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일 차 /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 레온)
오늘(10.14)의 코스는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Mansila de las Mulas)를 출발하여 ▷ 우에하(Archueia) ▷ 레온(Leon)까지 총 18.5km를 4시간 30분 정도 걸었고 걸음 수는 4만 8천 보였다. 거리는 짧지만 길은 지루하다. N-601도로는 차량의 소음과 매연 때문에 약간 힘들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떠날 준비를 하는데 고양이 한 쌍이 객실마다 순례하며 순례자가 흘리고 간 음식을 찾고 있다. 6시 30분 숙소를 떠나 오늘의 목적지 레온을 향해 걸었다. 레온은 순례자들이 붐비는 곳이기 때문에 빨리 가서 숙소를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내 어깨를 짓눌렀다. 침대를 구하지 못하면 노숙을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다. 그래도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시내에 문을 열고 영업을 하고 있는 베이커리에서 빵과 우유로 아침 식사를 때웠다. 자동차들이 고속도로 위를 매우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큰 도시로 들어가는 평지 길은 너무 지루하고 피곤했다. 지친 내 발길이 가는 대로 걷다가 길을 잘못 들어 당황해서 되돌아오기도 했다. N-601도로는 걷기에 좋은 길은 아니었다. 차량들이 빠른 속도로 달리면서 소음과 매연을 살포하면서 약을 올리고 지나가기 때문이다.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 가까이에 있는 데슬라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넜다. 오른쪽에 있는 주유소를 지나자 자동차 도로를 달리는 차량들의 속도가 한층 빨라져 위험했다. 점심을 KFC 햄버거로 때우고 큰 도시로 들어섰다. 포르마 강의 다리를 건너고 N-601 옆으로 나 있는 길을 왼쪽으로 돌아가니 비 야렌테마을이 보였다. 마을이 끝나자 아르카우에하가 보이는 언덕 앞에서 오르막길이 나타났다. 레온은 스페인 북부의 대표적인 공업 도시이다. 레온의 초입 변두리에서 공장지대를 만났는데 이곳이 발델라푸엔테라고 한다. 왼쪽으로 돌아 걸어가면 N-601의 옆으로 나 있는 인도로 걸어가야 했다. 포르티요 언덕을 지나면 철교가 나타났는데 이곳에서 레온의 시내가 보였다. 계속 걸어서 큰 병원 앞을 지나고 작은 광장을 만나 거리에 있는 벤치에서 잠깐 쉬며 초콜릿을 꺼내 먹었다. 도심까지 외롭게 걸어가기 싫어서 영어가 되는 스페인 친구들을 골라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걸었다. 레온시는 지금까지 순례길에서 지나온 어떤 도시보다도 화려하고 복잡했다.
주말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거리에 순례객들이 현저하게 불어났다. 레온에서 출발하는 순례자들이 많이 늘어났기 때문이란다. 알베르게에 침대가 남아 있지 않아서 레온 대성당을 지나서 한 시간 이상 헤매다 턱없이 비싼 아파트 형 숙소를 겨우 구했다.
무엇보다도 급한 일이 빨래였다. 우리가 빌린 아파트에는 세탁기가 없어서 빨래거리를 챙겨서 나 홀로 빨래방을 찾아갔다. 빨래의 양도 많고 이용자들이 많아서 순서를 기다려야 할 것 같아 구글지도에서 다른 <빨래방>을 찾아냈다.
유료 빨래방 세탁기의 사용법과 주의사항을 충분하게 이해해야 세탁물을 상하지 않게 세탁할 수 있다. 세탁기 사용법과 주의사항은 스페인어로 쓰여 있어서 해독이 불가하여 구글번역기의 <카메라 렌즈>를 사용했더니 불완전한 번역은 내 나이에 터득한 통밥을 굴려서 그 내용을 추정하였다. 덕분에 빨래방 세탁기 사용법을 터득함으로써 아내에게 이혼당하거나 아내가 나보다 일찍 세상을 떠나더라도 나는 홀로 설 수 있는 재능 하나를 보유하게 되었다.
첫째, 세탁기에 넣을 코인을 준비해야 했다. 코인이 없으면 <빨래방> 안쪽에 매달려 있는 <동전교환기>에서 지폐를 코인으로 바꾸라고 다른 순례자가 알려주었다. 친절은 만병통치약이라 고맙기 그지없다. 문제는 코인 교환기에 바꿔줄 동전이 없다는 문자가 떠서 고민 좀 하다가 빨래를 하러 온 마을 주민에게 은행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동전을 바꾸어 주었다. 친절은 천당에 입당할 수 있는 공짜 티켓이다. 이때 지폐만 있고 동전이 없다면 다른 순례자들이나 마을 주민에게 동전 교환을 부탁하는 임기응변과 용기가 필요하다.
둘째, 세탁기 문을 열어 빨랫감을 세탁기에 안에 몰아넣고 문을 닫는다. 세탁물에 붙어 있는 라벨을 보고 물세탁이 가능한 빨래만 세탁기를 사용해야 된다. 세제와 섬유 유연제는 이미 세탁기에 충전되어 있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세탁기에 신발이나 고무제품이나 배낭 등을 투입하게 되면 세탁기가 고장이 나기 때문에 투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말씀의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아니 순례들을 바보로 아는 것 같아 불쾌하다.
셋째, 세탁기 물의 온도 버튼을 선택해서 누른다(frio냉수/ templado온수/ caliante 뜨거운 물/ delicado 섬세한 빨래). 대개 온수(templado)를 누르는 것이 무난하다고 옆에서 지켜보던 네덜란드 여자친구가 말해준다. 세탁물 라벨을 읽지 않고 세탁기에 투입하여 세탁하여 옷을 못 입게 된다 해도 자책 사유이기 때문에 배상을 받지 못한다고 발뺌을 하는 안내 판이 붙어 있다.
넷째, 세탁기에 코인 4€를 투입한다. 순례자 빨래의 양이 많지 않은 경우에는 12kg까지는 4€이고, 16kg까지는 6€를 투입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세탁물의 양이 작을 경우에는 다른 순례자와 같이 세탁기를 공동으로 사용하고 비용을 분담하여 빨래를 하면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시작(START) 버튼을 누르면, 세탁기가 30분간 돌아가면 작동을 멈춘다.
여섯째, 세탁 바구니에 세탁물을 꺼내서 건조기로 옮긴다.
세탁기에서 탈수된 빨래를 건조기에 투입하고 문을 닫는다. 건조기에 2€를 투입하고, 건조 온도(주로 Media 60^)를 선택한 후에 시작 버튼을 누른다. 건조기는 15분 동안 작동 후에, 자동으로 멈추면 이때 건조기에서 빨래를 꺼낸다. 이렇게 세탁된 빨래를 가지고 숙소로 돌아오니 아내는 잠을 자고 있었다. 잠자는 아내의 얼굴은 콩쥐 팥쥐 엄마처럼 보였다.
레온 성당에 들어가려다 폐문 시간이 다 되어 하루를 더 머물면서 레온대성당은 내일 탐방하기로 하고 레온에서 제일간다는 중국식당을 찾아갔다. 중국 여행을 해 본 사람들은 경험했겠지만 우리나라에도 볼 수 있는 샤부샤부 식당이었다. 자기 마음에 드는 식재료를 골라서 주방에 조리를 부탁하여 식사를 하는 시스템이었다. 돼지고기, 소고기, 해산물, 초밥, 꿔바로우, 생선튀김, 철판구이, 과일 등을 골라 비싼 가격으로 완전 포식을 했다. 하지만 결혼을 앞두고 처음 인사를 드리려고 처갓집에 들렸을 때 대접받은 식단 같이 차려 먹을 수 있었다. 모처럼 먹고 싶었던 새우, 게, 소고기, 야채, 버섯 등을 골라서 조리해서 한 시간 이상 식사를 하고 나니 배가 후련해졌다. 순례길 도시마다 중식당이나 한식당, 일식당이 있으면 순례길 걷기가 한층 더 쉬울 것 같은데 스페인 사람들은 이런데 눈을 돌리지 않은 이유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이 식당에도 동양인들, 특히 중국인 식객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중식당의 매니저 말에 의하면 코로나 때문에 동양권에서 찾아온 순례자들이 끊겨서 중식당과 일식당이 문을 닫는 음식점이 많이 생겼다고 울상을 지었다.
이튿날 오전에 한 시간 동안 걸어가면서 시내를 기웃거리다 레온대성당을 찾기로 했다. 레온은 스페인 북서부의 순례길에 위치한 도시로서 카스티야 이 레온 지방의 주도이다. 레온시의 도시 인구는 우리나라 충주시 정도 크기인 12.5천 도시이다.
레온은 586년에 서고트족에게, 712년에는 무슬림에게 정복당했다. 그 후 856년에 오르도뇨 1세가 레온을 되찾았으며, 910년부터 1301년까지는 레온 왕국의 수도였다. 스페인 북부의 대표적인 도시인 레온에서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는 아직 약 300km 남아 있다. 아직도 갈길이 막막하기만 하다.
산토도밍고 광장을 지나 15분 만에 구시가지로 들어섰다. 왼쪽에 가우디가 설계한 카사 데 보티네스가 있었지만 시간관계로 외부에서 눈팅만으로 끝내고 더 걸어가니까 레온의 상징이라고 알려진 레온 대성당(León Cathedral)이 나왔다. 오류도뇨 2세는 이슬람의 침입을 방어한 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이곳에 대성당을 지을 것을 명령했으며 그는 사후에 이 성당에 묻혔다.
레온 대성당의 공식명칭은 "산타 마리아 데 레온 대성당"이라고도 불리며, 스페인에서 프랑스 영향을 받은 고딕 건축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대성당은 13세기에 주요 구조물은 건축되었지만 다른 시설들은 16세기에야 완공되었다. 대성당은 125개의 창문과 3개의 장미창을 두고 실내를 다채로운 빛으로 가득 채워 주고 있다. 유럽의 건축기술을 동원하여 지은 대성당은 카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자들에게 중요한 경유지에 자리잡은 스페인 고딕 건축의 걸작중의 하나이다.
주요 외관은 두 개의 큰 첨탑과 웅장한 장미 창문을 두고 있다. "Virgen Blanca의 포털"로 알려진 중앙 포털은 조각상과 부조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눈에 띄게 높은 벽을 지지하고 큰 창문을 허용했다. 대성당 내부의 레이아웃에는 이중 통로로 둘러싸인 중앙 본당이 장엄하게 꾸며져 있다. 높이와 가느다란 기둥은 통풍이 잘되고 넓은 실내 공간을 만들어 냈다. 건축가인 랭스와 아미앵은 프랑스 고딕 대성당의 스타일을 밀접하게 따르며 수직성과 빛을 강조하는 성당으로 설계하였다. 대성당에서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는 스테인드글라스를 광범위하게 사용하여 건축적인 아름다움을 창조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대성당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사용하는 것은 창을 통한 빛으로 절대자에 대한 위엄과 신비감을 창출하고 있다.
천장의 갈비뼈 같은 볼트는 고딕 건축의 특징인데 지붕의 무게를 분산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14세기에 추가된 고딕 회랑은 섬세한 아치와 아름다운 조각품으로 장식되어 있다. 대성당 내에 위치한 산티아고 예배당은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걷는 순례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스페인의 대다수 대성당과 마찬가지로 이 성당도 다양한 개축과 추가적 건축을 하였으며, 일부 예배당과 제단화에는 바로크와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았다.
대성당에서 특히 눈길을 끌고 있는 것이 백색 성모상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전통적으로 공경의 대상이 백색 성모상은 대성당의 내부에서도 볼 수 있다. 성당의 서문 상단부에 있는 팀파눔에는 최후의 심판 광경이 묘사되어 있다. 성당 내부에서 채광을 하고 있는 눈부신 스테인드글라스를 보는 이의 경탄을 자아냈으며, 호두나무로 제작된 주 제단은 프랑스 장인인 리콜라스의 작품이라고 한다.
레온대성당은 산티아고 프랑스길의 중요한 유산의 하나로, 그 아름다움과 역사적 가치는 많은 순례자와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다. 대성당 안에는 보물관(Museum of Sacred Art)이 있어, 중세 시대의 종교적 예술품과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레온 대성당의 입장료는 주 대성당은 €7이고 인접한 박물관은 €5인데 순례자에게 할인은 제공되지 않는다. 이 티켓에는 멋진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과 열린 회랑에 대한 입장이 포함된다.
이시도로 성당(Real Colegiata de San lsidoro de Leon)은 레온의 또 다른 보물로 로마네스크와 바로크 양식의 집합체로 '이시도로'의 유해를 모시고 있는 성당이다. 이 성당을 새로 지은 후 산 이시도로의 유해를 모셔오고 1063년 산 이시도로 성당으로 축성되었다.
성 이시도로의 유해가 레온으로 옮겨질 때 마른땅에 비가 내리고, 병든 자들이 치유되었으며, 여러 가지 기적적인 사건들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성 이시도로는 레온의 수호성인으로 받들어졌다. 또 다른 전설은 레온 왕국의 한 왕이 아프리카에서 온 용맹한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이 노예가 성 이시도로의 축복을 받기 위해 성당을 찾았다고 한다. 노예는 성당에서 기도한 후 기적적으로 자유를 얻었으며, 이후 그의 후손들은 레온에서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중세 시대 어느 날, 성체를 도둑맞은 사건이 발생했는데, 도둑이 성당을 떠나는 순간 성체가 빛을 발하며 도둑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고 한다. 도둑은 그 자리에서 회개하고 성체를 성당으로 돌려주었으며, 이후 이 사건은 성당의 기적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성당 내부의 한 예배당에서는 성모 마리아가 현현하셨다는 전설이 있다. 이 현현은 성당을 방문한 순례자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많은 이들이 성모 마리아의 축복을 기원하며 이곳을 찾게 되었다.
성당 정문 오른편에는 오직 성 년에만 열리는 '자비의 문'(Puerta del Perdon 또는 용서의 문)이 있는데, 병이 나서 산티아고까지 갈 수 없는 순례자들이 이 문을 통과하면, 순례길을 완주한 순례자들과 같은 은총을 받을 수 있다. 자비의 문은 성당의 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이 문을 통과하는 순례자들에게 완전한 사면과 죄의 용서가 주어졌다. 특히 병자나 죽음을 앞둔 순례자들이 이 문을 통해 들어가기를 원했으며, 그들은 이 문을 통과한 후 평화롭게 생을 마감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자비의 문은 자비의 해(Holy Years)에만 특별히 개방된다.
팀파눔의 아래쪽에 개와 사자로 보이는 동물의 머리 조각상이 있는 데 이에 관련된 전설이 내려온다. 중세기에 이곳에 온 한 쌍의 남녀가 '자비의 문'의 효험에 대해 큰소리로 비웃었다. 종교적인 믿음이 없었던 이들이 이 자비의 문을 지나려 하자 문을 내려다보고 있다. 동물 조각상이 고개를 돌려 그들을 향해 큰소리로 짖었다. 그 소리는 수만 명이 모여서 내는 소리만큼이나 컸고 잠시 살아났던 두 동물은 머리의 방향이 살짝 바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굳어버렸다고 한다. 정문은 어린 양의 문(Puerta del Cordero)으로 불린다. 이 문 상단부 팀파눔의 조각들은 인간들을 위해 희생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아뉴스데이(하느님의 어린양)'를 주제로 하였다(홍사영, pp.170~171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