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은 이미 배의 선실처럼 변해 있었다.
아이들의 유쾌하고 비밀스러운 계획의 무게로 2학년 3반 교실이 앞뒤로 옆으로 출렁거렸다.
창문 쪽 세 번째 자리. 여기가 내 자리다.
여간해선 선생님의 관심을 받기 어려운 자리다.
기술가정 시간 29명 중에서 25명이 엎드려 있다.
대부분 자고 있고 가끔 눈을 감은 채 몇 시간 후에 뭘 하고 뭘 먹을지 궁리하는 애들도 있다.
반에서 제일 공부를 잘하는 두 명과 선생님을 좋아하는 여학생 한 명, 그리고 나, 수업을 듣는다.
아빠가 수업이라도 잘 들어야 한다고 했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힘들긴 하다.
이제 더는 못 견디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성탄절 사면처럼 스피커로 종이 울렸다.
아침의 흥분과 설렘도 오후 햇빛에 점점 바래고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교실은 다시 생기를 찾았다.
“오늘 점심 뭐냐? 제육 김치? 나이스”
남자애들은 좋아한다. 여학생들도 좋아하긴 하는데 난 딱히 좋진 않다.
제육볶음이랑 김치를 따로 먹어도 되는데. 김치는 또 따로 나온다.
“야 내일 그거 물통에 싸갈까?”
“선도 가고 싶냐? 선도.”
“야 누가 어떻게 알아 븅신아, 새가슴 새끼.”
“난 여친이 가지 말라 했는데. 지 심심하다고.”
“그래서 뭐라 했어? 같이 가자 해.”
“뭐래, 찐따 새끼.”
역사 성적이 좋진 않지만 조선시대 장터 주막이 이런 모습일 것 같다. 술만 있다면.
하지만 나도 끼어서 얘기하고 싶었다. 욕도 좀 섞어가며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 욕을 해 본 적이 없다. 별로 화가 나는 일은 없어서.
엄마가 떠날 때 슬프긴 했지만 화는 나지 않았다.
너무 아프다고 했다.
볼 수 없는 게 더 아픈 건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땐 엄마가 아파하는 게 너무 싫었다.
난 엄마 귀에다 ‘엄마, 이제 안 아파?’라고 물었다.
엄마는 며칠 만에 처음으로 실눈을 뜨고 고개를 아주 조금 끄덕였다.
그걸로 한 달 정도는 버틸 수 있었다. 울지 않았다.
하지만 그 후로 엄마가 없는 아침을 미루려고 잠드는 시간은 계속 늦어졌다.
그래도 학교에선 졸지 않는다.
종례시간,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러 온 관객처럼 아이들이 아침보다 더 들떠있다.
담임 선생님의 이런저런 훈계와 걱정을 뒤로하고 나는 마지막으로 극장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