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비수가 되어 돌아오다.
고등학교 때부터 내 꿈은 줄곧 호텔리어였다. 드라마를 보고 키운 꿈인지 몰라도 멋있게 유니폼을 입고 VIP서비스를 하는 그들이 너무나 멋있어 보며, 나는 무조건 '호텔경영학과'를 진학만을 목표로 입시에 도전했다. 그 과를 진학해야만 내가 생각하는 호텔리어가 될 줄 알았다. 입시 때마다 변하는 교육제도 덕분에 난 한 번도 대학입시의 성공을 한 적이 없으며, 그로 인해 재수, 삼수는 내가 겪어야 할 혹독한 시간의 결과였다.
호텔리어가 되면 내 꿈은 거기서 멈출 것 만 같았는데... '코이 물고기'처럼 넓은 세상에 나가면 나갈수록 내 꿈은 더 커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내가 관광학 박사학위를 받아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때 미처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 아빠가 돌아가시고 홀로 삼 남매를 키우는 엄마에게 나마저 짐이 된다는 건 너무 죄송스러운 일이었다. 기댈 곳이 없던 나는 무엇이든지 혼자 힘으로 스스로 큰 결정을 했고 그 누구도 나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것을 나중에 커서야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그때 나는 너무나 무모했다.
유독 나는 실패를 많이 경험했고, 그 실패를 통해서 나는 성장했다. 누구에게나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 불리지만, 내 주변 사람들은 나를 보면서 희망의 증거라고도 말했다.
그렇게 실패와 좌절에 익숙한 내가... 최근 정년트랙 교수 임용에 지원했다. 떨어지는 게 익숙해서 실패가 두렵지 않았지만 이번만큼은 기대도 컸던 것 같다. 비록 해외파는 아니지만, 시간을 나노단위로 쪼개 써서 쓴 내 연구실적이 꽤나 괜찮았기에 한번 기대를 걸어볼 만한 도전이라 생각했다. 너무 기대가 컸던 탓일까.. 다시 실패로 돌아왔는데 너무나 구체적인 탈락 사유가 내 마음 한구석에서 내 심장을 도려 내는 듯했다. 모 대학의 교무과로부터 들은 구체적 탈락 사유는 아니지만, 소위 건너 건너 알아낸 나의 탈락 사유는 내가 졸업한 학부가 정년트랙 교수를 지원하기엔 너무나 한없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모 대학의 이번 임용 기준은 출신 대학이 좋지 않으면 연구 실적이 좋아도 무조건 탈락이라고 전해 들었다.
내가 졸업한 출신 대학이 나를 이렇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줄 몰랐다. 아니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나는 서진규 자서전의 제목처럼 나는 누군가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었다. 대학 졸업 후,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다시 그때로 되돌아가서 지금과는 다른 결정을 하고 싶다고 수없이 되뇌인다.
그래서 다시 나는 내 일상으로 자연스럽게 돌아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늘 나를 지켜주는 내 남편과 이제 막 말문이 트인 25개월 딸이 내 옆에 있다. 어두운 곳에서 엄마의 흐느껴 우는 소리는 듣고 "이게 무슨 소리야"라는 귀여운 말투가 내 슬프고 아픈 감정을 순식간에 녹인다. 25개월 딸의 한마디에 그 상황이 웃음바다가 될 만큼 내 슬픔도 조금은 희석되었다.
교수사회의 깰 수 없는 그들만의 카르텔, 나에게 비수가 되어 돌아왔지만 나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