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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인문기행』27.포도나무 밭을 사열하다

(제25일 차 / 폰파라다~비야 프랑카 델비에르소)

by 소울메이트


27. 포도나무 밭을 사열하다



♧ 오늘의 코스


오늘(10.20)의 코스는 폰페라다(Ponterrada)를 출발하여 ▷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Villafranca del Bierzo)까지 24.2km를 6시간 동안 4만 2천 보를 걸었다.


폰 페라다에서 차카벨로스까지는 거의 평지길이라서 걷기는 어렵지 않았지만 마지막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까지 5km 정도가 오르막길이라서 약간 힘들었다. 순례길 이정표가 폰 페라다에서 최종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는 약 200.4km라고 알려주었다. 순례를 시작한 이후 600km를 걸었다니 72세 초반인 나 자신이 너무 기특해서 상이라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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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도나무 단풍이 아름답다.


마을을 벗어나자 구릉에 줄 맞춰 심어놓은 포도밭이 전개되었다. 포도나무들은 키가 작고 못생겼다. 하지만 다른 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포도나무 잎사귀가 단풍이 들어 퍽 아름답다.

캄포나리아의 키 작은 포도나무

가이드 북에서 캄포나라야에 있는 와인 공장에 들려서 포도주 한잔 마시고 걸으라고 소개했기 때문에 잔뜩 기대를 갖고 들렸더니 문이 잠겨 있다.


이라체를 포도주 샘의 낭만을 생각하며 찾아갔는데 배반당한 기분이다. 하지만 유럽 여러 나라에서 와이너리를 구경했기 때문에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라고 자위하며 한 시간 정도를 단축할 수 있어서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하며 공장 마당에서 사진만 몇 장 찍고 돌아 나왔다.


오늘의 목적지 <비야 프랑카 델 비에르소>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통과하는 마을 중에서 프랑스 냄새가 가장 많이 나는 곳이란다. 프랑스 사람들이 이 도시를 거쳐 순례를 하다가 많이 정착하였기 때문에 마을 이름에 “프랑카”가 들어갔단다.


이 마을에 있는 ‘산티아고 성당’은 1186년 아스토르가의 주교가 교황청의 허가를 받아 1189년에 완공했다. 로마네스크 초기에 석재 건축물로 주랑이 있고, 성모상을 모신 18세기형 바로크 경당이 있다. 이 성당의 북쪽에는 ‘용서의 문’ 즉, 푸에르타 델 페르돈(Puerta del Perdon)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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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가 순례도중 병이 나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순례를 마치지 못할 사정이 있을 때 이 문을 통과하면,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순례한 것으로 인정해 주었다고 한다. 이 문을 통과하면 순례길 완주자가 죽은 이후 이 세상에서 지은 죄에 대한 벌을 면제받는 특권을 주었다고 한다.


일단은 나도 지금까지 지은 죄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저지른 죄를 사면 받고 싶은 마음에서 그 문을 통과하려 했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오늘은 가는 곳마다 나를 거부하고 있는데 일진이 나쁜가 보다. 이 문은 성년과 축일에만 열린다는 사실을 모른 거다. 이 마을에는 우리나라 TV 스페인 하숙을 찍었던 장소가 있었는데 대여섯 명의 한국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 노년들도 경쟁심은 있다.


순례길에서 미국 애리조나에서 카우보이를 했다는 76세의 노인 부부와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는 이 순례길을 네 번째 걷는다는 말을 듣고 나는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한 번의 순례길도 이토록 힘이 드는데 어떻게 네 번씩이나 걸었다는 말인가? 네 번 걷기는 했지만 한 번도 완주는 하지 않았다고 고해(?)하여 나를 안도하게 만든다. 그는 나이를 먹기를 거부하지 않고 웃으며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말에 경의를 표하였다.


72세로 연노해진 나, 교수직에 있을 때는 열정 하나로 강연이나 책으로 유튜브로 지식과 정보를 축적하여 남들에게 제공하면서 평생을 살아왔다. 열정은 남아 있는 채로 직장에서 은퇴 한 이후부터는 여느 늙은이들처럼 시니어, 어르신, 노인, 노년으로 호칭되고 있다. 그러나 안 보이는 데서는 나를 노털이나 꼰대나 영감탱이로 불려질 것이다. 노인들이 나이 때문에 가지는 여러 가지 콤플렉스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순례길에서 나 같은 노인은 젊은 친구를 만나면 '비교의 비극'을 맛보게 된다. 젊은이들과 어울리기에는 체력이 따라가지 못한다. 그들과 베드레이스는 벌써부터 가당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례길에 와서 외국 노인들의 나이를 감 잡을 수 없어서 통성명하고 나서 나이부터 묻는 실례를 저지르는 못된 습관이 생겼다. 유유상종이 아니라 유유불상종하기 위해서 묻는다면 어패가 있다고 비난할 것이다. 유유상종하다 보면 나 자신도 늙어버리기 때문에 유유불상종을 원칙으로 순례를 하고 싶다.


얼굴에 가로세로로 생겨난 주름살, 마치 바둑판같다. 흰머리 칼과 탈모, 어깨처짐 등 신체적 변화를 겪으면서 자신감을 잃어 가는가 하면 기억력도 현저하게 떨어진다. 아내는 나더러 치매가 왔는지 검사를 받아보라 하지만 그것만은 하고 싶지 않다. 정말 두렵기 때문이다. 다만, 나이 든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규칙적인 운동, 건강한 식습관, 정기적인 건강 검진 등을 통해 신체적 건강을 다지고, 정신적 안정을 도모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하지만 나 같은 노년은 은퇴나 자녀의 독립 등으로 인해 사회적 역할이 줄어들면서 가없는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취미 활동이나 봉사 활동, 동호회 등 사회적 활동에 참여하여 소속감을 느끼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한, 새로운 기술이나 지식을 배우는 것에 도전하여 자신감을 키우고, 세대 간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 부단한 학습 활동을 부지런히 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세대들보다는 행동이 굶 뜨고, 생각이 보수적이라서 뒷전에서는 '꼰대'라는 말을 들을 것이다.


하지만 순례길에서 만난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과도 무작정 어울리고 싶지 않다. 앉으면서 일어나면서 신음을 토해 내거나 잔기침을 하는 노인들, 머리에서 발끝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는 노인들, 입을 열었다 하면 자식 자랑이나 돈 자랑, 현역 때의 직위를 과시하려 드는 그들이 싫다. 그러나 용서의 문을 다녀와야 할 것 같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체면을 차리게 되어 내가 좋은 것만 할 수도 없고 때로는 내가 싫은 것도 해야 한다는 관행을 잘 알고 있다. 김열규 교수는 행복한 노년을 위해 잔소리를 하지 마라, 화내지 마라, 엄살떨지 마라. 노탐을 부리지 마라, 과거를 묻지 마라고 5금을 권했다. 5금을 생활화하기 위해서 오금동으로 이사 가야 할 판이다.


♣ 순례자를 위한 미사


산티아고 순례 프랑스길(Camino Frances)에서 순례자를 위한 미사를 올리는 마을의 성당이 여러 곳 있었다. 이 미사들은 순례자들에게 영적 위로와 격려를 제공하는 중요한 시간이 된다. 순례자들을 대상으로 다음과 같은 몇 개의 마을에서는 미사가 모셔진다.


산티아고 프랑스 순례길 출발지인 생장 피드포르 (Saint-Jean-Pied-de-Port)에서 순례자를 위한 미사가 자주 열린다. 로스 아르코스 (Los Arcos)의 산타 마리아 교회에서, 부르고스(Burgos)에서는 부르고스 대성당에서,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 (Carrión de los Condes)에서는 산타 마리아 교회와 산 페드로 교회에서, 레온(León)에서는 레온 대성당에서, 폰페라다 (Ponferrada)에서는 산타 마리아 교회에서, 비야 프랑카 델 비에르소 (Villafranca del Bierzo)에서는 산 프란시스코 교회에서, 사리아 (Sarria)에서는 산타 마리아 교회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Santiago de Compostela)에서는 대성당에서 매일 순례자 미사가 열리며, 순례자 이름을 호명하며 기도가 진행된다.


이 외에도 많은 마을 중에서 성당이나 수도원,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에서는 순례자를 위한 미사가 열린다. 비야 프랑카 델 비에르소 알베르게에서는 순례자의 발을 씻어 주는 알베르게가 있다고 들었지만 만원이라서 다른 숙소에 체크인을 했기 때문에 짜릿한 위로와 회복의 기회를 갖지 못해 여간 아쉽지 않다.


♣ 광신도와 미친 공산당원은 어떻게 다른가?


(삼성 창업자 이병철의) 질문 18. 신앙인은 때때로 광인(미치광이)처럼 되는데, 공산당원이 공산주의에 미치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


차동엽 신부는 질문자의 의견에 100% 동의했다. 종교는 이성과 감성, 그리고 의지가 어우러질 때, 조화로운 신앙이 가능하다. 이 셋 중에서 하나만 지나치게 강조되면 몽상가나 과격한 행동파나 광신도가 된다. 오직 좌(左), 오직 우(右)라는 이념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종교든 이념이든 보편성을 잃을 때 미치게 된다(차동엽: 질문 18에 대한 대답/ 차동엽:185-188).


김안제 교수는 차 신부의 의견에 동의하면서 지나치게 독선과 이기에 빠져 자기 신앙이나 자기 사상만을 신봉하고 다른 것을 배척할 때 바로 '광인'이 된다고 보았다(김안제: 755).


이어령 교수는 이 질문에 대하여 그런 현상을 이름하여 ‘파나티시즘(Fanaticism)’이라고 한다. 신앙과 무관하게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유독 그러한 현상이 기독교와 공산주의에서 많이 발견되는 것은 종말론 같은 절대적인 이념을 바탕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이어령: 52-53).


요컨대, 신앙인과 공산당원이 극단적인 믿음을 가지게 되는 현상에는 몇 가지 유사점이 발견된다.


첫째, 신앙인이나 공산당원 모두 자신이 믿는 바에 강한 신념이 형성되면 종종 비이성적인 행동이나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둘째, 두 집단 모두 자신의 신념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강한 유대감을 가지며, 집단 내에서의 정체성을 강화하려고 집단 외부에 대하여 적대감이나 배타적 태도를 보일 수 있다.


셋째, 신앙인이나 공산당원 모두 자신의 믿음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강한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때때로 극단적인 행동을 정당화하게 된다.


반대로 신앙인과 공산당원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신앙인은 일반적으로 신이나 초월적 존재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하며, 종교적 가치와 도덕 기준을 판단한다. 그러나 공산당원은 이념적 믿음에 따라 사회적, 경제적 변화를 추구하는 정치적 신념을 갖고 행동한다.


둘째, 신앙인은 주로 개인의 영적 성장과 구원, 공동체의 복지 등을 목표로 삼고 이를 실천하는 반면, 공산당원은 주로 사회적 평등과 자본주의 극복 등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목표에 따라 종종 서로 다르게 해석되고 실행될 수 있다.


셋째, 신앙인의 극단적인 행동은 종종 개인적 신념이나 종교적 열정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고, 특정 상황에서는 신앙의 왜곡으로 비칠 수도 있다. 반면, 공산당원의 행동은 정치적 상황과 권력 구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그 결과가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


넷째. 신앙인은 종교적 신념으로 인해 나타나는 극단적인 행동은 개인의 신앙 문제에 한정될 수도 있지만, 공산당원의 극단적 행동은 정치적 권력을 행사하거나 사회를 변혁하려는 목적에서 발생하므로 사회적으로 더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론적으로, 과격한 신앙인과 골수 공산당원 모두 자신의 믿음과 이념을 극단적으로 주장할 수 있지만, 그 믿음의 본질과 목표, 그리고 행동의 맥락이 다르기 때문에 각기 다른 사회적 영향을 초래하게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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