용했지만, 온 방 안을 흔들 만큼 강했다.
오래된 아파트, 낮은 천장과 어두운 거실.
햇살은 창문 커튼 사이로 조심스럽게 들어오고 있었지만,
공기 중엔 낡고 가라앉은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 공간 한가운데, 침대도 아닌 작은 요 위에 한 어르신이 누워 계셨다.
그 집은 처음 들어섰을 때부터 마음이 먹먹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공간.
마루 한쪽에는 지적장애가 있는 따님의 물건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식탁 위에는 며칠째 치우지 못한 반찬 그릇이 있었다.
살림이 곤궁하다거나 지저분하다는 말은 맞지 않았다.
그보다 '살림이 멈춰 있는' 느낌. 그 집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 같았다.
어르신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식사도 잘하시고, 거동도 가능하신 분이었다.
우리가 정기 방문할 때면 몸을 일으켜 인사도 해주시고,
따님의 안부를 먼저 이야기하셨던 분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요양보호사 선생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어르신이 며칠 전부터 설사를 자주 하시고, 기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계세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당장 가봐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나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정적을 느꼈다.
그것은 육체의 무게가 아니라, 영혼의 침묵에 가까웠다.
어르신은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 계셨다.
얇은 이불 아래로 드러난 팔은 앙상했고, 요부에는 욕창이 크게 번져 있었다.
그러나 의식은 또렷했다.
그리고 또렷하게, 그분은 내게 말씀하셨다. "나는... 살고 싶지 않아..." 나는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의료인으로서, 누군가의 생명을 붙드는 일을 사명처럼 여겨왔던 나로서는
그 말 앞에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살고 싶지 않아."
그 말은 마치 오랜 고통 끝에 마주한 마지막 감정처럼 너무나도 절절하고 무거웠다.
무엇이 그 마음을 그렇게 만든 걸까.
고통이었을까. 무력감이었을까. 혹은, 더 이상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 외로움이었을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그분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고, 가만히 곁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의료인으로서 나는 그 말을 그대로 두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의식이 있는 이상, 최소한의 영양과 수분, 통증 조절은 지속되어야 했다.
우리는 욕창 부위를 정성껏 소독하고, 수액으로 영양을 공급하며,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약물 조절도 함께 시작했다.
그런데 이튿날, 수액줄이 빠져 있었다.
우연히 빠진 게 아니었다.
딸이 집을 잠시 비운 사이, 어르신이 스스로 그 줄을 빼신 것이었다.
그 사실을 들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다시 물었다.
"정말... 수액을 원하지 않으세요?" 그분은 고개를 천천히, 단호하게 저으셨다.
그제야 나는 완전히 침묵했다.
무엇이 맞는 일일까. 우리는 지금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까.
그분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우리는 계속해서 수액을 놓고, 소독을 하고, 필요한 처치를 이어간다.
하지만 그 '살리기'라는 행위가 정말 그분의 뜻일까?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누구도 틀리지 않았지만, 누구도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
그게 '가정 내 임종'의 현실이었다.
며칠 후, 어르신은 딸이 옆에 있는 새벽 시간,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그 얼굴은 평온했다.
마치 할 말을 다하고 떠난 사람처럼. 장례식장. 딸은 내 손을 잡고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엄마가 마지막엔 많이 아프지 않으셨겠죠?"
나는 잠시 뜸을 들인 뒤 진심을 다해 대답했다.
"아니요. 마지막엔 정말 조용하고 평화로우셨어요."
그 말을 들은 딸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흘렸다.
그 옆에서 요양보호사 선생님도 함께 울고 있었다.
우리 팀은 모두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깊은 곳엔 말할 수 없는 질문 하나가 아직 남아 있다.
그분의 마지막 바람을 우리는 얼마나 들여다보았을까.
가정 내 임종은 언제나 '선택의 연속'이다.
무엇이 최선인지,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는 언제 멈춰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자문하게 된다.
"나는 살고 싶지 않아." 이 말은 단순한 체념의 언어가 아니다.
어쩌면 '이 고통을 알아달라'는 절박한 외침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삶의 끈을 놓겠다는 표현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마지막으로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은 신호일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단순히 생명을 유지하는 의료인이 아니라,
그 마음의 문턱 앞에 함께 서 있는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가정 내 임종은 결코 단순하거나 매뉴얼대로 되지 않는다.
어느 순간은 따뜻하고, 어느 순간은 흔들리며,
어느 순간은 고통스러울 만큼 모호하다.
하지만 그 불확실함 속에서 우리가 놓지 말아야 할 단 하나,
'진심으로 곁에 있었다는 기억.' 그 기억이 남겨진 이의 마음을 붙잡아줄 수 있기를.
그리고 다음 돌봄의 길에서 우리를 다시 한 걸음 나아가게 해주기를.
이 이야기들은 곧 출간될 책에서 더욱 완전한 모습으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함께 있었기에, 이별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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