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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인문기행』 1. 고속버스로 출발지까지

(D-1일 차 / 드골공항~산티아고 프랑스길 출발지인 생장까지)

by 소울메이트

산티아고 인문기행 책을 열면서


지난 50년 동안 내 취미는 책 사기와 책 읽기와 글쓰기, 그리고 여행으로 나름대로 즐기며 살았다. 누군가가 여행은 이동하면서 하는 독서요,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라는 말했다. 여행하면서 책 사기와 책 읽기와 글쓰기를 병행함으로써 4개의 취미를 동시에 즐기는 법을 터득하고 실천하며 살아왔다.


가톨릭 신자가 되려고 교리를 공부하던 중 아내가 산티아고 (프랑스 길) 순례길 동반여행을 제안하여 35일 동안 프랑스 <생장 피드 포르>에서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총 800km를 완주하면서 170 여개의 마을과 300 여개 이상의 중세 및 가톨릭 유산과 유적을 탐사하면서 기독교(특히 가톨릭)에 대한 약간의 지식을 체득하고 돌아왔다.


그동안 국내에는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기를 담은 책들이 꽤 많이 출간되었다. 그 책들의 내용을 보면 주로 일기체로 매일 순례자들과의 어울리며 걸으면서 경험한 에피소드를 전하고 있다. 나도 순례길에서 만난 순례자들과 기본 소개 정도의 호구조사성 문답이나 어정쩡한 농담 따먹기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산티아고 프랑스 순례길에 관련된 스페인의 역사와 종교유적을 눈팅으로 일관하였으며 그곳에서 일어난 기적과 전설은 상당 부분은 순례 후에 문헌조사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특히, 산티아고 순례길에 관련된 문학작품이나 영화도 떠나기 전에는 그 내용을 몰랐지만 집에 돌아와 많은 정보나 지식을 습득하게 되었다.


그 내용을 순례를 떠나기 전에 알았다면 그에 대한 감동은 배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이 책을 출간하기로 했다.

따라서 이 책의 목적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예정인 사람들, 순례길을 완주한 사람들, 가톨릭의 실체를 잘 모르는 예비 신자들에게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는 데 있다. 누구보다도 필자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나 자신을 뒤돌아 보는 기회가 되었고, 가톨릭 예비 신자로서 갖추어야 할 교리나 소양을 공부하는 기회가 되었다.


순례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산티아고 순례길 경험과 교리 학습을 계속해서 2024년 초에 '야보고'라는 세례명으로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이제 겨우 아마추어적이고 어줍지 않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끝으로 <산티아고 순례길> 동반여행을 제안했고 인천공항에서 출발해서 도착할 때까지 총 35일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동행했고 이 책을 쓰는데 필요한 기억을 재생시켜 준 아내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여기에서 전하고 싶다.

작가가 순례길의 인문기행의 지식과 정보를 독자들에게 제공함으로써 그들의 행복을 도모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보람과 영광으로 생각하고 싶다.


2025년 10월 1일

야고보 이주희





1. 고속버스로 출발지까지



♧ 파리 드골공항에서


100세 나이를 모범적으로 살아오신 철학자, 김형석 교수는 60세 이후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시기를 "70대"라고 언급했다. 그는 이 시기가 인생의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깊이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나이라고 말했다. 이 때는 자신이 이룬 것들에 대한 성찰과 함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욱 소중히 다지는 "황금기"라고 말한다.


나는 그분처럼 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지인들의 눈에는 노후를 너무 피곤하게 살고 있다면서 쉬엄쉬엄 즐기며 살라는 충고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쏜살처럼 지나가는 시간을 바라만 보고 싶지 않아 아내와 함께 산티아고 프랑스 순례길 800km를 33일간 완주하자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러나 그즈음에 나는 가톨릭 세례를 받기 위해서 교리 공부를 시작했기에 그럴 시간이 나지 않았다. 세례 공부를 작파하고 순례를 나서기가 민망스러워서 지도 신부님의 허락을 받아 아내를 따라나서기로 결정했다.


산티아고 프랑스 길은 인천공항 ▷ 드골공항까지 8965km를 비행기를 타고 가서 ▷ 드골공항~ 바욘까지는 800km는 고속버스로 이동하여 ▷ 순례길 출발지인 생장피드포트~산티아고 대 콤포스텔라까지 800km는 걸어야 했다.

(좌) 파리에서 바욘까지 (우) 바욘에서 생장까지

‘인천공항’~ 파리 ‘샤를드골공항’으로 가는 항공편을 일단 국적기를 이용해야 했다. 우리 부부는 퇴직 공무원이라서 국적기 이용이 곧 ‘애국’이라고 강제되던 시절부터 열심히 비축해 두었던 항공마일리지를 이 기회에 써먹기로 했다. 우리는 국적기를 공짜로 타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인천공항에서 파리 드골공항까지 각기 다른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아내는 KAL를 타고 드골공항의 제2터미널에, 나는 ASIANA를 타고 같은 공항에 제1 터미널에 1시간 시차를 두고 도착해서 공항 사이트 내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이별여행 같은 출발이었기에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부부가 왜 따로 나가느냐?라고 힐문을 받기도 했다.


우리는 자유여행을 자주 했기 때문에 외국의 공항에서 재회하는데 부담을 별로 느끼지 않았다. 인천공항에서의 ‘이별’의 슬픔을 하룻밤만 견디면 다음 날 드골공항에서 ‘만남’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드골공항에서 극적인 해후를 함으로써 지난 40년간 메말라가던 부부의 낭만과 사랑을 재충전하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다.

나는 아내 먼저 드골 공항 내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여 1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겁 없는 배낭여행자를 만났다. 생전 처음으로 해외 배낭여행을 나왔다는 50대의 용감무쌍한 한국의 중년 아줌마였다. 그녀는 세계적으로 그 브랜드가 특허를 받을 수 있는 전형적인 한국 아줌마의 표상 같았다. 자기 체구보다 더 큰 배낭을 메고 보르도를 경유하여 생장으로 가야 하는데 4시간째 드골공항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헤매고 있다며 수심이 가득 찬 얼굴로 내가 자기의 '천사'가 되어 주기를 원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평소 같았으면 ‘한 마리 길 잃은 양’을 위해서 최대한의 헌신과 봉사를 자원했겠지만 오늘은 과거의 오늘이 아니라서 자중자애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시간 후에 도착할 아내를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언감생심이었다. 할 수 없이 파리로 유학 와서 알바를 하고 있다는 한국산 패키지 관광가이드에게 그녀를 인계하는 것으로 나의 기사도는 마침표를 찍었다.


아내를 드골 공항 청사에서 하루 밤 만에 만나 애정이 넘치는 포옹을 하고 나서 가까운 레스토랑에서 산 도시락으로 저녁 식사를 때웠다. 고속버스가 출발하려면 네 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우리는 청장년들이 부러워하는 '시간 부자'이기 때문에 그 정도의 기다림은 즐거움으로 때울 만한 역량을 충분하게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공항 호텔 로비에서 자유여행자가 쓰러져 911 구급차에 실려 가는 모습을 보면서 순간적으로 몸과 마음이 긴장되었다. 내 몸은 긴장감으로 동태처럼 뻣뻣하게 굳어버렸지만 하느님께 무조건 “우리 부부의 자유여행을 안전하게 할 수 있도록 돌봐주세요”라고 기도하면서 '바욘역'으로 떠나는 고속버스를 기다리지 않을 수 없었다.

♧ 파리 드골공항에서 바욘역까지 이동


며칠 전, 아내는 파리 드골공항에서 산티아고 프랑스 순례길의 출발지인 생장피드 포르(St Jean Pied de port)로 가는 중간 기착지인 바욘까지 가는 네 가지 방법을 표로 정리해서 나에게 브리핑했다. 해외여행 준 전문가다운 아내의 깔끔한 준비성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아내를 믿고 따르기로 결심했다. 이렇게 훌륭한 아내와 백년해로한다면 인간 수명 100세 시대 2모작은 풍작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게 되었다.

1) 드골공항에서 비행기를 환승하여 바욘에 가까운 ‘비아리츠’ 공항으로 간 후에 바욘 역으로 이동하는 방법 2) 드골공항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바욘 역으로 직접 가는 방법 3) 드골공항에서 파리 시내 몽파르나스 역까지 이동하여 그곳에서 TGV를 타고 바욘 역으로 가는 방법 4) 드골공항에서 파리 시내 고속버스터미널까지 이동한 후에 고속버스를 타고 바욘으로 이동하는 방법에 대하여 각각의 장단점을 표로 만들어 보여주고 나더러 선택하라니 이렇게 친절한 비서를 무보수로 대동한 여행자가 있으면 나와 보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한국인 산티아고 순례자들은 대체로 드골공항에서 파리 시내의 기차역인 몽파르나스 역까지 지하철, 버스, 항공사 버스 편으로 이동한 후 파리에서 1박을 하고, TGV를 이용하는 방법을 채택하는 추세라고 한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아시아나 항공 비행기가 드골공항에 오후 17:50분에 도착하기 때문에 바욘역 행 TGV를 바로 탈 수 없다는 이유다.


그렇다면 파리에서 들어가서 호텔에 비싼 돈 내고 하룻밤 투숙하며 ‘파리에서 맥없이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 바욘으로 떠날 수는 있다. 하지만 비싼 숙박비가 추가로 들어가기 때문에 우리 선택지에서 당연히 제외했다. 우리는 파리를 과거에 세 번이나 관광을 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드골공항에서 곧장 바욘역 행 심야 고속버스를 12시간 타고 가기로 했다. 네 시간 동안 공항에 있는 시설들을 기웃거리다가 지쳐서 휴대폰 게임을 하면서 기다린 끝에 고속버스를 타고 프랑스 남녘에 있는 ‘바욘’으로 이동해야 했다.


열두 시간 동안 버스 안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과거 경험상 그 대안은 휴대폰과 같이 놀거나, 영화를 서너 편 보거나, 산티아고 인문여행에 필요한 스페인어 기본회화를 공부를 하거나, 그것이 재미없다면 잠충이 되는 것도 앞으로 닥쳐올 내 몸의 재난에 대한 배려 일 수도 있다.


(좌)(우) 우리가 12시간 탄 고속버스


♧ '스페인'이라는 나라


스페인은 유럽 대륙의 남서부에 있는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하고 있는데, 북쪽으로는 프랑스와 안도라, 서쪽으로는 포르투갈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지중해와 대서양에 면해 풍부한 해안선을 가지고 있으며, 북아프리카에 붙어 있는 세우타(Ceuta)와 멜리야(Melilla)라는 두 개의 자치 도시까지 이 나라의 영토이다.

이 나라 북쪽에는 지리 시간에 배웠지만 지금은 가물거리는 피레네 산맥, 가운데는 메세타 고원 그리고 안달루시아의 평야와 같은 다양한 자연환경을 보유하고 있다. 스페인 지도를 펼쳐놓고 전체를 조감하면 그 모양이 소머리와 닮은 꼴이다. 그래서 소싸움이 이 나라의 관광상품이 되었을까? 근거 없는 이상한 상상을 해본다.


스페인은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면적을 가진 나라로, 대한민국 남한의 5배 정도이다. 2023년 기준으로 스페인 인구는 4,800만 명이고 평방 km 당 인구밀도는 97명이다. 우리나라 인구는 5100만 명으로 평방 km 당 510명의 인구밀도이므로 스페인은 우리나라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스페인은 유럽에서는 농업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이지만 해외로부터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나라이다. 이 나라는 왕년에 해상 강국으로서 해외 식민지를 개척한 결과 특히 남미에 넓은 식민지를 개척한 나라이다.

산티아고 순례길과 관련된 스페인의 고대사를 살펴보면 이베리아인, 켈트족, 로마인, 그리고 게르만족과 같은 다양한 민족들이 거쳐 간 지역이다.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에서는 ‘히스파니아’라고 불렸으며 그 영향으로 로마의 문화와 기독교가 전파되는 기회가 되었다.


8세기에는 이슬람 세력이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하고 '알 안달루스'라는 이슬람 국가를 세웠다. 이 시기에 들어온 이슬람 문화와 과학은 이 나라를 번성하게 만들었다. 기독교 세력은 약 800년 동안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기 위한 '국토회복운동'이라 부르는 이른바 ‘레콩키스타’를 꾸준하게 수행하여, 1492년 그라나다를 정복하면서 이베리아 반도 전체가 기독교 국가로 통합되었다.


스페인은 17개의 주(Comunidades Autónomas)와 북아프리카에 위치한 세우타(Ceuta)와 멜리야(Melilla)는 자치 단체로서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주 밑에는 기초지방자치단체 도시와 마을이 8,131개가 있는데 이들의 평균 인구는 5천 명 정도이다. 그 평균 면적은 62평방 킬로미터로 서울의 9.6분의 1 수준이고 우리 기초지방자치단체의 평균 면적의 약 7분의 1 수준이다. 기초지방자치단체는 법률이 인정한 자치권을 가지고 있으며, 지방자치단체는 우리나라처럼 지방의회와 자치단체장을 선거로 뽑아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산티아고 프랑스 길(El Camino Francés)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가장 유명한 순례길이다. 프랑스 변두리 생장피드 포트에서 출발하여 스페인을 가로지르는 거리는 800Km 정도 되는데 170여 개의 마을과 기독교 등 종교시설 300개소를 지나가면서 목적지에 도착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피레네 산맥을 넘어가면서 출발하는 첫날 스페인 영토에 집입하면서 스페인의 북부지역 중에서 나바라, 라 리오하, 카스티아 이 레온, 갈리시아의 4개의 광역 자치주를 통과하게 된다.


유네스코는 1993년 이 순례길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 보전을 시작한 지 30년이 되고 있다.

<스페인 전도>

드골공항에서 바욘역까지 운행하는 고속버스의 운행 시간은 12시간으로 나와 있는데 운전사 혼자서 어떻게 운전할 수 있을까? 운전기사를 너무 혹사시킨다고 생각했다.


앞자리에 앉은 나는 운전사가 조는지 안 조는지 셀프 감찰관이 되어 그가 졸면 정신을 차리도록 경종을 울려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기우였다. 4시간 만에 운전기사가 교체되어 운행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 그렇지! 노조가 힘센 프랑스에서 운전사를 마냥 혹사시킬 수는 없었으리라. 저녁 9시 30분에 드골공항을 고속버스를 타고 떠나 이튿날 오전 8시 30분쯤에 낯선 바욘역에 도착하였다.


♧ 바욘역에서 생장까지 이동(D-1일 차)


프랑스 바욘역에서 순례길의 출발지인 ‘생장 피드 포르'(Saint-Jean-Pied-de-Port: 이하 ‘생장’이라고 표기한다)까지는 기차나 버스를 이용하는 방법 있었다. 우리는 기차를 타고 이동할 생각으로 기차표를 예약했다. 바욘역에서 14:55 생장으로 가는 기차표를 산 뒤에 남은 5시간 동안 무엇을 하면 잘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그러나 고민할 필요는 조금도 없었다. 나에게 아내가 자원봉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외하는 아내가 준비한 계획은 ① 비아리치 해변 산책 ▷ ② 바욘 대성당 관광 ▷ ③ 점심 식사 ▷ ④ 유적지 및 생태공원 탐방 후 ⑤ 바욘역에서 생장으로 이동하기로 계획이 수립되어 있었다. 나는 이 지방을 잘 모르기 때문에 아내의 스케줄을 비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딱 부러진 정보도 대안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아내가 짜둔 한나절의 활동계획에 무조건 순응하는 것이 아내를 사랑하는 지름길이라 생각했다. 약간의 불편은 있더라도 필요악이라 생각하면서 사랑으로 대체하는 것이 무난하겠다는 판단을 했다.


(좌) 바욘 대성당 내부 (우) 식당에서 점심식사

(좌) 바욘의 아도르 강변 (우) 바욘의 시내 다양한 건물들

바욘 시내 관광을 주마간산식으로 마치고 생장으로 가기 위해서 바욘역에 도착해서 보니, 예약된 기차 편은 철도노조의 파업으로 운행을 중지한다는 안내가 전광판에 영어와 불어로 떠올랐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태라서 바욘 역에서 전쟁 피난민처럼 새우잠을 자게 되지 않을까 걱정되었지만 그것 또한 기우였다. 같은 처지가 된 프랑스 국적의 순례자들로부터 철도파업은 자주 경험하는 사태라며 철도회사가 대체 교통수단을 마련해 줄 거라며 걱정하지 말란다.


역시나 순례자들은 정해진 시간에 철도회사가 마련한 ‘바욘행 셔틀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옆자리에 앉은 81세의 프랑스 노인은 이 순례길을 네 번이나 걸었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노인의 말을 듣고 하도 기가 막혀서 그 연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대답 또한 나의 기대를 넘는 수준이었다. 한 번도 완주를 못했기 때문이란다. 요컨대, 구간 구간을 잘라서 일부만 걸었던 경험이 네 번이라는 얘기였다. 그러면 그렇지 그렇고 말고! 성급하게 타인을 존경하면 후회한다는 경륜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든 지식 아니겠는가?


불맹(불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인 나로서는 영어를 사용해 주기를 눈빛으로 간청했더니 노형은 약간 당황해하면서 언어 버전을 불어에서 영어로 바꾸자 떠듬거리는 것이 내 수준이라서 동병상련하기로 했다. 드디어 노형은 '침묵은 금'이라는 사실을 동의하기 싫었는지 불어와 영어를 혼용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노형은 감기에 걸렸는지 몰라도 마스크를 턱 밑에 걸치고는 능숙한 프랑스어에다 서툰 영어를 섞어서 설명을 계속했다. 그는 왜 자기가 소에게 경을 읽고 있다는 중차대한 과오를 깨닫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아는 체하려고 안달을 할까? 안달루시아 출신인가 의심스럽다. ㅋㅋ


할 수 없이 구글 번역기를 꺼내 소통을 시도하자 노형은 이제야 겨우 나의 처지를 알아차리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였다. 노형이 내게 전달하고자 하는 요지는 “순례자는 배낭은 가볍게, 마음은 경건하게, 행동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걸으라”는 거룩한 충고였다. 얼굴이 예수님을 많이 닮은 프랑스 노형과 두서없는 대화를 나누다 보니 생장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노형과 순례자들의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가다 보니 순례자 사무실에 도착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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