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2024년 10월, JR 신주쿠 역의 중앙 출입구를 나와 루미네 백화점과 뉴우먼 백화점 사이의 고가도로를 내려나가며 들었던 생각이었다. 정수리 위를 뜨겁게 달구는 햇빛, 관자놀이를 타고 내려오는 땀, 가슴과 팔다리의 끈적거림, 지열로 인해 핑 도는 머리, 어딘가 쓰러질 것만 같은 기분.
나의 세 번째 도쿄이자,
홀로 방문한 두 번째 도쿄였다.
충동적인 여행이었다. 창업 준비와 콘퍼런스 준비가 겹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들이었다. 낮에는 팀의 지난 1년 동안의 업무 성과를 정리해 스토리텔링에 적합한 형태로 다듬었고, 밤에는 손땀으로 SNS 광고 콘텐츠를 제작했다. 턱밑까지 차오른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해 나가기엔 이번 연휴가 제격이었다. 남들 놀 때 일하는 것은 조금 불행하지만, 어쨌거나 추월차선을 탈 수 있는 기회였으니 (휴일 초과근무수당은 덤이고!). 그런데 나는 도쿄에 있었다. 고양이 대신 솜뭉치 카디건을 끼고, 노트북 대신 캐리어를 들고.
바쁘디 바쁜 시기에 도쿄를 택했던 이유는, 도쿄는 나를 벅차오르게 만드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2018년 11월, 정확히 똑같은 신주쿠 역의 중앙 출입구에서 어둠 속에 빛나는 뉴우먼 백화점의 로고가 눈에 들어왔을 때의 터질 것 같은 해방감은 지금도 선명하다. 열병 같은 짝사랑의 고통과, 따라가기 벅찬 수업 진도는 잠시 제쳐두고 선선한 밤공기와 낯선 냄새에 몸을 맡겼다.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매일 연락하는 친구와 낡고 좁은 호텔방에서 맥주와 사케를 나눠마시며 반드시 함께 돌아오리라 캔을 부딪혔다. 춤을 추는 기분으로 사라진 3일이었다.
나의 첫 번째 도쿄였다.
2023년 7월, 타오르는 듯한 빨간 머리를 하고 또다시 도쿄 땅을 밟았다. 5년 만이었다. 신주쿠가 아닌 메구로에 발을 디딘 여름,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이 된 것만 같았다. 목욕과 세탁이 되는 1인용 레지던스에 10일을 묵으며 도시 구석구석을 돌았다. 대학생 때 무엇을 보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매일이 새로움의 연속이었고, 여기저기 흩어진 부활절 달걀을 줍는 기분이었다. 모양도, 무늬도 가지각색인 달걀들은 바구니 안에 소중히 채워졌다.
더위는 열정이었다. 염색한 지 얼마 안 된 머리카락이 땀에 씻겨 흰 셔츠를 물들이는 것도 모른 채 작열하는 아스팔트 위를 누볐다.
더위는 낭만이었다. 칵테일 바 옆자리에 앉아 친해진 와세다 대학 교수님과 가게 사장님과 함께 방문했던 신주쿠 뒷골목 야키토리집. 좁디좁은 가게의 복층 다다미방에 앉아 털털거리는 선풍기 하나로 버티며 생맥주로 더위를 날리던 밤, 일본인들은 라멘으로 술자리를 마무리 짓는다며 주문한 검은 라멘. 한국인, 캐나다인, 인도인, 그리고 일본인이 국적과 나이를 신경 쓰지 않고 친구가 된 순간이었다.
동시에 더위는 친애이기도 했다. 여행지에서 만났지만 귀국 후에도 인연의 끈을 놓지 않은 결이 같은 사람.
그리고 더위는 곧, 자유였고 탐험이었다. 야마자키와 히비키를 사겠다고 도쿄역 지하상가를 구석구석 누비고, 아티존 미술관 한켠에서 오카모토와 카기오카 리골렛의 작품에 흡입되고,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예약한 오마카세에서 눈빛과 바디랭귀지만으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나의 두 번째이자, 처음으로 홀로 방문한 도쿄였다.
다시 2024년 10월, 이상하게도 두 번째로 맞는 더위는 실로 낯설었다. 해야 할 일들을 버려두고 와서일까, 5일 내내 더위는 끈질기게 나를 쫓아왔다. 욕심 내서 신은 구두에 엉겨 붙은 통증이었고, 예고 없이 밀려오는 저린 졸음이었고,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신주쿠 역사 속 미로였다. 이동 속도를 줄이겠다고 숙소를 신주쿠로 잡은 것이 문제였을까. 생기(生氣)는 소음이 되었다. 소음은 호텔 방 안까지 따라왔다. 복도를 울리는 소음을 떨치려 사람을 찾았다. 여행객 오픈채팅방에 들어가 번개를 열었다. 여행의 설렘으로 가득한 사람들로부터 그 감정을 전해받으면 지금보다는 나아지지 않을까?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가부키초 초입의 이자카야를 예약했다. 늦게까지 영업하고 단체석이 있지만, 물 탄 맥주를 팔고 리뷰 호객행위를 하는, 혼자서라면 절대 오지 않을 곳이었다. 덩치 큰 흑인 할아버지의 어깨동무를 받으며* 허름한 건물의 입구로 안내받았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어째서인지 술이 들어갈수록 방어적으로 변했다. 외국인 종업원과 영어로 소통해서인지, 낯선 여행지에서 만남을 주선할 정도로 진취적이라고 느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완벽한 타인이 내게 <나는 비록 지방이지만 아버지가 해주신 집과 차가 있다. 너는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영어도 잘하고, 똑똑한 것 같으니 나처럼 언젠간 둘 다 마련할 수 있을 거다>라고 말하는 걸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했을까. 밤새 내린 비에 쫄딱 젖은 채 새벽 3시 호텔 방문을 열면서 생각했다. 나는 무엇 때문에 도쿄에 왔는가. 일단 신주쿠는 다시는 오고 싶지 않았다. 그럼 다른 곳은? 현실의 굴레에서 도망치려 했던 게 문제였을 수도 있다. 사랑스럽기 그지없던 도쿄가 나를 굽어보며 비웃는 것만 같았다. 분위기를 띄워보겠다고 마신 맥주가 속에서 엉켰다.
흔히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고 말한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도쿄는 낙원이 될 수 없다. 그전에, 애초에 낙원이란 곳이 존재하는가? 고통은 존재하지 않고, 즐거움과 환희만 존재하는 장소는 비현실적이다. 왜 멋진 신세계에서도 나오지 않나, 소마든 뭐든, 취하지 않고서야 경험할 수 없는 순간이다. 지금의 경험이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앞선 봉우리가 특이점이었다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들뜬 상태의 전자는 언젠간 제 궤도로 돌아와야 한다. 나도 마찬가지일 뿐이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도시를 향한 애정은 일방적이다. 많은 품을 들여 그곳에 발을 내딛는 만큼 완벽하기를 기대하지만 매번 그럴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안다는 것도 결국 그런 거다. 새롭고 좋기만 한 순간은 언젠가는 지나가고, 익숙해지기 힘든 꺾임이 찾아온다. 낙폭에 주목해 여기서 멈출 것인지, 한 번의 시도를 더 해볼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다. 극복할 수 있을 만한 일인지, 극복하는 게 의미가 있을지 말이다. 나는 과연 도쿄를 다시 찾을 것인가?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재방문한 가게를 생각한다. 이전의 인연으로 보다 높은 라인의 히비키를 구하는 데 도움을 준 칵테일 바 사장님께 회사 굿즈로 인기 있는 나일론 에코백을 하나 선물했다. 가방을 풀어보더니 기뻐하며 캐비닛을 뒤져 예전에 만들어 두었다던 가게 굿즈 에코백을 답례품으로 건네 주었다. 어두침침하고, 나를 제외한 모두가 담배를 피워 대는 탓에 오래 있으면 텁텁해지는 곳이지만 여전히 또 가고 싶은 곳이다. 23년의 여름 날처럼, 왁자지껄하게 먹던 야키토리가 그리워지는 날이면 아마 도쿄 땅을 밟을 것이다. 화려한 백화점과 네온사인으로 뒤덮인 거리보다 내게 토굴 속에 핀 꽃이 된 존재들을 다시 보기 위함이다. 배경이 아닌, 사람을 위한 여행이다.
*도쿄 유흥가에는 나이지리아에서 온 흑인들이 많다. 이분도 나이지리아 인인지, 나를 다른 젊은 호객꾼들로부터 보호해 주려는 목적으로 어깨동무를 한 것인지, 마침 내가 가려던 곳이 본인이 고용된 이자카야여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 호의를 판단하기에 나는 너무 곤두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