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꿈이 뭐야?

by 채연

“너는 꿈이 뭐야? 하고 싶은 게 뭐야?”

그 질문은 늘 갑작스럽게 날아와 내 가슴에 오래 머문다. 선생님이 시험지를 나눠주고 난 후 아무렇지 않게 묻기도 하고, 삼촌이나 이모가 명절에 모인 자리에서 웃으며 꺼내기도 한다. 심지어 친구들끼리 장난처럼 대화하다가도 빠지지 않는다. 마치 이 질문은, 학생이라는 이름을 달고 사는 동안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처럼 주어지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늘 대답하지 못한다. 머릿속 어딘가엔 막연하게 그리고 싶은 그림이 있고, 쓰고 싶은 글이 있고, 언젠가 무대 위에서 한 번쯤 불러보고 싶은 노래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모든 생각은 입술에 닿기 전에 얼어붙는다. 누군가 내게 “그걸로 어떻게 먹고살 건데?” 하고 묻는 장면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웃으면서 대충 얼버무린다. “아직 잘 모르겠어.”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어.” 그 말이 내 진심이 아닌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

이 세상은 꿈을 자유롭게 꾸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 꿈이 세상에 맞지 않으면 가차 없이 꺾어버린다. 하고 싶은 걸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현실’을 꺼내든다. “안정적인 직장이 최고야.”, “공무원이 되면 평생 편하다.”, “돈을 벌 수 있어야지.” 그 말들은 틀리지 않다. 하지만 그 안에는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그래서 나는 점점 꿈을 줄여간다.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버틸 수 있는 걸 찾는다. 내가 가진 시간을, 노력과 청춘을 다 바쳐도 최소한 무너지지 않을 자리를. 그게 이 사회가 말하는 ‘현명한 선택’이니까. 그러나 그런 선택을 떠올릴수록 마음 한쪽에서 알 수 없는 허무가 차올라온다. 그것은 마치 아직 피지도 못한 꽃이 스스로 시들어가는 것 같다.

밤이 되면 침대에 누워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나는 그냥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고 싶었어.” 그 한마디가 세상 앞에선 너무도 사치처럼 들린다. 꿈은 원래 사치여야 하는 걸까? 아니면 내가 가진 현실이, 나를 그렇게 만드는 걸까.

나는 가끔 생각한다. ‘너의 꿈이 뭐야?’라는 질문은 사실 ‘너는 얼마나 쓸모 있는 존재가 될 거니?’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고. 이 사회가 원하는 답은 이미 정해져 있고, 우리는 다만 그 답에 맞춰 맞는 옷을 입을 뿐이다.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묻는 척하지만, 정작 하고 싶은 것을 대답할 자유는 없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나처럼 침묵하거나, 결국 사회가 원하는 답을 내뱉는다. “의사요. 판사요. 공무원요.” 그리고 그 순간, 그 대답은 더 이상 꿈이 아니라 생존이 된다.

가끔 교실 창가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본다. 바람은 자유롭게 흘러가고, 구름은 아무런 속박 없이 떠다니는데, 나는 왜 이렇게 무겁게 땅에 붙들려 있는 걸까. 하고 싶은 게 있더라도, 그걸 말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세상에서, 우리는 언제 처음부터 꿈을 포기하도록 길들여졌던 걸까.

어쩌면 내 대답은 늘 같을지도 모른다. “아직 잘 모르겠어.” 하지만 그 속엔 수많은 ‘알고 있는 것들’이 숨어 있다. 정말 하고 싶은 것, 하지만 감히 꺼내 놓을 수 없는 것들. 그걸 꺼내놓는 순간 현실이 무너져버릴까 봐, 혹은 누군가의 비웃음을 사서 내가 더 작아질까 봐, 나는 오늘도 침묵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다.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물을까. “너는 꿈이 뭐야? 하고 싶은 게 뭐야?” 그렇게 묻는 순간, 나는 알게 될지도 모른다. 그 질문이 얼마나 잔인하고, 또 얼마나 슬픈 것이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