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키오가 되기 전에 멈춰야 해!
최근 새로운 사람과 만나 두세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눌 일이 있었다. 시답잖은 날씨 이야기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흘러흘러 각자의 취향, 취미로까지 흘러갔다. 인생에서 글과 책을 빼놓으면 시체인 나는 자연스럽게 책 이야기를 꺼냈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맥락은 이러하다.
“저는 주로 비문학을 즐겨 읽어요.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소설은 손이 잘 안 가더라고요.”
“그래요? 저는 소설을 주로 읽는데 에세이는 별로 잘 안 읽어요.”
“저도 에세이는 잘 안 읽어요.”
에세이는 잘 안 읽는다고, 반사적으로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왜 그랬을까? 집에 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에세이, 산문집 등의 이야기로 잘 읽는 편이다. 지금 내 시야 왼쪽 침대 위에는 이슬아 작가의 산문집, 서평집, 인터뷰집 3권이 마구잡이로 흐트러져 있다. 내 앞 노트북은 아트인사이트에 올라온 에디터들의 에세이 창을 떡하니 펼치고 있다. 내 글을 써 내려가기 전, 다른 에디터들의 에세이를 읽으며 내 글솜씨를 자책하는 시간은 글쓰기 루틴에 당당히 자리 잡고 있다.
거짓’말’은 익숙해도 거짓’행동’은 어색한 걸 보면 역시 행동은 취향을 숨기지 못하는 듯하다. 솔직히 에세이 읽는 걸 즐긴다. 글에 묻어 나오는 개인의 사유, 경험, 표현이 광을 낸 사과처럼 표면이 빤닥거리는 걸 목격할 때의 쾌감은 늘 짜릿하다.
위의 대화뿐만이 아니다. 며칠 전 카톡으로 친구들과 유튜브 취향을 공유하며 시시껄렁한 얘기를 나눴다. 이번에도 내가 먼저 취향을 공유하며 대화를 시작했다.
“난 주로 지식, 정보 채널을 주로 보고 일상 브이로그 진짜 안 봐. 솔직히 남 일상 안 궁금해. 난 정보만 얻고 싶거든. 그래서 내가 소설 안 읽고 비문학만 파나봄.”
이를 본 친구 Y의 카톡.
“소설에도 정보 있음! 둘이 그렇게 다르지도 않은데 그냥 딱 선을 그어버리는 느낌이네. 너무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말하는데?”
아차! 또 거짓말이다. 내가 정말 남의 일상을 궁금해하지 않는가 하면 절대 아니다. 내 유튜브 구독 리스트 중 적지 않은 수가 내 지인 및 친구들의 개인 유튜브 채널이다. 네이버 블로그는 말할 것도 없다. 친한 친구들은 업로드 알림을 설정해둘 정도로 일상 글을 열정적으로 확인한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야말로 타인의 내밀한 속사정과 일상까지 들여다보는 취미 아니던가.
나는 왜 이렇게 거짓말쟁이가 된 걸까? 너무 무의식적이라 나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한 채로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었다. 깨닫고 나니 내가 꼭 피노키오가 된 것 같다. 원래도 남들보다 길게 느껴진 코가 오늘따라 더 밉다.
나는 타인이 내 취향, 그리고 나아가 나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릴 거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남들이 내 취향을 판단하기 전에 먼저 선을 긋고 방어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떠도는 편견들을 무의식적으로 수용해 내 취향을 검열했다. ‘에세이’는 진짜 독서가 아니라는 생각, ‘일상 브이로그’는 남 일상이나 쳐다보는 할 일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들이 내 머릿속에서 스멀스멀 자라나고 있었다. 위와 같은 사고가 편협하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혹시나 그런 편견을 가진 사람이 나를 ‘그런 사람’으로 평가할까 두려워 숨었다.
나를 거짓말쟁이로 만든 건 타인이 아니라 나였다. 내 앞에 존재하지도 않는 타인을 의식해 나를 가리고 숨게 만드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이 ‘가짜 수치심’이 나를 숙주로 삼아 내 머릿속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모두에게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었던 나의 태도는 가짜 수치심에게 영양분을 잔뜩 공급했다. 그 껍질 속엔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내가 있었다.
복싱 중 ‘섀도복싱(Shadow Boxing)’이 있다. 상대가 없는 허공에 대고 샌드백 없이 연습하는 방법이다. 복싱에서 해당 연습법은 기술을 익힐 수 있고, 실제 상대와 겨뤄보기 전 이미지트레이닝을 할 수 있는 방법이기에 추천되는 방법이다. 그러나 인터넷상에서 ‘섀도복싱’은 다소 다른 의미를 가진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는데 혼자 가상의 공격 상대를 만들어 놓고, 허공에 공격을 하는 행위를 비유하는 표현이다.
오랜 기간 나는 섀도복싱을 하며 살아왔다. 실제 복싱을 시작한 지는 1년 무렵밖에 되지 않았는데, 일상에서는 한평생 섀도복싱을 하며 스스로와 타인에게 주먹을 휘두른 셈이다. 앞으로는 주먹은 복싱장에서만 휘두르고, 일상에서는 나에게 기생한 가짜 수치심을 내쫓을 계획이다. 껍질을 뒤집어쓰고 길어진 코를 숨기기 바쁜 나를 깨워 햇빛부터 쐬어줘야겠다.
원문: 아트인사이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8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