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균탁commune Apr 30. 2023

우울증 환자로 살아가기

우울증 환자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1)

 내 직업은 일반 회사원이다. 행사를 진행을 1년에 몇 번씩 해야하는 곳에 다니고 있으며 그 행사 진행은 주로 내가 맡아서 한다. 하지만 2 ~ 3년 전부터 행사 진행을 하는 것에 공황장애 비슷한 것이 찾아왔다. 

 사람들 앞에 서라면 서서 행사를 진행하고, 방송에 출연하라면 라디오건 TV건 방송에 출연하여 잘 할 수 있지만 언제인가부터 자신감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40 평생을 살면서 좌우명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나는 경상북도 사람으로 나의 좌우명은 경상북도 사투리로 '내가 낸데'였다. 이 좌우명은 언제나 나를 자신감이 가득 찬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무슨 일을 하던지 '내가 낸데'라는 생각은 그 분야에서 내가 최고라는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하지만 언제인가부터 이런 자신감과 자존감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운전하는 것 조차 힘들 정도로 공황장애가 찾아오기도 했다. 그러나 설마 무슨 병에 걸렸겠는가 해서 그냥 참고 살았다. 

 결정적으로 내가 병원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엄청나게 거대한 곳에서 일어났다. 나는 10년이 넘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술을 마셨다. 알코올중독은 아니더라도 알코올 의존증이 심했던 것이다. 기본적으로 하루에 2병은 마시다가 3병, 4병으로 술을 마시는 양이 늘어났다. 그러면서 나는 저녁에 술 마시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밖에서 술 약속이 없다해도 집에서라도 꼭 술을 마셨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불안함과 우울함이 나를 엄습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술에 취한 나는 자해를 하기 시작했다. 그냥 사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아니 사는 것에 대해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해의 빈도는 점점 늘어가고, 죽음에 대한 망상은 점점 커져갔다.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아침부터 계속 나를 지배했다. 

 거기다가 10년이 넘는 불면증, 365일 중에 하루 딱 하루 술을 안 마시는 날이 있으면, 잠을 한 숨도 못 잤다. 잠에 들지 못하면 드는 생각은 딱 하나 뿐이었다. 그것은 바로 죽음, 오로지 죽음에 대한 생각 뿐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죽음에 대한 생각이 엄습하자 문제가 하나 생겼다. 그것은 바로 시대때도 없이 죽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만히 있어도 죽음에 대한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눈물이 흘렀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한 것이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나의 우울증을 발견한 것은 아버지가 쓰러지시고부터이다. 아버지는 뇌졸증으로 쓰러지셨다. 한 번의 뇌졸증이 아니라 뇌졸증이 연달아 두 번이나 아버지를 찾아온 것이다. 재활 병원을 전전했지만 아버지에게는 회생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나의 든든한 백이었던 아버지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자주 울었다. 아니 낮이건 밤이건 눈 안으로 눈물이 가득차 올랐다. 나의 배경으로 살고 싶어하셨던 아버지, 아버지가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딱 맞게 죽음에 대한 망상과 아버지의 병이 겹쳐서 나의 망상은 극대화 되었다. 

 소주를 4병이나 마신 어느 날이었다. 그날 나는 술에 취해 죽어야겠다는 망상을 단순한 자해를 넘어 실천으로 옮기기로 했다. 사실 자살 시도는 이것이 처음이 아니었다. 첫 번째 자살 시도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은 손목이었다. 나는 손목의 동맥을 끊기 위해서는 최소 3cm이상을 그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렇게 그냥 첫 번째 시도에서 나는 살아남았다. 두 번째 자살 시도는 수면제 복용이었다. 나는 병원을 전전하며 수면제를 모았다. 그리고 20알 정도의 수면제를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깨어나지 않기를 기도하며, 그러나 나는 일어나고 말았다. 수면제로 자살하기 위해서는 20알이 아니라 적어도 100알의 수면제를 먹어야한다는 기본적인 지식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소주 4병을 마신 그날, 나는 정말 죽을 수 있는 방법을 많이 연구했던 날이었다. 나는 우선 긴 전선을 준비했다. 방 문을 열고 손잡이에 전선을 묶었다. 그리고 전선을 문 위로 넘겨 목이 딱 들어갈 정도로 둥글게 전선을 말았다. 그리고 드디어 다리가 달랑 들릴 정도로 전선에 목을 걸고 매달렸다. 

 그러다 어떤 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그날 소주를 4병 마시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죽었을 것이다. 소주를 많이 마셔서 몸을 가누지 못했기에, 온몸이 축쳐져 있었기에 살아남았던 것 같다. 

 한 15분 정도 기억이라는 것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난 15분 동안 목이 눌려 정신을 잃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를 깨우는 어떤 소리에 벌떡 일어나 목에 매인 전선을 풀었다. 그리고 술이 깨었다. 

 죽음. 나는 아버지보다 먼저 죽어서는 안 된다. 나는 아버지를 책임지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바로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상담을 하고 우울증 약을 처방받았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나의 우울증은 초기 증상이 아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나를 감싸고 있던 병이었다. 의사는 약을 처방해주며, 우울증의 심각성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나는 약을 먹기 시작하면서 술을 완전히 끊어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첫 번째 병원은 실패였다. 낮부터 처방된 과도한 수면제는 나를 더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 수면제로 인해 낮이건 밤이건 상관없이 맥도 못추리고 잠만 잤다. 정말 잠만 잤다. 밥도 먹을 수 없었고, 일도 할 수 없었다.

 잠깐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세서 다시 원 주제로 돌아와야 겠다. 나의 우울증의 깊이는 아주 오래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우울증에 걸린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나는 나의 허약함에 패배한 것이었다. '내가 낸데'라는 자신감으로 버텼다고 생각했지만 모든 일에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무엇이든 두려워서 실패했고, 나의 삶은 빚 더미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자신감이라는 것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러니 아무것도 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그럼 그 우울증은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사실 우울증은 20대 초반부터 앓았던 것 같다. 나는 20대 초반에 시인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시는 우울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우울한 감정을 몸에 담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래서 우울증에 걸린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진짜 원인은 아버지와의 마찰이었다. 

 나는 시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시인이란 직업은 직업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몇 년을 싸웠다. 그 싸움을 하면서 우울증의 감정은 더욱 심해졌던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코뮤니스트의 여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