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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연춘추 Jan 26. 2022

심장지대 제국의 지정학

우크라이나 사태와 러시아의 흑해 내해화에 대해

알렉산드르 두긴은 자신의 책 《세계섬의 마지막 지정학 전쟁》에서 러시아를 심장지대 제국이자, 전형적인 대륙형 국가라고 규정했다. 그의 지정학 서사에서 러시아의 숭고한 국가전략 목표는 루스와 투르크, 몽골 3개 종족의 연합 제국을 건설하는 것이요, 도덕주의 회복을 기치로 삼는 유라시아 기사단을 조직해 해양세력의 대표주자이자 적그리스도 세력이며, 카르타고의 화신인 미국을 “세계섬”에서 몰아내는데 있다. 그래서 미국 싱크탱크에서 러시아와 연합해 중국을 견제한다는 구상을 들었을 때, 나는 워싱턴의 연구자들이 러시아의 대미 적대심을 너무 과소평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망국의 한에 기초한 적대심은 분명 베이징이 미국에 가지는 경쟁심리와는 다른 측면의 것이다. 비록 초나라가 초가 세 채만 남더라도, 진나라를 멸망시키는 이들은 반드시 초나라楚雖三戶 亡秦必楚라는 말이 있듯이 대다수 러시아인들과 중앙아시아 엘리트 계층은 자신들의 불행이 소련 해체 때문이라 생각하고 있으며, 이 같은 해체에 일정한 역할을 한 미국에 대해 강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알렉산드르 두긴의 지정학 서사는 이 같은 망국의 한에 대해 고차원적인 해설까지 덧붙여준다. 미국은 적그리스도이며, 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도덕주의 문제는 모두 미국이라는 카르타고 시절부터 영아살해와 매춘, 인신매매를 즐겨하던 해양세력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며, 대륙세력의 마지막 남은 보루인 심장지대를 차지한 러시아의 숭고한 역사적 책무는 바로 이 같은 세력을 유라시아 대륙에서 몰아냄으로써 도덕주의를 회복하는 것이다. 이처럼 소련 해체에 대한 망국의 한은 모든 것을 뛰어넘는다. 심지어 중국인과 게르만족에 대한 슬라브주의자들의 뿌리깊은 인종주의적 경계심조차 말이다.


그래서 소련이 해체된 직후 새로운, 그리고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브레진스키는 ①유럽에서의 나토 동진을 통해 점진적으로 구소련 영향권 국가들을 미국의 영향력 아래 포섭함과 동시에, ②동아시아에서는 미국-일본-중국 3개국 연대를 통해 러시아의 중앙아시아와 동아시아 방면 남하를 견제했다. 이로서 미국은 소련의 부활을 막고, 베이징의 내륙 진출을 장려함으로써 이들이 미국과 서태평양에 대한 이권을 다투기보다는 소련의 옛 영토인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와 세력 다툼에 열중하도록 만들었다. 따라서 미국의 패권은 본질적으로 유럽 대륙에 대한 군사적 지배이며, 이 같은 지정학적 전략 목표를 가지고 추진되며, 나토 동진은 워싱턴의 지시에 따르는 모스크바 정부가 등장할 때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매킨더 《민주의 이상과 현실》에 나오는 심장지대 세력과 해양세력의 경계. 해양세력의 최대 경계는 위의 십자 점선, 심장지대 세력의 최대 경계는 아래 점선이다


무엇보다 소련의 해체는 미국이 기대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는데, 이는 다름아닌 캅카스 지역의 이탈과 유고러시아라 불리던 우크라이나의 독립이다. 매킨더가 그토록 러시아로부터 분리시키고 싶어했던 이 두 지역은 소련의 탄생과 적백 내전 승리로 인해 다시금 모스크바의 지배를 받았지만, 소련의 해체와 함께 독립국가로 우뚝 서게 된다. 매킨더의 《민주주의의 이상과 현실》에 따르면 해양세력이 강력해질 경우, 흑해를 자신들의 영토나 다를 바 없는 내해로 삼기에, 흑해 연안지대인 캅카스와 유고러시아 일대를 심장지대 세력으로부터 독립시켜 흑해에 대한 항구적인 지배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물론 매킨더는 심장지대 세력이 강해질 경우, 흑해와 흑해로 흐르는 하천에 대한 영향권을 주장할 것이며, 이는 아나톨리아 북부와 발칸반도 중부가 해양세력으로부터 이탈함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비록 우크라이나-캅카스 독립 구상은 매킨더 살아생전에 실현되지 못했지만, 소련의 해체로 로마제국의 후신을 자처하는 앵글로-색슨 제국의 꿈은 구체화됐으며, 독립국으로서 우크라이나와 캅카스 제국諸國의 깃발은 미국 패권을 뜻하는 상징물과도 같이 흑해 앞바다에서 펄럭였다.


하지만 미국의 세계패권 영속 방법을 고민했던 브레진스키는 중국이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할 줄 몰랐으며, 구 소련 출신 외교관 프리마코프가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고안한 지정학 구상인 중국-러시아-이란 삼각동맹이 구체화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아울러 브레진스키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팽창에 대한 미 중산층의 피로도조차 계산하지 못했는데, 자신들과 아무런 관련 없는 메소포타미아 대평원 지대와 힌두쿠시 산맥, 솔라이만 산맥 등지에서의 군사 작전에 지친 미국인들은 기존의 정치인들 대신 새로운 대안을 가진 인물을 찾기 시작했으며, 이는 트럼프 당선이라는 참극으로 이어지게 된다.


신겐의 유지를 이어받기보다는 자신이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랬던 다케다 가츠요리처럼 트럼프는 키신저와 브레진스키 같은 위대한 천재들의 그늘 아래 있기보다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힌 주인공이 되고자 했으며, 미국의 강함을 전세계에 과신했던 그는 중국·러시아·이란 3개국을 동시에 적으로 돌리는 최악의 과오를 범하고 말았다. 트럼프의 어리석은 정책으로 자신들이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서 아무런 지분도 없음을 확인한 세 나라는 급속도로 가까워졌으며, “세계섬”에서 미국을 몰아내는 지정학적 협력체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중·러 군사협력체는 바로 이렇게 결성됐던 것이다.


중국·러시아·이란 3개국의 지정학 연대 결성과 함께 이들은 유라시아 내륙지대 제국諸國에 강력한 구속력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중국은 파키스탄과 함께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정권 수립을 비밀리에 (끝에 가서는 노골적으로) 도울 당시, 러시아와 이란은 반대하기는커녕 국경지대에 병력을 배치하기만 할 뿐,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자신들에 반대되는 성향을 가진 탈레반의 정권 장악을 멀리서 지켜만 봤으며, 타지키스탄의 라흐몬 대통령이 아흐마드 마수디를 돕자 압력을 가해 탈레반과 마수디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도록 종용했다. 결국 라흐몬은 마수디 지원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으며,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파키스탄의 지원을 받은 탈레반 공군의 공격까지 받은 마수디 세력은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심장지대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미군기지가 사라지자, 중국과 러시아는 동유럽 대평원과 서태평양으로의 팽창을 시작한다. 타이완과 우크라이나는 (예상 가능한) 이들의 다음 목표였으며, 이중에서도 타이완 해협이라는 자연장애물조차 없는 우크라이나는 쉬운 먹잇감이었다. 그러나 워싱턴 수뇌부는 두번째 실수를 저지르는데, 바로 중국의 타이완 침공 위협을 과대평가한 나머지 자신들이 가용한 모든 전력을 타이완 해협에 집중시킨 것이었다. 이는 미국 국내 반중 여론을 인식한 정치적 행위였지만 결과적으로 워싱턴의 주의력을 우크라이나가 아닌 타이완 해협에 집중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게 만들었으며, 이 같은 워싱턴의 오판은 모스크바를 더욱 담대하게 만들었다.


이미 트럼프 집권기에 모스크바는 서부 대초원 지대와 흑해에서 20-30만 대군을 동원한 군사훈련을 여러 차례 진행함으로써 유사시 우크라이나 전역을 점령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군사적 실패와 국내 인플레이션 문제로 인해 우크라이나에 신경 쓸 겨를이 없던 미국은 러시아의 이 같은 군사적 위협을 지켜만 봤으며, 이는 모스크바의 푸틴으로 하여금 더욱 담대한 구상을 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이 같은 푸틴의 담대한 구상 이면에는 러시아의 초조함이 숨어있다. 러시아 지식인들의 글을 읽거나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이들은 푸틴 사임 또는 사망 이후 러시아의 운명을 걱정하고 있다.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희망과도 같은 푸틴이 물러나고, 무능한 지도자들이 권력 투쟁에 매몰되어 다시 소련 해체와 같은 지정학적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경우, 러시아가 (지금과 같은 강대국이 아닌) 2류 또는 3류 국가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푸틴 살아 생전에 심장지대 제국 건설의 초석을 다지기를 희망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점령은 바로 이 같은 심장지대 제국 부활을 위한 희생 제물이자 기틀 다지기라 할 수 있다.


아울러 크림반도 귀속(2014년) 이후 지속된 미국의 경제 제재로 인해 러시아는 독자적 화폐교역체제 건설 중요성에 대해 다시금 깨닫게 됐으며, 자원 시장과 금융 시장에서 달러를 대체할 수단을 찾기 시작했다. 그들은 점차 중국과 EU에게 유로화와 위안화로 원유·천연가스 대금 지불을 요구했으며, 인도와 중앙아시아 국가들에게 자국과 교역 시 루블화 사용을 요구했다. 이로서 러시아는 금융시장과 자원시장에서 달러의 영향력으로부터 일부 벗어날 수 있었지만, 자국 내 밀·옥수수 생산량으로는 세계 곡물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달러의 아성에 도전할 수 없다 보니, 우크라이나 점령을 통해 미국에 준하는 곡물 수출국가 지위 획득을 꾀하는 것 같다. 이 경우,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지탱하던 마지막 보루인 곡물시장조차 러시아의 도전을 받는 것이라서, 장기적으로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 유지에 불리한 조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다. 따라서 소련과 같은 제국의 지위를 다시 확보하기 위해, 그리고 푸틴 서거 이전에 러시아의 제국 지위를 공고히 다지기 위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점령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지정학적 이벤트라 할 수 있다.


비록 중국과의 사실상 동맹관계로 인해 유라시아 내륙지대에서 러시아를 위협할 세력은 없었지만, 나자르바예프의 중립주의 노선은 시종일관 푸틴을 괴롭히고 있었다. 특히 나자르바예프와 에르도안의 합작품인 OTS 결성은 중국보다는 러시아의 심기를 건드렸는데, 루스와 투르크, 몽골의 연합제국을 꿈꾸는 이 대륙의 거인이 보기에 OTS의 존재 자체가 투르크 세계에 대한 러시아의 종주권을 부정하는 것이요, 터키와 중국이 친러 노선을 버리고 친미로 갈아탈 시, 자국의 복부라 할 수 있는 남시베리아와 우랄공업지대가 적대적 세력의 군사적 위협에 노출됨을 뜻했다. 이를 막기 위해 푸틴은 친러 성향의 정치인들이 주름잡고 있는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을 이용해 카자흐스탄에 대한 3면 포위망을 완성한 다음, (카플란에 따르면) 이 진정한 심장지대 국가를 자국 영향력 아래 둘 필요가 있었다.


때마침 일어난 카자흐스탄의 반정부 시위는 푸틴에게 있어 가뭄에 내린 단비와도 같이 반가운 소식이었다. 러시아는 즉시 토카예프를 도와 이 친러 성향의 반정부 시위대(이들은 대체로 친러 성향이 강한 소주즈 출신들이다)를 진압했으며, 반란 진압을 명분으로 나자르바예프와 친중 성향의 중주즈 출신 정치인들을 잡아들였다. 순식간에 손발이 잘린 나자르바예프는 태상왕에서 허수아비 신세로 전락했으며, 토카예프는 푸틴에게 충성하는 또 다른 중앙아시아 독재자로 크렘린궁의 공신록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게 된다. 이제 푸틴은 (과거 스탈린과 같이) 남시베리아와 극동지역에 위치한 병력조차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할 수 있게 됐으며, 이반 뇌제, 표트르 대제, 스탈린과 같이 러시아의 서진 욕구를 충족시킨 독재자의 반열에 오르기 위한 마지막 도박에 전념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언론 기사를 통해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미국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문제를 놓고 첨예한 대립을 이어 나가고 있는데, 필자가 보기에 러시아가 여기서 물러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 러시아는 이미 해양세력이 심장지대로 진격할 수 있는 통로인 우크라이나와 캅카스 지역을 재차 점령하는 것만이 자신들이 새롭게 만들어갈 제국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길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미국과의 제네바 협상 과정에서 요구한 불가리아와 루마이나 철수 또한 흑해를 내해화內海化하려는 러시아의 전략적 의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 달리 말해 러시아는 아나톨리아와 발칸반도 대다수 지역을 자국의 영향권 안에 편입시키기 전까지 서진을 멈출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유사시 미국이 즉시 투입할 수 있는 야전군 병력은 5만 정도(현재 8천5 00명에 대기 중)로 유럽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병력 6만과 나토 신속대응군(NSF) 4만 등 병력과 합세할 경우(중복이 있을 수 있다), 총 11-15만 대군을 우크라이나 방면에 투입할 수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보다 몇배나 많은 병력(현 국경지대 배치 병력 12만 7천명, 전시 20-30만 대군 동원 가능)을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쟁 동원 능력과 투입 가능한 무기 장비 면에서도 나토와 우크라이나를 압도한다. 당장에 동유럽 대평원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기갑부대 진격전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 현재 러시아가 보유한 전차 수만 1만 2천 대(이만한 전차부대와 맞서 싸우려면 미국과 중국 2개국이 실제 운용 중인 전차를 모두 동원해야 한다)인데, 이에 맞서 우크라이나 정규군이 운용하는 탱크는 2천여 대, 헬기는 100여 대 정도로 이들이 러시아의 대공세에 맞서 얼마나 버틸지 잘 모르겠다(참고로 독일은 220여 대 탱크를 운용 중이며, 프랑스는 400여 대, 영국은 220여대에 불과하다). 혹자는 미군이 오랜 실전 경험 때문에 러시아군의 진격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을 전개하는데, 일단 미군이 실전 경험을 쌓은 전장은 메소포타미아와 호라산 지역에서 이루어진 대테러전이지 중국, 러시아 같은 사이즈의 강대국과의 전면전이 아니다. 실상 이 같은 전쟁은 2차 이라크 전쟁 이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치러진 적없다고 봐야할 것 같다. 이 때문에 동원 체계 면에서도 다시 손봐야 할 부분이 많고, 이조차 만일 중국이나 러시아가 거국적인 힘을 동원해 한 나라를 멸망시키려고 작정할 경우, 막지 못한다고 보는 편이 좋을 듯하다.


심지어 중국이나 러시아는 미군의 침공에 대비해 대규모 병력 동원 체계를 꾸준히 유지할 뿐 아니라, 확인 차 8-10만 대군을 동원한 군사훈련을 수차례 진행한 바 있는데, 2차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군이 유라시아 지역에서 이만한 규모의 군사훈련을 감행했다는 기록을 본적이 없다. 현재 나토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도 우크라이나 중부와 동부, 오데사 지역 점령은 묵인하되 러시아가 카르파티아 산맥을 넘지 못하게 막고, 우크라이나 서남부 갈리치아 지역에 우크라이나 계승을 표방한 새로운 정부를 세우는 것이다. 즉 러시아 군이 카르파티아 산맥을 넘는 것은 막는 것, 이 이상의 전략 목표 달성은 불가능하기도 하고, (이런 말하는 것이 참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현재 미국에게 그만한 전략 목표를 달성할 힘이 없다. 물론 핵전쟁을 각오하면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말이다(그런데 굳이 우크라이나 하나 살리겠다고 미국 전역을 러시아의 핵 공격 타깃으로 만들 필요가 있을까).


러시아의 최대 진출 가능선(노랑색 점선은 카르파티아 산맥에서 러시아군 서진을 저지할 경우)

현재 미국은 이미 폴란드와 발트해 3국에 자국 병력 4천 900명을 배치한 상황이고, 유사시 8천 500명도 추가 배치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이만한 규모로 러시아의 서진을 막을 수 없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우크라이나의 영토가 생각보다 넓다는 것과 러시아군이 카르파티아 산맥을 넘기 이전에 우크라이나 동남부에 방어선을 만들어 이들의 판노니아 평원 진출을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만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전역을 점령할 시, 우크라이나령 판노니아 평원 일부도 러시아에 귀속된다는 뜻인데, 지정학을 배운 이들이라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들 알리라 본다(못해도 오스트리아 수도 빈과 디나르알프스산맥 동쪽, 마케도니아 북쪽 모든 나라들이 러시아의 영향력 아래 들어간다는 뜻이다). 따라서 현재 미국이 할 수 있는 일은 우크라이나 전역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로 하여금 카르파티아 산맥을 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https://brunch.co.kr/@96cb4860cbd5418/22


그래서 우크라이나 사태의 결말에 대해 우리는 아래와 같은 예측이 가능하다.


①우크라이나 젤렌스키 정부를 타도하고, 키예프에 새로운 친러 정권을 만들어 서서히 러시아와의 흡수 통일을 유도한다.


②푸틴이 무력 사용을 결단할 시, ⓐ러시아 군은 우크라이나 전역을 점령하고, 판노니아 평원으로 진출하는 교두보(갈치아, 판노니아 평원 일부)를 확보함으로써 소련과 같은 제국으로 성장한다.


또는 ⓑ미국과 나토가 우크라이나 서남부에서 러시아군의 진출을 막음으로써 카르파티아 산맥 서쪽 국가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한다.


어찌됐든지 우크라이나가 독립을 유지하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물론 한 가지 기적이 일어나면 가능할지도 모르는데, 그것은 푸틴의 생물학적 죽음이다. 그러나 푸틴의 생물학적 죽음이야말로 우리의 능력 밖의 일이다 보니 애초에 생각조차 하지 않는 편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20여년전 길거리에서 군소 정당 정치 활동만 하던 두긴은 러시아 제국의 부활을 위한 새로운 제국 건설이라는 지정학적 목표를 제시했다. 그것은 루스인들의 제국이 아닌 루스와 투란, 몽골이 연합된 심장지대 제국의 부활이었고, 이 같은 제국 부활을 위해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아르메니아를 유라시아주의라는 이름 아래 뭉쳐야 한다고 그는 외쳤다. 물론 그가 활동을 시작했을 당시, 워싱턴에는 키신저와 브레진스키와 같은 노련한 정치인들이 있었고, 그들은 이 새로운 러시아 제국 부활 운동을 예의주시하면서 또 다른 소련의 등장을 막기 위한 계책을 제시했다. 그러나 매티스 경질과 함께 시작된 트럼프의 폭주는 러시아 제국의 부활을 막을 저에 장치들을 모두 해체해 버리는 결과로 이어졌고, 노련한 국가 지도자 푸틴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러시아의 세력을 아르메니아와 카자흐스탄, 시리아, 터키,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동부로 확장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미·중 대립국면은 푸틴에게 어부지리를 취할 수 있는 기회를 줬으며, 러시아는 자국의 역량을 서쪽으로 집중시켜 우크라이나 내전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이제 푸틴은 우크라이나에게 모스크바의 통치를 다시금 따를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친 서방적인 키예프 정부는 러시아의 이 같은 요구를 거부하며, 돈바스 반군과의 지난한 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아직까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규모 공세를 펼치려는 정황은 보이지 않는다. 현재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국경지대에 수비대라 하기에는 많고, 그렇다고 우크라이나 점령전을 벌어기에는 적은 병력(12만 7천 명)만 국경지대에 배치하고 있을 뿐,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는 않다. 물론 벨라루스와 벌이는 연합작전은 확실히 위협적이라 할 수 있는데, 이외에 다른 움직임은 없는 듯하다. 오히려 (러시아의 주장대로) 현재 이 일대에 대규모 병력 증파를 단행하는 나라는 미국이다. 그러나 이 같은 워싱턴의 움직임도 이해해야 하는 것이 현재 러시아가 20-30만 대군을 결집해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할 경우,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세르비아를 넘어 독일-폴란드 국경지대까지 파죽지세로 몰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나토의 가용 병력만 놓고 보면 러시아의 대규모 공세를 막을 만한 병력은 없기 때문에 현 상황에서는 병력 증파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물론 러시아는 이를 빌미로 자신들도 대규모 병력을 배치하겠지만). 그러나 이 같은 병력 증파가 얼마나 효과적이겠는가? 끝내 우크라이나에는 특수부대와 같은 소규모 작전 부대 외에는 보내지 않을 것인데. 사실상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거부했던 그 순간, 이 나라의 운명은 결정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희생 제물로 삼아 심장지대 제국을 부활을 위한 복수의 제례를 네미시스에게 드리려 한다. 음유시인 두긴의 지정학 서사시에 맞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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