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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식

by 이지원

노트북을 가까이해서는 안 될 상황이란 것을 알고 있지만,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모든 것이 멈추어 버리는 것을 알기에 마냥 누워 있을 수 없었다. 영락없이 무언가의 부품이 되어버린 나는 입안에서 비릿하고 씁쓸한 쇠의 맛을 느꼈다.


기본적으로 허리의 힘이 약하게 태어났으므로 건강의 소모도 남들보다 빠를 수밖에 없었다. 나의 허리는 언제나 구겨진 캔처럼 굽어 있었으며, 손에 안긴 휴대폰을 볼 적마다 고개는 툭 떨어졌다. 애써 의식하지 않으면 자세는 언제나 기이하게 꺾여 있었다. 사람의 것으로는 볼 수 없는 모양새였다.


보이지 않는 모래가 뒷목과 어깨, 팔과 손끝을 핥아내고 지나갔을 때 나는 서늘한 공포에 압도되었다. 곧 죽을 것만 같았다. 둥글게 웅크린 나의 몸을 수백 개의 눈이 일제히 쏘아보고 있었다. 작은 곳 하나 놓치지 않고, 가죽이 둘러싼 모든 신체에 뚜렷한 경고를 묻히고 사라졌다. 더 이상 등을 돌리지 말라는 듯이.


점심 내내 침대에 드러누운 채로 멈추어버린 모든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직 다 수정하지 못한 설문지, 본론 부분을 쓰다 만 레포트, 화요일 즈음 새로 생겨난 발표 과제와, 일주일 간의 학습 내용이 담겨 있어야 했을 노란 폴더, 사각의 카트를 채우고도 모자라 흘러넘치려는 흐물흐물한 옷가지들, 미처 해결하지 못한 식사.

자그마한 방에서 몇 개의 눈과 입이 생겨났다. 술렁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처리하지 못한, 치우지 못한, 내가 했어야 하고 해야 하는 수많은 일들. 그러나 그들은 내 얼굴을 돌아보지 않는다. 그럴듯한 결과가 나오면 사그라드는 눈들이라.


찬기가 서린 베란다로 눈길을 돌리다, 이제는 죽음이란 말로 도피하는 것도 의미 없는 짓이라는 것을 알았다. 등 뒤에 차가운 벽이 닿는 듯했지만 나는 벽의 존재마저도 느낄 수가 없다. 눈을 감고 잠으로 도피할 수도, 남에게 맡길 수도, 벌겋게 열이 오른 얼굴로 눈물을 흘릴 수도 없다. 그런다고 해서 해결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저린 목과 손끝을 늘어뜨리고, 홀쭉하게 들러붙은 배를 옷 밑에 숨긴 채로, 쉼 없이 맴을 도는 정신을 퍼뜨리며 하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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