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균탁commune May 09. 2023

우울증 환자로 살아가기

우울증 환자,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한 콤플렉스 덩어리

 내가 우울증 환자임을 인정하고 약을 복용하면서 극대화된 병이 두 가지 있다. 둘 다 원래 가지고 있던 성향이지만 우울증 환자임을 알고, 술을 끊고, 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바로 울증을 달래기 위한 콤플렉스이다. 

 나에게는 두 가지 콤플렉스가 있다. 그 중 하나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이다. 누구에게나 착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원래 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착해 보이고 싶었다. 그런데 우울증 환자임을 인정하고, 알코올 의존증 환자임을 인정한 후 약을 복용하면서 이 콤플렉스는 더 심해졌다. 

 왜냐하면 우울증이라는 약점을 가리기 위해서 나는 착한 사람으로 남고 싶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 그것이 내가 가진 첫 번째 콤플렉스다. 하지만 이는 손해 보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오지랖이 넓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지랖이 넓어지다 보면 다른 사람에게 과잉친절을 베풀때가 있다. 그리고 상대방이 그것을 과잉 친절로 받아들였을 때, 나의 친절은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온다. "왜 네가 그것까지 신경 쓰느냐? 왜 네가 그런 것 까지 하느냐?"하는 핀잔을 듣거나, 착한 사람 콤플렉스 덩어리인 나를 기피하는 것이다. 

 그럴 때면 오히려 우울증이 더 심해진다. 내가 한 일에 대한 후회가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질게 지내고 싶지만 모질게 지내면 우울증 환자인 너는 너무 모질어. 넌 우울증 환자이니까 당연히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는 거야 하는 소리를 듣게 될까봐 겁이 난다. 그래서 더 착해지려고 하면 더 손해를 본다. 착해지고 손해보고, 그건 내 우울증에 대한 두려움이 만들어 내는 결과일지 모른다. 그리고 착해진 결과 더 우울해지고, 나는 그 우울증에 며칠을 고민한다.

 이건 특별히 나의 경우이다. 다른 우울증 환자들이 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착하고 싶지 않지만, 착해야할 것 같은 강박 관념. 그 광박 관념이 가해지다 보면 또 우울해진다. 우울해지면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만약 우울증 환자가 친절을 베푼다면, 조금은 받아주자 그는 그가 가진 우울을 덜어내기 위해 하는 행동이니까. 그렇다고 너무 가까이 오는 것은 막아도 좋다. 우울증 환자라는 것을 인정하면 그 우울도 받아들일테니까 말이다.

 나의 두 번째 콤플렉스는 '피터팬 콤플렉스'이다. 나는 어른이 되는 것이 싫다. 어른이 되고 나면 더 우울한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어쩔 수 없는 중년의 어른이 되었다. 아니 중년의 어른이 되어야 했다. 세월이 나를 이렇게 만든 것도 있지만, 삶이라는 중압감이 나를 어른으로 만든 것도 있다. 그러나 나는 피터팬 콤플렉스를 꾸준히 유지하고 싶다. 

 어른이라는 것은 얼마나 슬픈 것인가? 아이들의 순수함에 때가 묻어 되어버린 어른이라는 것은 얼마나 슬픈 것이가? 이보다 더 슬픈 일이 어디 있는가? 나는 그 슬픔을 견딜 수가 없다. 어린 아이가 가진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고 싶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나를 이상하게 쳐다본다. 아니 약간은 미친놈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순수한 척 하는 위선자로 바라보기도 한다.

 아!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순수한 마음에 여러 가지 때를 묻히기 싫은 삶. 그런 삶을 살고 싶은 것을 잘못된 삶으로 낙인 찍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 슬픔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그러니 나에게는 세 가지 증상이 있다. 우울증, 착한 사람 콤플렉스, 피터팬 콤플렉스. 하지만 나는 이 세 가지 모두를 간직한 채 살고 싶다. 손해를 보아도 좋다. 그로 인해 더 우울해져도 좋다. 

 내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방법이라면 나는 이러한 나의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응원해 주고 싶다. 착한 사람과 순수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오히려 착하지 못하고, 순수하지 못할 때 더 많은 상처를 받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우울증이 아닌 두 가지의 콤플렉스에 대해서는 사람들에게 조금 권해주고 싶다. 착해지고 순수해지자. 그래서 세상을 조금은 착하게 만들고, 순수하게 만들자.

 우울증 환자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또 미친놈이라고 손가락질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는 것은 그 두 콤플렉스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 우울증 환자로 살아가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