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몰랐던 것, 여행이 가르쳐 준 것

규칙보다 연결

by doojull

큰아이가 5학년, 쌍둥이가 2학년이던 어느 해 여름, 나는 세 아이를 데리고 미국 친구 집에서 한 달을 보냈다. 당시 내게는 아이들을 향한 수많은 규칙이 있었다. 먹는 것, 자는 것, 학습 관리, 용돈 사용, 성경 암송까지 모든 것이 규칙으로 빼곡했다. 초등학생이니 당연한 것이었지만 문제는 나의 기준이 지나치게 높았다는 것이다. 그 기준을 지키려 애쓰다 보니 아이들과의 갈등은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세아이 모두 하나같이 강한 기질을 타고났다. 일단 정해진 규칙보다는 자기 뜻대로 해보고 싶어 했고, 나는 늘 그 한계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헤맸다. “어디까지 허락해야 하나, 이 선을 한번 넘으면 끝까지 가려나? 그럼 안되는데...” 그런 고민 속에서 나는 늘 아이들을 제어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이미 스스로 지쳐갔다. 어떤 날은 속으로 ‘누군가 내 옆에서 매번 정확한 기준과 설득하는 법을 알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미국이라는 낯선 환경, 그것도 남의 집에서 한 달 넘게 머무르며 우리의 평소 규칙이 조금씩 허물어지는 것은 당연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높은 기준을 고집했고, 그 결과는 예상보다도 더 큰 갈등을 초래했다. 가장 많이 부딪힌 것은 ‘먹는 것’이었다. 미국이니 햄버거 가게를 자주 방문할 수밖에 없었는데, 매번 “콜라를 마셔도 되느냐, 안 되느냐”를 두고 실랑이가 벌어졌다. 또 유원지 기념품 가게에 들렀을 때 용돈 사용 금액 한도를 두고 갈등이 커지곤 했다. 아이들과 기싸움을 하다가 기념품 가게에서 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무엇을 잘 가르쳐주고 싶어서 규칙과 제한을 두는 것인데 나는 무엇도 가르쳐주지 못한 채 부정적인 감정만 쌓아갔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끼리도 조금도 포용하지 못하고 서로 규칙을 지키지 않았다며 비난하고 싸우는 일이 빈번했다. 놀러 간 곳에서 싸움을 말리는 데 에너지를 다 쏟고 나면, 미국의 아름다운 대자연도 무색하게 느껴졌다.



이제야 그 모든 일이 어리석게 느껴진다. 지금 돌아보면 별것 아닌 일들로 왜 그렇게 내가 목숨을 걸었을까 싶다. 당시 나는 규칙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통제가 곧 교육이고, 통제하지 못하면 훈육자로서의 권위를 잃을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이 있었다. 심지어 미국에서 기준을 달리하면,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아이들이 더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까지 있었다. 물론 부모가 일관된 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아이들의 동의 없이 일방적인 강요가 된다면 교육의 본질과는 멀어질 뿐이었다. 아이들에게 규칙의 이유를 설명하고, 그들이 다른 의견을 가질 때 대화와 협상을 반복하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다. 물론 이 과정은 지난하고 오래 걸린다. 그렇지만 그것이 당연하다. 사람은 로봇이 아니고 자기 주체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인격적인 생명체니까! 그러나 그 시절의 나는 교육을 단기적인 결과물로 착각했다. 마치 공장에서 일정한 인풋을 넣으면 예상한 아웃풋이 찍혀 나오듯 빠른 시간 안에 정상품이 나오지 않으면 하자품인 것처럼 여겼다. 하지만 교육은 한방이 아닌 장기적인 여정이었다. 그런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나는 당연히 늘 실패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만약 다시 10년 전으로 돌아가 미국 여행을 다시 할 수 있다면, 나는 규칙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높은 기준으로 서로 기분이 상하기보다, 차라리 기준을 낮추고 모두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데 집중할 것이다. 아이들이 “엄마, 이래도 돼요?”라고 물으면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할 것이다. “그럼! 우리 놀러 왔잖아. 여기선 좀 즐겨도 되지!” 교육이 가능하려면 규칙 자체가 아니라, 신나게 놀면서 서로의 마음이 연결되는 것이 먼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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