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이는 오늘도 실내화를 신었다.
학교에서 좀 논다는 애들은 삼선 슬리퍼나 크록스를 신고 다닌다.
난 그냥 이백 구십몇 명인가? 그중 한 명이다.
중학교 때부터 그랬다. 나를 싫어한다는 말도 좋아한다는 말도 들은 기억은 없다.
성적도 비슷하다. 항상 그 자리다.
창 밖 햇빛을 가린 아빠의 등이 음악과는 너무 먼 모습으로, 이상한 박자로 움직이고 있었다.
"아들 밥 다 먹었어? 아빠 아침에 옷 찾아간다는 손님 날짜를 달력에 잘못 적었잖아."
"우리 아들 국 있어야 밥 먹는데. 미안해요 아들."
다림질하던 박자보다는 훨씬 듣기 좋은 소리로 아빠는 아들 미안해요를 흥얼거렸다.
"응. 먹었어."
실내화를 좀 닦아야 하나 생각했다.
하얀 실내화가 회색으로 변하고 검정 붓으로 쓴 1자들이 크게 그리고 작게 실내화 앞을 덮고 있었다.
가게에 딸린 방 문턱에 앉아 잠깐 더 아빠 모습을 보고 있었다.
밤새 추위에 떤 세탁소 공기가 길게 들어오는 상아색 볕으로 조금씩 따뜻하게 느껴졌다.
아빠의 갈색과 초록색 실로 짜인 카디건이 해를 등지고 온기를 전해줬다.
"아빠, 다녀올게."
"성찬아 그 스쿨뱅킹 아빠가 넣어놨어. 수학여행비."
낚시로 큰 물고기를 잡아 온 어부처럼 아빠는 이를 많이 보여주며 웃었다.
"근데 왜 너 실내화를 신고 다녀? 발 아파. 운동화 신고 가야지. 선생님이 뭐라고 안 해?"
진짜 걱정되는 표정이었다.
"애들 다 신고 다녀. 운동화는 체육시간에 신는 거고. 알았으니까 갔다 올게"
니케, 승리의 여신.
학교에 가려면 상점들이 즐비한 이 도시의 중심부를 지나가야 한다.
이른 시간이라 문 연 상점은 드물다.
성찬이는 매장 앞에 멈춰서 정말 여신이 만든 것만 같은 운동화의 멋진 자태를 감상했다.
'이거 신으면 키가 180은 될 거 같은데?'
잠깐이지만 우쭐해졌다.
"야 성짠"
'주호다. 웬일이지?'
중학교 때 2년이나 같은 반이었지만 이렇게 반갑게 인사한 적은 없었다.
"야 너도 수학여행 가지? 안 가는 애들도 몇 명 있다던데. 걔네 학교 나와서 자습해야 된대."
주호가 내 시선을 피한 채 그 아이들 대신 억울한 표정을 지어주었다.
"하루종일 자습을 한다고? 말이 되냐?"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주호는 성큼성큼 학교를 향해 걸어갔다.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수학여행, 우리는 배를 타고 간다.
인천에서 제주도까지, 마치 마젤란이 항해를 떠나는 것처럼 아이들이 들떠있었다.
물론 나처럼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큰 아이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밤에 불꽃놀이를 한다고 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고 즐거워했다.
배 한 구석에서 손에 불꽃을 들고 겨우 시늉만 하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남아서 자습이나 할 걸 그랬나?'
난 한 번도 신지 않은, 승리의 여신이 만든 운동화를 고이 두고 학교로 가는 길을 서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