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야심 차게 작가 등록을 한 지 2년 만에 올리는 첫 글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발행하겠다고야 하는 마음으로 아이폰 메모장이나, 나만 볼 수 있는 블로그 등 보다 익숙한 에디터 대신 하얗고 텅 빈 브런치 에디터를 켰다.
모니터 속 2d 디지털 오브제들일 뿐이지만, 이곳은 꼭 시간과 정신의 방 같다. 벽도, 바닥도, 천장도 모두 하얀 이곳에선 시간의 흐름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다. 오직 자작거리는 타자 소리와, 화면을 조금씩 메우는 손끝의 출력물들만이 내가 앞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글이 앞으로 나간다면, 생각은 뒤로 간다. 2년은 포기의 시간이다. 기억에 의존하다 보니 2년보다 짧을 수도, 혹은 그보다 길 수도 있지만 중요하지 않으니 그 정도 사실은 옆으로 치워두자. 나는 그냥 어질러진 방을 그대로 내버려 두고 문을 닫은 뒤 다시 문고리를 돌릴 에너지와 용기가 충분히 마련될 때까지 부스러진 시간을 지칭할 단어가 필요했을 뿐이다. 문을 닫는 순간은 포기의 순간이다. 그리고 나는 언젠가부터 때로는 알면서, 때로는 자각하지 못한 채로 수많은 문을 만들고 닫았다. 그 문은 때로는 관계였으며, 때로는 일이었고, 때로는 자기 계발이었고, 때로는 취미였다.
가장 자주 닫았던 문은 유튜브였다. 새로운 쇼츠를 볼 때마다, 마음속에 날아든 새로운 유튜버가 생길 때마다 그들과 같은 선상에 설 수 있기를 꿈꿨다. 브이로그를 찍어볼까, 내 관심사들을 모두 늘어놓고 하나씩 하는 모습을 찍다 보면 수요가 있지 않을까 붕붕 희망회로를 돌렸다. 자취도 하고, 고양이도 기르고, 요리도 좋아하고, IT업계에서 일하고, 옷도 좋아하니 콘텐츠는 많아 보였다. 그러나 집은 사람과 고양이의 물건들로 포화 상태고, 영상미를 위해서라면 집에 고양이털 하나 굴러다녀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바닥은 언제 치우고, 식탁은 언제 치우며, 주방은 언제 가꾸는가, 예쁘기 위한 장치들은 그 자체로 청소의 대상이니 말이다. 너저분한 집을 정리한 다음, 먼지 하나 없는 선반을 만든 다음, 예쁜 오브제들을 제외한 모든 것을 수납한 다음...으로 우선순위를 정하다 보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촬영도 문제였다. 큰맘 먹고 당시 구하기도 힘들다는 DJI의 오즈모 포켓 3을 샀지만, 원하는 구도를 맞추는 건 생각보다 어렵고 진 빠지는 일이었다. 특히 어질러짐을 피해 한정된 곳만 촬영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너무 많은 것들을 해결해야 했기에 도리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한편 가장 아팠던 문은 운동이었다. 직장인이 된 이후, 잘 맞는 PT선생님을 만나 꾸준히 운동을 해오길 2년, 바디프로필까지 준비해 볼 정도로 진심이었다. 아쉽게도 카메라 앞에 서는 성취는 이루지 못했다. 촬영을 하루 앞두고 스튜디오에서 카메라 파손을 이유로 촬영 불가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넓지만 주변 인프라가 부족한 곳으로 이사하며 다니던 트레이닝 센터를 그만두었고, 이참에 혼자서 운동하는 습관을 길러 보리라 마음먹었다. 처음에는 나름 잘했던 것 같다. 운동 효율은 떨어졌지만 회사 내부의 헬스장도 꾸준히 출석하고, 수영도 배우고, 지인들과 클라이밍도 시작했다. 24년 8월, 펜타포트에서 3일 동안 수만 명의 사람들과 부대낀 뒤 코로나에 감염되고, 그 부작용으로 이어진 한 달간의 기침에 늑골 압박골절이 발생하면서부터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운동을 금지당하자 살찌면 안 된다는 조급함이 차올랐고, 이는 절식, 다이어트, 그리고 요요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망가진 눈바디 앞에선 스스로를 좋아하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나도 돌봄이 필요한 존재임을 인지하고, 이로부터 나를 이해하는 방식을 다시 정립해야 했다.
그럼 가장 최근에 포기한 것은 무엇인가, 뜨개질이다. 중학생 때 벙어리장갑을 떠보겠노라고 잠깐 하다가 던져버린 이후, 무려 10년 만에 다시 잡은 대바늘이다. 이번의 목표는 2가지였다. 첫째, 코바늘로 만든 크로셰 모티브들로 데이지가 무늬로 들어간 체커보드 커튼을 뜨고 싶었다. 실의 색깔은 비슷한 톤으로 하되, 2~3가지 패턴의 모티프를 교차로 연결하면서 체커보드 느낌을 내는 계획이었다. 두 번째 목표는 나한테 꼭 맞는 옷을 뜨는 것이었다. 크로셰도 좋지만 이건 대바늘을 활용해 짧지 않으면서도, 입었을 때 부한 느낌이 들지 않는 니트를 뜨고 싶었다. 그래도 이번엔, 이전의 실패들로 인한 교훈은 있었다. 대단위 목표를 한 번에 실행하려 하지 않기. 실행 가능한 작은 스텝들로 이를 나누고, 작은 성취를 즐기기. 그래서 이전에 해보았던 대바늘을 활용해 가장 기초적인 수준의 뜨개 기법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고, 빠르게 끝낼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규모의 연습 과제를 먼저 해보기로 했다. 휴지커버 소품을 뜨는 것. 도안을 찾아 연희동까지 가서 키트를 사 오고, 엉성하지만 첫 번째 편물을 완성하고, 기세를 몰아 두 번째 편물을 완성하기까지만 할 때도 즐거웠다. 피드백 루프를 타면서 조금씩 얼마나 실을 당기고, 사이즈를 어떻게 재단하는지 등을 알게 되는 것 같았다.
즐겁지 않았던 건 자꾸만 중간에서 빠지는 코였다. 무시하고 지나갈 수도 있었지만, 세 번째 편물부터는 완성도를 높이고자 하는 욕심에 계속 수습하려고 시도했다. 애석하게도 코 줍기 실력이 없는 만큼 빠진 한 코를 수습하려다 편물 전체를 풀고 다시 뜨는 일이 반복되었고, 애써도 나가지 않는 진도에 지쳤던 것 같다. 일본까지 뜨개질거리를 가져가고, 부슬비를 뚫고 시부야와 에비스 사이 다루마(daruma) 플래그십 스토어에 방문하는 열정이 애초에 존재하긴 했었냐는 듯, 여러 번 떴다 풀어 꼬불꼬불해진 실타래는 28인치 캐리어 안에 두 달째 박혀있다.
대상만 바뀌었을 뿐, 패턴은 똑같다. 시작하고, 꿈에 부풀고, 앞서나간 그림을 그리다 장애물을 만나고, 때로는 장애물이 너무 많아서, 때로는 너무 높아서, 그리고 때로는 내가 그걸 넘을 상태가 아니라고 규정해 버려서 포기한다. 장애물이 없으면 안 된다는 듯, 그것이 마치 완벽의 척도인 양 나는 항상 장애물을 세웠다. 2년 전에 브런치를 포기했던 것도 똑같은 이유다. 내 글이, 내 페르소나가, 내 경험과 생각이 완벽해야만 할 것 같았다. 내 이야기를 쓰면서도 아무에게도 비판받지 않을 수 있는 글을 쓰고자 하니 점점 혀가 굳고 할 수 있는 말이 없어졌다. 이러한 버릇은 아직까지도 남아 있기에 발행을 앞둔 지금 새삼 두렵기도 하다.
이건 내가 어쩌면 최초로 시도하는 변칙이다. 무엇인지도 모를 완벽을 쫓는 대신, 토해내는 그대로를 내보내는 것. 결과물이 어떨지는 완성하고 생각하고, 일단은 무엇이 되었든 완성부터 해본다. 적어도 브런치 안에서는 완벽이 완벽이 아닌, 완성을 완벽의 정의로 삼아보려 한다.
앞으로 8주간 [이십춘기 회고록]을 통해 불완전하게 완성하는 것을 연습해 볼 생각이다. 나처럼 뭔가를 시작하고 포기하기를 반복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도 이런 방식이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결국 이 모든 건 나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완성되는 것들이, 설령 불완전하더라도 의미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