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다.
언제부터인가 잠이 오지 않는다.
길가로 향해 있는 창을 열고 담배에 불을 붙인다. 5월의 공기는 아직 차갑다. 캄캄한 골목길에 적막함과 싸늘한 새벽공기가 부딪히면서 담배연기가 그 틈을 끼어든다. 부스스한 머리에 뿜어낸 연기가 역류해서 스며든다. 여자나이 팔십이 넘으면서 가장 두려운 것은 무욕無欲이다. 그 어떤 것도 쓰러지고 있는 고목에 생기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지금은 몸도 병들고 마음도 메말라 간다.
무욕은 삶에 어떤 희망도 절망도 못 느끼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바람이 없는 상태다. 나는 그것이 두렵다. 이렇게 타다 남은 재속에 불꽃이 마지막 열기와 빛을 내보내고 사그라지는 것이 두렵다. 그러다가 그 누구도 모르게 온기 없는 재만 남아 무심한 바람에 흩날려 흐트러지겠지.
언제 불타올랐는지 모를 불꽃이, 아니 그런 불꽃이 이 세상에 존재했었는지조차 모르겠다.
담배를 피우게 된 것은 어머니 때문이다. 내가 16살 무렵 우리 집에서는 담배농사를 지었고 어머니는 담뱃잎을 말아 담배를 피우셨는데 나에게 꼭 담배에 불을 붙여 갔다 달라고 하셨다. 그렇게 한대 두대 어머니 심부를 하다 보니 나 역시 어머니와 같이 담배를 피우게 된 것이다.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담배는 몸속에 회충을 없애는데 좋은 약이니까 그 정도 피우는 것은 괜찮다고.
아~우리 어머니 아름다우면서도 억척스럽고 우리 자식들을 너무도 사랑하셨던 우리 엄마. 그녀는 일제강점기 일본에 건너가 고물장사를 하셨다. 곱상한 얼굴에 곱게 빗은 쪽머리를 하고 어머니는 고물구루마를 끄셨다. 어머니는 구루마를 끌면서도 일본만화책으로 일본어를 익힐정도로 똑똑한 여인이었다. 나와 오빠 그리고 남동생은 일본에서 태어났고 초등학교를 다니다 해방이 되어 한국으로 넘어왔지만 지금은 일본 어디서 태어났는지 기억이 없다.
수많은 인파가 부산항에 서로 얽혀 지나갔다. 일본에서 나름 큰돈을 번 우리 부모님은 가족 허리춤에 돈다발을 묶어 자칫 잃어버릴 수 있는 위험을 대비하셨다. 고국이라 해도 오랫동안 타지에서 살다 온 우리에게는 부산은 낯선 땅이었고 누구 하나 의지할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일본돈을 은행에서 한국돈으로 바꿔주겠다는 양복 입은 사람들이 다가오자 아버지는 선뜻 우리 모두의 돈뭉치를 그들에게 전하셨고 대신 그들이 써준 영수증을 손에 꽉쥔채 몇 시간이고 부산항 선착장에서 그들을 기다렸다.
그 사람들은 아니 그 나쁜 놈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부산항에서 돈을 사기당한 아버지는 돈을 되찾고자 노름에 손을 데셨고 역시 노름꾼들에게 남은 가산마저 탕진하면서 결국 화병으로 돌아가셨다. 내가 내 아이들에게 어릴 적 구슬치기, 딱지치기도 못하게 했던 것은 아마도 아버지가 도박으로 세상을 떠나신 것에 대한 충격 때문일 게다. 옛일을 생각하며 두 번째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연거푸 담배를 피워서인지 과거일이 심경을 흩트려서인지 머리가 어질 하고 속이 메스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