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먹기 위해 산다

수제비 편

by 가흔

비가 세차게 퍼붓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하굣길에 갑작스럽게 들이친 소나기를 피하려고 나는 가까운 친구 집으로 달려갔다. 창밖으로 쏟아지는 빗줄기와 방 안 가득 퍼진 눅눅한 열기는 숨 쉬는 것조차 버겁게 만들었다. 에어컨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지만, 살갗에 와닿는 차가운 바람은 오히려 지친 몸을 더 무겁게 짓눌렀다. 수험 생활의 긴장으로 예민해진 위장은 차가운 공기와 습기에 자꾸만 시큼한 위액을 연신 끌어올려, 외면하기 힘든 불편함을 남겼다.


그때, 친구 어머니께서 조심스레 내 앞에 놓아주신 한 그릇의 수제비.

뜨겁게 피어오르는 김, 부드럽게 퍼지는 국물의 향, 손수 뜯어 넣은 반죽의 투박한 모양새. 그 모든 것이 순간 내 안의 고단함을 녹여 내렸다. 메스껍고 꼬이던 속이 풀리면서, 마치 ‘괜찮다’는 따스한 위로를 받는 듯했다.


생각해 보면, 그날의 한 그릇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나는 낯선 집, 낯선 어머니의 손길 속에서 ‘돌봄’이라는 감정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피곤과 긴장이 쌓인 날에도 누군가 건네는 따뜻한 한 끼는,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음식을 먹지만, 기억에 오래 남는 건 맛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순간의 온기이다. 그날의 수제비처럼, 나를 지탱해 주던 한 그릇은 단순히 배를 채워준 것이 아니라, 스스로 버텨낼 힘을 일깨워준 선물이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어떤 음식은 사람의 체온을 끌어안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밀가루는 혈당을 급격히 올려 순간적인 행복감을 준다지만, 나는 믿는다.

그 짧은 위로의 시간에 담긴 따뜻한 기억과 정서야말로 우리가 음식을 기억하는 진짜 이유라고.


그래서 나는 입을 다물지 않는다. 나는 입을 벌려, 생을 찬미한다.

그리고 오늘도, 그 위로의 국물을 조용히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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