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여고동창생의 이분법 사회
여고 동창생과 만남은 늘 즐겁고 행복하고 유쾌했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가진 오늘 우리의 만남은 그렇지 못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여고 동창생들의 삶의 일부마저 이분법으로 갈라놓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 친구가 생각하는 유토피아적 삶과 내가 사는 냉혹하고 치열한 삶은 우리의 대화마저 치열한 논쟁거리로 만들었다.
마이클 샌델의 “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책을 친구에게 선물한 나와 그 책을 읽고 싶지도 않고 나에게도 읽지 말라고 강요하는 내 친구.
무엇이 우리의 삶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정치에 “정”자도 듣기 싫다는 그 친구의 말과 나 역시도 그 생각에 동의하지만 만 적어도 사회문제에 대한 고민과 함께 우리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살자는 나의 대화는 논쟁으로까지 이어지며 지하철역까지 바래다주는 우리에게 작별인사할 여유조차도 없을 만큼 마음의 거리를 멀게 만들었다.
사실 그 친구는 15년 동안 육아를 하면서 사회와는 단절된 삶을 살아왔다. 교육이라는 매개체가 사회와 그 친구를 엮어주긴 했지만, 그마저도 녹록한 현실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사회와 연결된 고리를 놓지 못한 채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워킹맘이다. 굳이 내 상황에서 말하자면…. 나 그 친구의 대화에서 더는 공통점을 찾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오랜 시간 세상과 단절된 삶에 익숙해진 내 친구는 세상을 너무 긍정적으로 아름답게 바라보고 있었고, 경쟁 사회에서 삶을 고군분투 하며 살아온 나는 세상이 그렇게 긍정적이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그 친구는 아직도 과거를 살고 있었다.
우리가 헤어진 다음,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는 그 친구에게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가 생각하는 만큼 세상이 아름다울때도 있다고 맞장구 쳐줄껄....나 역시도 내 삶의 가치관을 그 친구에게 강요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나와 다른 생각을 지녔다고 내 생각을 강요하는 나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잘못되고 섣부른 것인지를 깨달았다.
“그런데 친구야!! 난 날씨가 추우면 추울수록 분양받은 신축 아파트에 따뜻한 햇볕 가득한 내 집을 가졌다는 게.. 가끔은 누군가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때가 있어. 우리집 아파트 창가에서 저 다세대 골목길을 바라볼 때면... 폐지를 가득 주워 힘겹게 걸어가는 어르신들이 모습에 얼마나 마음 아파하는지 너는 모를 거야. 그래서 난 내가 가진 삶의 일부는 언젠가는 꼭 그들에게 나누려고 해.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해주지 못한 것을... 적어도…. 나는 조금이라도 하려고 이렇게 열심히 사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