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0일 차 / 프랑스 순례길 출발지인 ‘생장’에서 한 일)
순례자 사무소에 들러 순례자 여권(크리덴셜)을 신청하기 위해서 국적과 이름, 나이, 여권번호, 그리고 순례목적을 기재하여 직원에게 건네주자, 설문서에 대답을 원했다. 순례길을 걷는 목적을 1) 종교적인 이유, 2) 영적인 이유, 3) 문화적 이유, 4) 스포츠, 5) 기타 라는 항목으로 나누고 그중에서 하나를 고르라 했다. 객관식이었지만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1)과 2)는 구별할 수 없는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3)이나 4)도 전혀 무시할 수 없으므로 결국은 1)~ 4) 이유가 복합된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5) 번 ‘기타’를 골라서 제출했다.
즉석에서 크리덴셜을 발급해 주며 수수료 2€를 받았다. 크리덴셜은 작은 병풍처럼 7겹으로 접혀 있었다. 그것은 수첩이나 휴대폰보다 약간 커서 휴대하는 데는 거추장스럽게 디자인되었다. 이 여권에는 순례길 전 구간에 있는 알베르게(순례자 합숙소), 바(BAR)나, 종교시설 등에서 ‘세요’ (스탬프)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영어로 친절하게 또박또박 설명해 주었다. 크리덴셜에는 스탬프를 찍을 수 있는 칸이 무려 72개나 되었다.
하루에 두세 개의 세요만 받으면 된다는 자원봉사자의 말을 듣고서는 그것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순례길 800km를 어떻게 완주할 것이냐? 그것이 문제였다. 순례자 사무소 자원봉사 요원은 우리 부부에게 순례길 각 코스의 해발 높이, 걷어야 하는 거리와 시간에 대한 정보와 제1코스 내에 소재한 ‘알베르게’(순례자 숙소) 목록과 그들 각각에 대한 필수 세부 정보를 유인물로 제공하면서 우리의 장도를 축하했다.
순례자 사무소의 안쪽 벽면에는 순례길의 마크이자 순례자 배낭의 액세서리로 알려진 ‘가리비 껍데기’를 2€유로의 기부금을 내고 각각 한 개씩 챙겨 나왔다. 흡사 서울대학교 배지같이 생긴 가리비 껍데기의 유래는 예수의 제자 중에서 최초로 순교한 성 ‘야고보’의 전설에 근거하고 있다.
가리비에 대한 전설의 버전은 여러 개인 것 같다. 순교한 야보고의 시신을 배에 태워 바다로 떠내려 보냈는데, 스페인 이베리아 해안에 닿았을 때까지 가리비 껍데기들이 달라붙어서 바닷고기로부터 야고보의 시신을 보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야보고의 유해가 스페인에서 발견되자, 그가 복음을 전하면서 걸었던 길이자, 야보고를 기리는 사람들이 시신을 안치하기 위해 건축한 성당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이다.
대성당을 프랑스로부터 찾아가는 지름길을 “산티아고 프랑스 순례길”이라고 한다. 그런 연유로 노란색 가리비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안내하는 표지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수녀의 여행기를 보면 사뭇 허황하게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다. 성 야고보의 제자들이 배로 실어온 그의 관을 뭍으로 옮길 때 마침 해변에서 벌어지고 있던 혼인 잔치를 본의 아니게 방해하여 놀라게 했다.
그 바람에 신랑이 타고 있던 말이 펄쩍 뛰어 바닷속으로 내리 달았다. 신랑과 말은 익사한 것으로 보였다. 그때 성 야고보의 기적이 나타났다 신랑과 말이 사나운 물속에서 둘 다 살아 나온 것이다. 그들은 바다에서 나와 해변으로 올라왔는데 말과 신랑을 칭칭 감고 있던 미역줄기에 가리비 껍데기가 많이 매달려 있었다(조이스 랩, 『느긋하게 걸어라』 번역본 32쪽).
그래서 가리비 껍데기는 성 야보고 성당으로 가는 사람들의 주요 상징 마크로 매달고 다니게 되었다고. 그 모양을 석유회사인 극동 Shell이 로고로 쓰고 있기에 매년 산티아고 순례길 보수나 정비에 쓰는 재원을 기부하고 있다고 한다. 순례길을 자발적으로 걷는 순례자라면 가리비 껍데기는 '순례자 공동체'의 상징으로, 액서리나 기념품으로 책길만 했다.
생장은 프랑스 남서부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산티아고 프랑스길(Camino Francés)의 주요 출발지 중 하나이다. 이 마을은 피레네 산맥의 기슭에 자리 잡고 있으며,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 근처에 위치해 있다. 이 마을은 프랑스의 바스크 지방에 속하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전략적인 위치에 있다.
이 마을은 12세기에 축조된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순례자들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려면 이곳을 거쳐가는 관문이었다. 생장에서 해야 할 일을 대충 챙기고 나서 시간이 남아 이 마을의 유적을 답사하기로 했다. 17세기에 건축된 요새인 시티델(Citadelle de Saint-Jean-Pied-de-Port)은 순례자들이 스페인으로 넘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머물려 준비를 점검했던 마을이다.
13세기에 건축된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노트르담 성당(Église Notre-Dame du Bout du Pont)은 순례자들이 출발하기 전에 기도하던 교회이다. 구시가지 입구에는 바유브 포르테(Porte de Navarre)가 있는데 이는 마을의 주요 입구 중 하나로, 순례자들이 드나들었던 ‘문’이다.
바스타이드 거리(Rue de la Citadelle)는 중세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는데, 돌로 포장된 도로와 돌로 지어진 집들과 상점들이 모여 있다. 이 마을에는 북쪽에 있는 나바르 문, 동쪽에 있는 생자크(야보고) 문이 있다.
서쪽에 있는 프랑스 문(Porte de France)은 프랑스로부터 들어오는 주요 입구로 순례자들은 이 문을 통해 마을로 들어와서, 나바르 문(Porte de Navarre)이나 생자크 문(Porte Saint-Jacques)을 통과해 바여흐로 순례길로 들어선다. 남쪽에 있는 스페인 문(Porte d'Espagne)은 스페인으로 향하는 순례자들이 지나가는 길목에 있다. 이 문은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으로 들어가기 전의 마지막 문이다.
예로부터 ‘문’이란 드나들기 위한 통로이자 출발과 도착하는 지점이며 공사(公私) 공간의 경계를 구분하는 필수 시설이다. 이러한 유적들은 다행히 반경 500m 안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1시간이면 충분하게 답사할 수 있었다.
이제 예약된 호텔을 찾아가 체크인한 후에 마트에 들러서 내일 점심거리와 간식을 준비했다. 돌아오는 길에 레스토랑에 들려서 저녁식사를 했다. 호텔로 돌아와 내일 코스에 대한 사전 학습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