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하루

by 이지원

내 머리에는 어제도 오늘도 없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흐릿한 하루를 보낸다는 것이 어떤 말인지 아는가? 분명히 꿈에서 보았던 것이 현실에 있는 것 같고, 현실에 있는 것이 꿈에 있는 것 같다는 말이다. 어제 무엇을 먹고 무엇을 했는지, 아니, 낮에 무엇을 먹고 무엇을 했는지조차 헷갈리는 삶을 살며 느끼는 것은 내가 이 삶을 꼭 지속해야 할지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환상적인 경험을 하게 해 주는 것은 꿈이고 그게 전부 뭉그러지는 것은 현실이라고 내 나름의 기준을 세우지만 그것조차도 진짜인지 알 수가 없다. 그야말로 내 머릿속은 뒤죽박죽이다. 그런 혼란 속에 서 있으니 남이 써 준 장문의 글이나 내가 쓴 장문의 글도 제대로 읽을 수가 없다.

씻는 것이나 먹는 것을 꼭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열심히 씻어봐야 시간이 지나면 다시 더러워지고 열심히 먹어봐야 무엇을 먹었는지조차 기억을 못 하니 그리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하는 것이 필수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가 잠시나마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씻고 난 뒤, 그 찰나의 순간뿐이다. 뒤죽박죽 한 혼란 속에서 그걸 기억하는 날이 그나마 정신이 상쾌해질 수 있는 날이다.


몽롱하고 비현실적인 삶 속에서 유일하게 생생한 꿈 이야기를 해 보자. 간밤에 모르는 남자 하나를 보았고, 그 남자와 온갖 것을 다 했다. 알던 사람도 아니었다. 내가 살면서 보아왔던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섞인 듯한 얼굴의 남자였는데, 평범한 것도 자극적인 것도 다 섞어가며 하룻밤을 보냈다. 왜 그런 더럽고 자극적인 관계 속에서 안도감을 느꼈는지, 왜 그런 살덩어리 속에서 사랑을 느꼈는지 알지 못했다. 그 남자의 몸 뒤로 펼쳐진 모든 공간은 어디 하나 안정적인 곳이 없고, 유리창 하나마저도 온갖 색을 다 뿜어내고 있었다. 삼각형, 사각형, 오각형, 원, 그러다 선 하나로 일그러지기도 하는 공간이었다. 나는 그 남자를 싫어하기도 했고 좋아하기도 했으며 더 나아가 사랑하기도 했다. 그 사람의 몸은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럽고 느리게 흘러내리기도 했고 돌처럼 단단하기도 했으며 보통 사람의 피부처럼 매끄럽기도 했다. 쏟아지는 수많은 살덩어리를 덮고 다른 꿈으로, 다른 세상으로, 한 번 외틀어 같은 꿈과 세상으로 흘렀다. 어느 것 하나 고정된 것이 없는 세상에서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던 평온함을 느꼈다.

꿈이 얕은 곳으로 옮겨갔을 때,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내 이름을 부르지도 않는 곳이 좋았다. 아니, 사실은 내 이름을 불렀던 곳일까. 무엇 하나로 고정되어 불리지 않는 곳은 쓸쓸한 동시에 쓸쓸하지 않았다. 그런 곳이 좋았다. 다른 꿈에 묻히더라도 그곳은 나에게 행복을 주었으니까.


이제 먹는 것을 보자. 나는 고기를 꼭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어머니가 만드신 음식이 가득한 식탁에는 온갖 고기가 가득했다. 다진 고기, 삶은 고기, 구운 고기, 국과 찌개 속의 고기... 그걸 먹으면 힘이 난다고, 맛이 좋다고 느끼는데 나는 도저히 삼킬 수가 없었다. 아마도 음식을 차려주신 사람이 가족이 아니었다면 그것을 전부 변기 속에 뱉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몸통이 그대로 남아있는 생선도, 얇게 잘린 돼지의 살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잘게 다져서 네모나게 성형해 구운 알 수 없는 살덩어리도... 전부 기름과 감칠맛에 버무려져 있었는데 삼킬 때마다 껄끄러워 제대로 먹기가 힘들었다. 감각이 예민해진 탓인지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누군가의 살을 먹는다는 것이 낯설기만 했다. 분명히 이제껏 맛있는 음식으로만 보고 살아왔는데 요즘 들어서는 뭔가 다르게 느껴진다. 그게 단순히 동물을 가엾게 느끼는 마음이 아니라 그냥 남의 살덩어리를 잘라먹는다는 것이 낯설고 생소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명료하지 않은 지금의 정신 상태와 큰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고기를 낯설어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식구들을 걱정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지 않으려면 억지로라도 살덩어리를 씹고 삼켜야만 한다. 그리고 꼭 맛있다는 말을 덧붙여야 한다. 그저 그런 낯선 하루를 경계도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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