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나는 입을 벌려 생을 찬미한다.
“살기 위해 먹는가, 먹기 위해 사는가.”
언뜻 농담처럼 들릴 수 있지만, 그 안에는 삶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숨어있다.
그리고 나는, 이 질문에 망설임 없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먹기 위해 산다.
먹는다는 것은 단지 생존을 위한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 하루를 버텨낸 나 자신에게 건네는 조용한 찬사이자, 내일을 살아갈 힘을 축적하는 의식과도 같은 행위이다.
단테의 『신곡』 연옥 편(Purgatorio)에서 식탐(gluttony)은 육체적 욕망을 절제하지 못한 죄로 그려진다.
“Labia mea, Domine. (주여, 제 입술이 당신을 찬양하나이다.)”
식탐의 죄를 씻는 영혼들은 입술로 주님을 부르며, 향기 나는 나무 아래에서 음식을 갈망하지만 결코 먹지 못하는 시험을 반복한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음식을 갈망하는 것은 죄가 아니라, 삶을 사랑하는 방식일 수 있다고.
그래서 나는 아무 하고나 밥을 먹지 않는다. 나에게 식사는 성스러운 시간이며, 가볍게 흘려보낼 수 있는 일상이 아니다. 식사는 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그 시간은 내 하루의 결실이며, 또한 내일을 견딜 수 있게 하는 힘의 원천이다. 그렇기에 나는 오직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과만 식탁에 마주한다. 그것은 단순한 동행이 아니라, 시간을 나누고 내일을 살아갈 에너지를 나누는 깊은 교감이기 때문이다.
나는 안다. 때로는 백 마디 말 보다 정성스럽게 준비한 밥상에서 더 큰 위로가 온다는 것을.
삶이 버거울수록 나는 천천히, 묵묵히 나를 위한 밥을 짓는다.
그리고 말없이 그릇을 비운다.
오늘을 살아낸 나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내일의 나에게 다시 걷자고 속삭이듯.
나는 오늘도 먹는다.
살아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내기 위해서.
또 나에게 주어진 내 삶을 찬미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