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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날 백대백 Jun 20. 2024

낮은음 자리표

18. 카페오레

지수는 숙원 지씨의 부탁을 받고 궁에서 나올 때 얼마 전에 중국에서 갓 들여온 커피생두와 진상된 우유를 가지고 나왔다. 이것들 모두는 이 시대에 아주 귀한 것들이다. 아마도 지수가 궁에서 이것들을 관장하는 상궁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왕의 부인인 숙원 지씨의 부탁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왕궁의 물건을 사사로이 가지고 나온 것이 발각된다면 목숨을 내놓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동안 숙원과의 대화를 통해 지수는 숙원 지씨를 이해하고 돕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고 숙원 지씨가 그토록 커피를 대접하고자 하는 사람이 궁금해지면서 이런 위험한 일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순희씨 이곳에 번철이 있을까요?"

지수는 커피생두를 볶을 프라이팬을 생각하는 순간 입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이 시대의 프라이팬 격인 번철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자 그런 자신에게 다시 한번 놀란다.


"번철은 양반가에나 있을 물건이고 저희  같은 일반 백성들은 가마솥뚜껑을 뒤집어쓰는데 이것이라도 괜찮을까요?"

순희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가마솥뚜껑을 가리킨다.

뒤집은 가마솥뚜껑에 가져온 생두를 볶는다.

생두는 잠시 후 '타닥탁탁'하며 팝콘 터지는 것 같은 커피팝핑이 시작되고 장작불의 둔탁한 나무 타는 소리와 함께 마치 비트음악을 연주하는 것 같다.


"순희씨 가배생두를 볶을 때 이렇게 은피銀皮라는 겉껍질이 벗겨져 날리고 속이 부풀어져 터지면서 마치 장작 탈 때 나는 소리처럼 타닥탁탁하고 소리가 나요."

지수는 커피에 대한 것을 호기심 가득한 순희에게 설명한다.


나무주걱으로 커피콩이 진갈색으로 변할 때까지 열심히 휘젓는 지수가 다시 이어 말한다.

"볶은 가배콩색이 연할수록 차로 내렸을 때 신맛이 많이 나고 이렇게 색이 진해질수록 쌉싸름한 맛이 많이 난답니다."

다 볶아진 커피콩을 그릇에 담아놓은 지수가 이번엔 콩을 작은 절구에 넣어 곱게 가루로 만든다.


부드러운 커피를 대접하고 싶은 지수가 생각한 것은 카페라테와 카페오레였다. 둘 다 커피에 우유를 넣는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카페라테가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1:2로 넣는다면 카페오레는 드립커피에 우유를 1:1로  넣는. 한지韓紙를 적당히 잘라 필터로 하여 곱게 간 커피를 넣고 드립커피를 내린다.


호리병에 담아 온 우유는 주둥이를 막고 흔든다.

그런 다미리 준비한 뜨거운 물이 담긴 뚝배기에 호리병채 넣어 우유를 중탕하여 데운다.

"마마님 이 하얀 물은 혹시 타락駝인가요?"

옆에서 지켜보던 순희가 신기한 듯 묻는다.

"네 맞아요. 우유라고도 하죠. 진하게 내린 가배에 따뜻한 우유를 넣으면 아주 부드러운 맛의 가배차를 즐길 수가 있어요."

지수는 역시 궁에서 져 온 예쁜 잔에 드립커피를 따르고 중탕하여 따뜻해진 우유를 같은 비율로 넣으며 설명한다.


다 만들어진 카페오레를 들고 지수는 방으로 들어간다.

뒤따르는 순희는 커피가 담긴 잔이 마음에 드는지 눈을 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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