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일 차 / 폰파라다~비야 프랑카 델비에르소)
오늘(10.20)의 코스는 폰페라다(Ponterrada)를 출발하여 ▷ 콜롬브리아노스(Columbrianos) ▷ 캄포나라야(Camponaraya) ▷ 카카벨로스(Cacabelos) ▷ 피에로스(Pieros) ▷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Villafranca del Bierzo)까지 24.2km를 6시간 동안 4만 2천 보를 걸었다.
폰 페라다에서 차카벨로스까지는 거의 평지길이라서 걷기는 어렵지 않았지만 마지막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까지 5km 정도가 오르막길이라서 약간 힘들었다. 순례길 이정표가 폰 페라다에서 최종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는 약 200.4km라고 알려주었다. 순례를 시작한 이후 600km를 걸었다니 72세 초반인 나 자신이 너무 기특해서 상이라도 주고 싶다.
마을을 벗어나자 구릉에 줄 맞춰 심어놓은 포도밭이 전개되었다. 포도나무들은 키가 작고 못생겼다. 하지만 다른 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포도나무 잎사귀가 단풍이 들어 퍽 아름답다.
가이드 북에서 캄포나라야에 있는 와인 공장에 들려서 포도주 한잔 마시고 걸으라고 소개했기 때문에 잔뜩 기대를 갖고 들렸더니 문이 잠겨 있다.
이라체를 포도주 샘의 낭만을 생각하며 찾아갔는데 실망 천만이다. 배반당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유럽 여러 나라에서 와이너리를 구경했기 때문에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라고 자위하며 한 시간 정도를 단축할 수 있어서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하며 공장 마당에서 사진만 몇 장 찍고 돌아 나왔다.
오늘의 목적지 비야 프랑카 델 비에르소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통과하는 마을 중에서 프랑스 냄새가 가장 많이 나는 곳이란다. 프랑스 사람들이 이 도시를 거쳐 순례를 하다가 많이 정착하여 살게 되었기 때문에 마을 이름에 “프랑카”가 들어갔단다.
이곳에 있는 ‘산티아고 성당’은 1186년 아스토르가의 주교가 교황청의 허가를 받아 1189년에 완공했다. 로마네스크 초기에 석재 건축물로 주랑이 있고, 성모상을 모신 18세기형 바로크 경당이 있다. 이 성당의 북쪽에는 ‘용서의 문’ 즉, 푸에르타 델 페르돈(Puerta del Perdon)이 있다.
순례자가 순례도중 병이 나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순례를 마치지 못할 사정이 있을 때 이 문을 통과하면,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순례한 것으로 인정해 주었다고 한다. 이 문을 통과하면 순례길 완주자가 죽은 이후 이 세상에서 지은 죄에 대한 벌을 면제받는 특권을 주었다고 한다.
일단은 나도 지금까지 지은 죄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저지른 죄를 사면 받고 싶은 마음에서 그 문을 통과하려 했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오늘은 가는 곳마다 나를 거부하고 있음은 웬일인가? 이 문은 성년과 축일에만 열린다고 한다. 이 마을에는 우리나라 TV 스페인 하숙을 찍었던 장소가 있었는데 대여섯 명의 한국인들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순례길에서 미국 애리조나에서 카우보이를 했다는 76세의 노인 부부와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는 이 순례길을 네 번째 걷는다는 말을 듣고 나는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한 번의 순례길도 이토록 힘이 드는데 어떻게 네 번씩이나 걸었다는 말인가? 네 번 걷기는 했지만 한 번도 완주는 하지 않았다고 고해(?)하여 나를 안심시킨다. 그는 나이를 거부하지 않고 한바탕 웃으며 재미있게 살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72세로 연노해진 나, 교수직에 있을 때는 열정 하나로 강연이나 책으로 유튜브로 지식과 정보를 축적하여 남들에게 제공하면서 평생을 살아왔다. 열정은 남아 있는 채로 직장에서 은퇴 한 이후부터는 여느 늙은이들처럼 시니어, 어르신, 노인으로 호칭되는데, 안 보이는 데서는 노털이나 꼰대나 영감탱이로 불려질 것이다. 노인들이 나이 때문에 가지는 여러 가지 콤플렉스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순례길에서 나 같은 노인은 젊은 친구를 만나면 '비교의 비극'을 맛보게 된다. 젊은이들과 어울리기에는 체력이 따라가지 못한다. 그들과 베드레이스는 벌써부터 가당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순례길에 와서 외국 노인들의 나이를 감 잡을 수 없어서 통성명하고 나서 나이부터 묻는 실례를 저지르는 못된 습관이 생겼다. 유유상종이 아니라 유유불상종하기 위해서 묻는다면 어패가 있다고 비난해도 상관없다. 유유상종하다 보면 나 자신도 늙어버리기 때문에 유유불상종을 원칙으로 한다.
얼굴에 가로세로로 생겨난 주름살, 흰머리 칼과 탈모, 어깨처짐 등 신체적 변화를 겪으면서 자신감을 잃어 가는가 하면 기억력도 현저하게 떨어진다. 아내는 나더러 치매가 왔는지 검사를 받아보라 하지만 그것만은 하고 싶지 않다. 두렵기 때문이다.
다만, 나이 든 나를 지켜 가기 위해서 규칙적인 운동, 건강한 식습관, 정기적인 건강 검진 등을 통해 신체적 건강을 다지고, 정신적 안정을 도모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하지만 은퇴나 자녀의 독립 등으로 인해 사회적 역할이 줄어들면서 가없는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취미 활동이나 봉사 활동, 동호회 등 사회적 활동에 참여하여 소속감을 느끼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한, 새로운 기술이나 지식을 배우는 것에 도전하여 자신감을 키우고, 세대 간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 부단한 학습 활동을 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세대들보다는 행동이 굶 뜨고, 생각이 보수적이라서 뒷전에서는 꼰대라는 말을 듣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순례길에서 만난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과도 무작정 어울리고 싶지 않다. 앉으면서 일어나면서 신음을 토해 내거나 잔기침을 하는 노인들, 머리에서 발끝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는 노인들, 입을 열었다 하면 자식 자랑이나 돈 자랑, 현역 때의 직위를 과시하려 드는 그들이 싫다. 용서의 문을 다녀와야 할 것 같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체면을 차리게 되어 내가 좋은 것만 할 수도 없고 때로는 내가 싫은 것도 해야 한다는 규범을 알고 있다. 김열규 교수는 행복한 노년을 위해 잔소리를 하지 마라, 화내지 마라, 엄살떨지 마라. 노탐을 부리지 마라, 과거를 묻지 마라고 5금을 권했다. 5금을 생활화하기 위해서 5 금동으로 이사 가야 할 판이다.
산티아고 순례 프랑스길(Camino Frances)에서 순례자를 위한 미사를 올리는 마을의 성당이 여러 곳 있다. 이 미사들은 순례자들에게 영적 위로와 격려를 제공하는 중요한 시간이 된다. 순례자들을 대상으로 다음과 같은 몇 개의 마을에서는 미사가 모셔진다.
산티아고 프랑스 순례길 출발지인 생장 피드포르 (Saint-Jean-Pied-de-Port)에서 순례자를 위한 미사가 자주 열린다. 로스 아르코스 (Los Arcos)의 산타 마리아 교회에서, 부르고스(Burgos)에서는 부르고스 대성당에서,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 (Carrión de los Condes)에서는 산타 마리아 교회와 산 페드로 교회에서,
레온(León)에서는 레온 대성당에서, 폰페라다 (Ponferrada)에서는 산타 마리아 교회에서, 비야 프랑카 델 비에르소 (Villafranca del Bierzo)에서는 산 프란시스코 교회에서, 사리아 (Sarria)에서는 산타 마리아 교회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Santiago de Compostela)에서는 대성당에서 매일 순례자 미사가 열리며, 순례자 이름을 호명하며 기도가 진행된다.
이 외에도 많은 마을 중에서 성당이나 수도원,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에서는 순례자를 위한 미사가 열린다. 비야 프랑카 델 비에르소 알베르게에서는 순례자의 발을 씻어 주는 알베르게가 있다고 들었지만 만원이라서 다른 숙소에 체크인을 했기 때문에 짜릿한 위로와 회복의 시간을 누리지 못해 아쉽다.
과학이 계속 발전한다고 해서 반드시 신의 존재가 부인된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사실, 과학의 발전과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은 서로 다른 영역에서 작동하며, 각기 다른 목적과 방식을 통해 진리를 탐구합니다.
많은 학자들은 과학과 신앙이 서로 상충하지 않으며, 서로를 보완할 수 있는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은 물리적 현실을 이해하는 도구이며, 신앙은 삶의 궁극적 의미와 목적을 탐구하는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적 진보가 삶의 조건을 개선하고 인간 수명을 연장할 수 있지만, 삶의 의미나 도덕적 가치를 제공하지는 못합니다. 이런 유형의 질문들은 여전히 철학적, 신학적 영역에 남아 있으며, 신앙은 그 답을 제공하는 하나의 방법이 됩니다.
과학의 발전이 계속된다고 해도 신의 존재에 대한 문제는 단순한 과학적 문제로만 해결될 수 없습니다. 과학이 생명과 우주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삶의 궁극적 의미와 존재의 본질에 대한 질문들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과학과 신앙은 인간의 이해를 확장하기 위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사람들은 이 둘을 어떻게 조화롭게 받아들이고 해석할지는 깊은 성찰이 필요합니다.
신은 인간에게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인간은 자유 의지와 도덕적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많은 종교는 신이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었다고 가르칩니다. 자유 의지는 인간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으로, 이로 인해 사랑과 선행도 가능해지지만, 반대로 고통과 불행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자유 의지를 통해 인간은 올바른 행동을 스스로 선택하고, 고난을 극복하며 성숙해질 수 있는 기회를 얻습니다. 이는 인간의 삶에 도덕적 가치와 책임감을 부여하기 위한 신의 의도라고도 해석됩니다.
둘째, 고통과 불행은 성장과 성숙을 위한 과정이라고 설명합니다. 고통과 어려움은 인간의 내적 성장을 돕는 과정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불행과 고난을 통해 인간은 더 강해지고 성숙해질 수 있으며,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해와 연민을 키울 수 있습니다. 종교에서는 고통을 통해 인간이 삶의 의미를 더 깊이 탐구하고, 자신을 넘어서는 초월적 존재를 찾도록 인도받는 과정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셋째. 신의 계획을 인간은 이해하지 못한 한계 때문에 나타난 현상으로 해석합니다. 일부 신학자들은 고통과 죽음이 신의보다 높은 차원의 계획의 일부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한정된 이해로는 신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우며, 고통조차도 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미지의 과정일 수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고난이 있어야만 기쁨을 이해할 수 있듯이, 고통과 어려움도 인간이 삶의 소중함을 깨닫고 감사를 느끼도록 하는 방식이라는 견해입니다.
넷째, 죽음은 영원한 삶을 결과하기 때문에 불행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죽음은 많은 종교에서 삶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으로 여겨집니다. 죽음은 영혼이 더 나은 세계로 가는 관문이거나 신과 더 가까워지는 과정으로 보기도 합니다.
많은 종교에서는 신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고 가르칩니다. 이는 선과 악을 선택할 자유와 함께, 인간이 스스로 도덕적 결정을 내리도록 허락한 것입니다. 만약, 자유 의지가 없었다면,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선을 행하거나 악을 피할 기회를 가질 수 없게 된다는 관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자유 때문에 악한 선택이 가능해지고, 악인들도 존재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인물들은 이 자유 의지를 악용한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신이 악인을 만들었다기보다는, 신이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허락했고 그로 인해 악행도 가능해졌다고 보는 것이 대부분의 종교적 입장입니다.
이러한 자유 의지는 인간이 자발적으로 선을 선택하고 도덕적 성장을 이루게 하는 중요한 요소로 여겨집니다. 악의 존재와 그로 인한 고통은 여전히 어려운 문제이지만, 이를 통해 인류는 삶의 본질과 도덕적 가치를 더 깊이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