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다 그리오’를 말할 용기 [공연]

어린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두려움의 세계 -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

by 소인정의 모놀로그



어른이 되면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불안해할 필요 없는 거 아니야?
어른은 무서울 게 하나도 없잖아.



대학생 때부터 3년 가까이 과외 교사로 지내온 나에게 아이들은 가깝고도 먼 존재다. 일주일에 서너 시간을 단둘이 보내며,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수학 과목을 함께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를 스쳐 지나간 아이들은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약 10명 남짓으로,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년 넘는 시간을 함께했다. 10대 아이들에게 과외 교사는 때때로 부모에게 털어놓기 어려운 생각들을 조심스럽게 꺼내 보일 수 있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요. 어른이 되면 원하는 거 다 사고, 엄마 아빠 말 안 들으면서 자유롭게 살 수 있잖아요.’


불과 한 달 전, 초등학교 6학년에 올라가는 한 학생에게서 들었던 말이다. 이러한 기대는 어른이 된다는 것이 곧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전제한다. 그러나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는 바로 그 믿음에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시인 이상의 시 「오감도」를 모티프로 삼아 어린이 배우들의 공동창작 과정을 통해 완성되었다. 오디션을 넘어 대본 개발 단계에까지 참여한 어린이 배우들의 목소리는 기존 어린이·청소년극의 교훈적 서사 구조에서 벗어나 보다 현재적인 감각을 무대 위로 호출한다. 여기서 어린이는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 머무르지 않고, 어른이 만든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는 또 하나의 주체로 기능한다.


사진 출처 - 공놀이 클럽, 이지응


1. 제1의아해가 _ 태어나기 무섭다그리오
2. 제2의아해가 _ 달리기 무섭다그리오
3. 제3의아해가 _ 부모님 무섭다그리오
4. 제4의아해가 _ 집 무섭다그리오
5. 제5의아해가 _ 학교 무섭다그리오
6. 제6의아해가 _ 서울 무섭다그리오
7. 제7의아해가 _ 스마트폰 무섭다그리오
8. 제8의아해가 _ 아이돌 무섭다그리오
9. 제9의아해가 _ 나이드는 것 무섭다그리오
10. 제10의아해가 _ 꿈 무섭다그리오
11. 제11의아해가 _ 노키즈존 무섭다그리오
12. 제12의아해가 _ 전쟁 무섭다그리오
13. 제13의아해가 _ 나 무섭다그리오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는 어린이가 창작 전반에 참여한 공연인 만큼 관람 제약을 최소화하는 ‘열린 객석’을 도입한다. 공연 중간에도 자유로운 입퇴장이 가능하고, 관객이 소리를 내거나 좌석 내에서 몸을 뒤척여 움직일 경우에도 제지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는 점도 특징이다. 장난감, 애착 인형 등 관객의 심신 안정을 위한 개인 물품 소지가 가능해, 작은 인형을 팔에 끼고 극장 안으로 들어오는 어린이 관객들이 눈에 띄었다.


무대 위에서 어린이와 어른 배우들은 시끌벅적하게 질주하며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들을 읊는다. 태어나는 것부터 나이 드는 것까지, 부모, 학교, 서울, 스마트폰, 꿈, 전쟁, 그리고 나 자신까지—세상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 이는 단순히 어린이의 공포를 나열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작품이 호명하는 두려움의 목록은, 사실상 동일한 사회를 살아가는 어른들의 불안을 함께 반영한다.


사진 출처 - 공놀이 클럽, 이지응



제7의 아해가 무서워하는 건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아이는 어른들과 같은 알고리즘에 노출되어 여러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아이돌을 무서워하는 제8의 아해도 사랑과 관심을 동경하는 욕구를 통해 사회의 문제점을 담아냈다.


제10의 아해의 공포는 꿈이다. 어린이 배우와 어른 배우 모두 한 줄로 서 각자의 꿈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여기까지 제시된 모든 두려움들은 비단 어린이만의 것이 아니다. 같은 세상 아래 살아가는 어린이와 어른,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내포한다.


마지막 제13의 아해의 두려움은 ‘나’이다. 어른 배우는 어린이 배우와 마주 보며 “어른이 돼도 무서운 것이 많다”라고 솔직히 고백한다. 이에 어린이 배우는 “무서워해도 괜찮아. 그리고 질주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응답한다. 이는 이상의 「오감도」 속 문장을 연상시키는 대목으로, 질주를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두려움을 표현할 권리를 되돌려준다.


사진 출처 - 공놀이 클럽, 이지응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는 아이들의 솔직하고 당돌한 시선을 희곡에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어른이라는 이유로 숨기기에 바쁜 두려움을 전면에 드러내고 서슴없이 질주하는 아해들의 모습은 대리만족과 후련함을 느끼게 한다. “무서워”라는 대사가 무대를 가득 채울 때, 어른이라는 이유로 감정을 억제하도록 요구된 관객에게 일종의 해방감을 제공한다. 아이들이 무서워하는 건 어른과 별반 다르지 않다. 시간이 흐르며 앞자리가 2가 되고, 자연스럽게 부여된 ‘어른’이라는 이름표가 마음속 추처럼 솔직함을 무겁게 잡아당겼을 뿐이다.


“왜 우리 엄마는 장원영이 아닐까. 왜 우리 아빠는 일론 머스크가 아닐까. 왜 우리 집은 트리마제가 아닐까. 왜 나는 엔비디아 주식이 없을까.”


솔직하다 못해 대담한 어린이 배우의 대사는 어른의 마음속에도 존재하는 욕망들을 무대 위에서 직접 조명한다. 극을 관람하는 동안 마음속으로 되뇌던 ‘나도 그랬어’라는 문장은 어느 순간 ‘나도 그래’로 바뀌어 있었다.


사진 출처 - 공놀이 클럽, 이지응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는 무섭고 불안한 마음을 애써 감추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한다. 무서운 것을 무섭다고, 이상한 것을 이상하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목소리가 존중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두려움을 말하는 일이 가능해질 때, 비로소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다정한 사회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와 같은 작품들이 더 많이 만들어져, 아해들이 무서워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고도 함께 질주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기대한다.





원문: 아트인사이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9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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