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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인문기행』
26. 비바람 타는 순례자

(제24일 차 / 폰세바돈~폰페라다)

by 소울메이트

26. 비바람 타는 순례자들



♧ 오늘의 코스


오늘(10.19)의 코스는 해발 1500m 고지에서 폰세바돈(Foncebadon)을 출발하여 ▷ 해발 600m의 폰페라다(Ponferrada)까지 27.4km를 7시간 동안, 4만 2천 보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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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대비를 맞으며


폰세바돈으로부터 내리막을 길을 내려오는 동안 내내 세찬 비바람과 싸우느라고 고생 꽤나 했다. 거센 비바람은 나뭇가지들을 부러뜨리며 지나갔고 또 다른 비바람이 우리의 비옷을 벗기려고 용을 쓴다. 먼 나라에서 찾아온 우리에게 겁을 주는 것 같았다.


거추장스럽기 짝이 없는 판초 우의를 걸치고 등산 모자를 착용했지만 비바람의 횡포를 막지 못했다. 머리에는 빗물이 흘러 안경 렌즈에 성애가 끼어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안경을 벗어버리니까, 만물이 희미하게나마 소생된 느낌이다. 바지는 벌써 젖어서 무겁기 짝이 없다.


뜻밖에도 판초우의는 차가운 비바람을 막아주는 방한복으로 기능을 바꾸었다. 하지만 등산화에도 빗물이 새어 들어와 양말 속에서 대피해 있던 발을 적신 지 한참 되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신발 끈을 꿰는 구멍으로 물을 뻐걱뻐걱 토해 낸다.


높은 산에 꼭대기에 살고 있는 키 작은 나무들은 비바람을 피하느라고 잔뜩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을씨년스럽다. 재들은 그래서 작은 키로 산 중턱을 지키기로 한 모양이다.


내리막길이 자갈밭이라 미끄러워서 나무 막대기를 구해서 지팡이로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순례길을 24일 동안 걷는 동안 스틱을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하산 길에 파인 물웅덩이에 몇 번이나 빠지며 웃다가 울먹인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소재로 한 ‘The Way’에서 조난을 당하는 주인공의 아들을 생각났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고생을 사서 하다니 도대체 어처구니가 없다. 비바람 때문에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 찍기도 여간 힘든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찍는 의지는 버리지 않았다. 아뿔싸, 약간의 비탈진 길에서 바위 위에 미끄러져 찔레꽃과 산딸기 숲에 내 몸이 뒹굴고 말았다.


때문에 판초우의는 찢어졌고, 몸에는 가시에 긁힌 자국이 깊어서 상처를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부터 쓰리기 시작한다. 다행스럽게도 사지는 멀쩡해서 여간 다행이 아니다. 감사합니다. 하느님!


♧ 철제 십자가에게 소원을 빌다.


라 쿠르즈 데 히에로(La Cruz de Jierro)에 도착했다. 크루스 데 페로는 스페인의 레온(Léon) 지방에 위치한 몬테 이레고스(Monte Irago) 산 정상에 있다. 전설에 따르면, 이 관습은 고대 켈트인들의 의식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켈트인들은 여행을 떠날 때 자신들의 무거운 짐과 걱정을 돌에 담아 특정한 장소에 놓고 가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 관례는 짐을 내려놓고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고 한다. 순례자들은 자신의 고향에서 돌을 가져와 크루스 데 페로에 놓음으로써, 자신의 죄와 짐을 내려놓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 행위는 또한 성 야고보에게 자신의 기도를 바치고, 순례의 여정을 무사히 마치기를 기원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 오늘날에도 많은 순례자들이 이 전통을 따르며 크루스 데 페로에 돌을 놓고 간다. 이 돌들은 각자의 이야기와 기도를 담고 있으며, 철탑 주위에 쌓인 돌들은 그동안 이곳을 지나간 수많은 순례자들의 발자취를 증명하고 있다.


순례자들은 저마다 고향이나 자기 나라에서 가져온 조약돌을 십자가 밑에 내려놓으며 기도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놓고 간 돌멩이와 매단 헝겊이나 리본, 스티커에 소원이나 다짐, 기도문이나 메시지들이 쓰여 있다. 헝겊에 매달린 돌들은 바람에 날려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이 애처롭기 짝이 없다.


어찌 보면 비만인 국기봉처럼 생겼지만 꼭대기는 십자가가 만들어져 있다. 하느님의 이쑤시개처럼 멋대가리 없는 인공 구조물이다. 우리네 성황당처럼 각종의 소원과 사연이 즐비하다.


우리는 조약돌 하나도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남들이 하는 기도를 드릴 수 없어 허전했다. 이빨이라도 빼서 탑 아래에 놓고 안녕을 빌어야 하는가? 염치없지만 온 김에 맨손으로 무사고를 빈다. 무임 승차자의 기쁨을 아시는지? 남이 놓고 간 조약돌 중에서 마음에 드는 문구가 쓰인 돌을 골라 좋은 위치로 옮겨 놓으며 소원을 빌었다.


아내가 묻는다. 당신의 소원은 무엇인가? 고, 나도 아내에게 묻고 싶었지만 참았으므로 함부로 가르쳐 줄 수는 없다. 철제 십자가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모습은 하나같다.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카메라 렌즈를 향하는 꽤 진지한 모습들.


비바람 때문에 남에게 사진을 부탁할 염치가 없어서 우리 부부는 교대로 기념사진을 찍고 탑의 꼭대기를 올려다본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에 5m 길이의 철 십자가, 산꼭대기에 전봇대처럼 꾸밈없이 삐쭉 솟아 오른 철제 십자가! 보면 볼수록 매력도 재미도 없게 생겨먹었다. 그저 고독하게 보여서 동정하지 않을 수 없다.


♧ 폰페라다의 템플기사단 요새


순례자 가이드북을 보면 '몰리나 세가'의 풍경이 너무나 아기자기하단다. 산티아고 순례길 800km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입을 모은다. 소박한 마을에 자리 잡은 세 개의 카페에는 비바람을 피하는 순례자들이 젖은 옷을 짜서 순간이나마 말리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서 앉을자리가 없었다.


가이드북에서 소개한 이곳의 명주도 마시고 싶었지만 술을 마시고 비 내리는 산을 내려갈 것이 걱정되어 참기로 하고 차를 주문하고 마시는데 사람들이 많아서 꽤 긴 시간이 날아갔다. 비바람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아름답다는 경치를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다.


여기 알베르게에 투숙하고 싶어 방을 찾아 염탐했지만 만원이라서 폰페라다까지 7.9km를 더 걸어가야 했다. 내려가는 동안 비가 그쳐서 하늘이 멀쩡하게 맑아졌기 때문에 폰페라다의 템플기사단 요새에 잠깐 들렀다. 이 요새는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1282년에 지어졌다.

템플기사단의 요새

마침 수요일이라서 입장료를 면제받았다. 그러나 시내의 알베르게에 침대가 없어서 비싼 호텔에 투숙해야 했다. 비싼 가격이지만 오늘 하루 고생한 우리 부부의 몸에 대한 예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호텔의 건조기를 이용해서 빨래들을 쉽게 말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본전을 뽑았다고 자위하기로 했다.


문제는 낮에 찍은 사진이 통째로 사라져 버린 사실을 확인하고 망연자실했다. 비바람 때문에 휴대폰을 닫지 않고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 발생한 사건인 것 같다. 아내가 찍은 사진으로 오늘을 기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순례를 시작한 지 24일 만에 가장 힘들었던 하루라고 생각된다.


♣ 종교와 전쟁은 궁합이 안 맞아


이베리아 북부지방은 이슬람 세력과 가톨릭 세력이 80년간 전쟁을 해서 기독교 세력이 지배했다. 종교와 전쟁은 양립될 수 없는 개념으로 문제는 종교의 본질은 사랑이고, 전쟁의 본질은 증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가 다른 나라들 간에 전쟁은 수없이 일어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벌써부터 종교 전쟁에 대한 이론을 적립하면서 종교적 이익을 위해 전쟁을 정당화하는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첫째, 전쟁은 방어적 목적이나 신앙의 보호 등, 정당한 이유((Just Cause)가 있어야 한다. 둘째,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합법적인 권위((Legitimate Authority)를 가진 자, 즉 국가나 교회와 같은 권위 있는 기관에 의해 치러져야 한다. 셋째, 전쟁의 목적은 정의롭고 선한 의도(Right Intention)로 이루어져야 한다. 넷째, 전쟁의 결과로 기대되는 이익이 전쟁으로 인한 피해와 비례(Proportionality) 해야 하며, 불필요한 폭력이나 고통을 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이러한 기준들을 통해 전쟁의 정당성을 논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상은 평화와 사랑의 가르침을 강조하는 기독교의 본질과도 일맥상통하기 때문에, 전쟁 자체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현대에 와서 이러한 원칙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 천주교인이 대부분인 이태리가 사회혼란이 극심한 이유는?


(삼성 창업자 이병철의) 17. 이태리 같은 나라는 국민의 99%가 천주교도인데, 사회혼란과 범죄가 왜 그리 많으며 세계의 모범국가가 되지 못하는가?


이 질문에 대하여 차동엽 신부는 이탈리아에서 살아보니 이탈리아 국민들의 평균적인 윤리의식과 그들의 기준은 엄정했다고 평가했다. 물론, 마피아가 있지만, 그건 극소수의 집단일 뿐이라고 보았다. 결국 이병철 회장의 인식에 동의하지 않았다(차동엽: 질문 17에 대한 대답).


김안제 교수는 종교인의 수와 모범국의 수준은 꼭 비례하지 않다는 사실을 아프리카 후진국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그러나 천주교를 비롯한 특정종교의 교인이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나라의 범죄율이 높은 경우도 있겠지만 그런 나라에 종교가 없었다면 더 나쁜 국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견해를 피력했다(김안제: 755).


이어령 교수는 이 질문의 사례를 이태리가 아닌 미국으로 바꾸어 대답하였다(이어령: 51-52).


--범죄도 없고 대낮에 살인도 안 하는 아주 조용한 비기독교의 전체주의 국가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나라에서 살기 위해 비자를 얻겠다고 장사진을 치는 것은 미국 대사관 앞이지요. 왜 사건도 많고 모범도 못 되는 미국에 가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걸까요? 열린 악은 닫힌 선보다 희망이 있어요. 내일이 있는 겁니다. 조용하고 사건도 없고 총성도 안 들려도 덮어진 악은 영원히 구제의 길이 없거든요. 당장은 조용해도 통치자 한 사람만 죽어도 나라 전체가 망하는 것이에요. 미국은 아무리 시끄럽고 대통령을 비롯해 정상급 지도자들이 대여섯 명씩이나 암살을 당해도 끄떡없었습니다. 앞에서 말한 ‘자유의지’가 인간이 절대 버릴 수 없는 천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질문자가 지적한 대다수의 국민이 천주교 신자인 "이탈리아"의 사회 혼란과 범죄가 발생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종교적 신앙이 높다고 해서 항상 도덕적인 행동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신앙과 실제 삶 사이의 간극이 존재할 수 있으며, 사람들은 종교적 가치관을 일상생활에 적용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신앙이 단순한 문화적 정체성으로 남아있다면, 그 영향력은 제한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이탈리아는 지역별 경제 차이가 크고, 남부와 북부 간의 경제적 불균형이 심각하다. 이러한 경제적 어려움이 범죄율과 사회 혼란을 증가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셋째, 이탈리아는 마피아와 같은 범죄 조직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조직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며, 불법적인 활동을 통해 부와 권력을 축적하였다. 이와 함께 정치적 부패 문제도 심각하여, 신뢰할 수 있는 법적 시스템의 부재가 범죄와 혼란을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었다.


넷째. 특정 문화에서는 가족이나 지역 사회의 연대감이 강해 사회적 범죄가 은폐되거나 묵인될 수도 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범죄가 발생해도 무감각해서 범죄가 쉽게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다섯째, 나라의 법 집행이 비효율적이거나 사법 시스템이 미비하여 범죄 예방과 해결에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 범죄를 예방하고 처벌하기 위한 시스템적인 노력이 부족하면, 범죄가 만연될 수 있다.


여섯째, 이민자 문제, 인종 차별, 정치적 분열 등 다양한 사회적 갈등이 사회 범죄를 가중시킬 수 있다. 사회가 단결되지 못하면 범죄와 혼란이 발생하기 쉬운 환경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결국, 종교적 신앙이 높다고 해서 사회가 반드시 안정적이거나 범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범죄와 혼란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자는 그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 교회에 다닌다고 모두 진정한 신자라고 말할 수 없다. 그 속에는 알곡이 아닌 가라지가 많이 섞여 있다. 삶과 신앙이 일치해야 진정한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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