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 전 팔도비빔면의 35주년 한정판 제품인 ‘괄도네넴띤’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댕댕이(멍멍이), 머박(대박), 띵작(명작)’과 같이 비슷한 한글 자모를 사용하여 단어를 바꾸는 인터넷 용어 ‘야민정음’을 사용한 이 제품은 1020세대의 감성을 제대로 저격하며 이목을 사로잡았다.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5일간 판매 예정이었던 괄도네넴띤은 판매를 시작한지 23시간 만에 1만 5000세트가 완판 되었으며,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며 그 인기를 입증하기도 했다.
맛과 구성 면에 있어서 아쉽다는 평이 많았지만, 계속되는 대중의 관심에 힘입어 지난 지난 2월 2차 판매가 진행되었다. 재미있는 소비를 지향하는 펀슈머, 즉 젊은 세대를 사로잡을 수 있었던 괄도네넴띤에 대해 마케팅 담당자는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하는 제품을 그들의 언어로 제품화 했을 때 더 감성을 자극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름, 즉 브랜드는 첫인상과 같다. 제품을 사용하기 전까지 우리가 즉각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브랜드’에 대한 것뿐이다. 제품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 또한 브랜드이다. 그렇기에 브랜드는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어야 하며, 구매 욕구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그 자체로 재미가 있고 눈길이 가서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괄도네넴띤처럼 말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우리가 쉽게 접하는 모든 제품명과 브랜드는 아무렇게나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대중을 사로잡는 브랜드는 어떤 것이며,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브랜드;짓다
브랜드의 운명을 가르는 것은 ‘이름이 붙여지는 그 순간’이라고 믿는다. 브랜드가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 브랜드 이름을 짓고 서사를 만들어주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 <브랜드;짓다>, 민은정
티오피, 카누, 오피러스, 서울스퀘어, 평창올림픽 슬로건 등의 수많은 히트 브랜드를 탄생시킨 ‘브랜드 버벌리스트’ 민은정. 그녀의 첫 책 <브랜드;짓다>에서는 다양한 브랜드의 탄생 과정과 언어와 브랜딩에 대한 다채로운 접근법을 만나볼 수 있다. 귀에 꽂히는 그 이름은 어떻게 태어났을까?
유명한 광고카피를 통해 대중에게 각인된 커피 티오피. 최고라는 뜻의 ‘TOP’이라는 단어를 거침없이 사용한 이 브랜드에는 사실 ‘커피다움’이 녹아있다. 강한 첫 맛, 목을 넘어갈 때의 부드러운 끝 맛, 마신 후에 젖어드는 아련함을 ‘강한 첫 음절, 부드러운 둘째 음절, 여운이 남는 끝 음절’로 표현해낸 것이다. 강한 음은 거센소리와 된소리로, 부드러운 음은 유성음으로, 여운을 위해서는 마지막 음절을 모음이나 유성음 받침으로 끝맺어 공기 중에 진동을 남기며 커피다운 언어를 구현해냈다.
이러한 음성학적 의도 외에도, 커피콩이 처음 발견된 지역인 에티오피아의 맨 앞 글자 ‘에’와 맨 뒷 글자 ‘아’를 빼면 ‘티오피’가 된다는 트릭이 숨어있다. 그리고 커피와 티오피 모두 ‘피’라는 글자로 끝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단순히 커피 업계의 최고가 되겠다는 당찬 포부를 나타내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 탄생 과정에는 언어와 제품에 대한 속 깊은 고찰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한국인의 소울 알코올 '소주'. 우리가 계속해서 변해가듯이 소주도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독하게 취해버리는 어른 세대와 달리 2030세대는 과음 문화를 즐기지 않는다. 이에 기존의 소주들은 기존의 ‘독주’ 이미지를 변화시킬 때가 되었다. 맥키스 컴퍼니는 브랜드 네임 진화 전략을 선택했다.
맥키스 컴퍼니의 ‘맑을린’은 대전, 충남 지역민들에게 소주라는 단어를 대신할 정도로 대표적인 존재였다. 부드럽고 깨끗한 특징을 강조한 ‘오투린’으로 명칭이 바뀌던 당시 맑을린을 사랑하던 사람들은 큰 거부감 없이 오투린으로 옮겨갔으나, 새롭게 술을 마시기 시작한 2030세대에게 ‘린’은 그저 아빠가 마시는 독한 술일 뿐이었다. 부모세대와 달리 거주 지역에 대한 애착도 없으니, 굳이 오투린을 찾을 이유가 없는 상황이었다.
맥키스 컴퍼니는 '사람과 사람 사이'라는 기업 정신에서 해답을 찾았다. 마음을 트고 진심을 나눌 수 있게 하는 소주에게서 '관계'라는 키워드를 도출해냈고, 이에 다양한 이야기를 덧붙일 수 있는 '이제 우린'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탄생하게 되었다. 시민들을 위해 계족산 황톳길을 조성하고, 주기적으로 맨몸 마라톤을 열며 '고객과의 관계'로 메시지를 확장시키면서 겉모습 뿐만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정신까지 한층 젊은 모습으로 탈바꿈시키면서 2030세대에게 환영받을 수 있었다.
- 열차 이름은 머릿속에 새겨지는 것이 아니라 차곡차곡 시간을 지나오며 가슴에 새겨진 추억이다. 그러니 공공재를 브랜딩한다는 것은 시대의 감각과 감성을 기록하는 역사 그 자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66p, 누리로)
- 한껏 꾸미고 멋을 부리기 보다는 담백하고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전략이 고객의 마음을 한층 깊이 파고든다. 우리는 누구나 멋진 사람을 좋아한다. 그런데 어려울 때 꼭 필요한 사람은 멋진 사람이 아니라 진실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브랜드도 그렇다. 그것이 건강 기능 식품 브랜드의 존재 이유이다. (109p, 굿베이스)
- 슬로건은 단순한 구호나 캐치프레이즈가 아니다. 시대가 추구하는 정신과 가치를 오롯이 담을 때 사람들의 마음 속에 영원히 남을 수 있다. (167p, 평창동계올림픽)
- 장소가 품고 있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곳에서 살아왔던 모든 삶을 존중하는 것, 역사에 지금의 정서를 더하는 것. 이것이 모두가 함께하는 도시 브랜드 언어 개발의 성공 전략이다. (183p, 루원)
- 브랜드는 언제 늙는가? 새로운 콘텐츠가 더 이상 생겨나지 않을 때, 사람들이 더 이상 그 브랜드를 궁금해 하지 않을 때이다. (252p)
-분명한 가치관과 철학, 더 나은 세계를 향한 의지를 스토리로 보여주고 행동으로 증명할 때 브랜드는 사랑받을 수 있다.그것이야말로 브랜드가 영원히 살아남는 길이다. (257p)
일상 속에서 당연하듯이 스쳐지나온 모든 브랜드는 저마다의 이야기와 메시지를 담아 존재한다. 태어나기 이전부터 이름을 갖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을 테다. 그 당연한 사실을 구체적이고 생생한 이야기들을 읽으며 이제서야 알아차린 것 같다. 사소한 글을 쓰며 제목을 정하는 데에도 심혈을 기울이곤 하는데. 끊임없이 존재를 입증하고 대중에게 다가가야 하는 브랜드에게는 이런 노력들이 '당연히도' 존재하고 있었다.
‘브랜드 버벌리스트’는 제품과 서비스에 이름을 붙이고 슬로건과 스토리, 메시지 등의 언어적 요소를 더해 브랜드의 매력을 증폭시킨다. 단순한 ‘작명’을 넘어 브랜드를 살아 숨 쉬게 한다. 티오피, 카누, 자연은, 오피러스, 누리로, 홈앤쇼핑, 대교, 뮤지엄 산, 일렉 포일 등. 음식에서부터 자동차, 건강식품, 열차, 기업의 슬로건까지 삶의 곳곳에 녹아든 ‘브랜드’ 속의 생생하고 다채로운 이야기들은 그 자체만으로 세상을 폭넓게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전해주었다.
브랜드의 첫 숨이 불어넣어지기까지 제품과 언어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고찰이 존재한다. 그 과정은 누구보다 치열할 테지만, '언어' 자체에 대한 저자의 애정 어린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아 책의 분위기와는 맞지 않게 어쩐지 사랑스러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섬세하게 언어에 다가가는 모습은 단어와 문장, 그리고 글을 바라보는 시선을 내내 두드려 열어 주었다. 마케팅과 브랜드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혹은 글을 다루는 이들에게 알차고 새로운 이 이야기들을 추천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