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보다 더 어려운 ‘번복’

영화 <아사코 Asako I & II> 그리고 나


약 1년 반 전,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한 강연을 들었다. 강연의 주제는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로 영화 속 인물들을 보며 삶에서의 선택을 고찰하는 내용이었다. 그 강연에서 마지막에 다룬 영화가 <아사코 Asako I & II>였다.



영화 <아사코>를 아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수동적인 성격의 주인공 아사코가 결말부에 이르러 주체적인 선택을 내리는 모습으로 성장하는 내용이다. 이 영화의 독특한 지점은 선택과 관련된 장면들이 두 번씩 반복된다는 점이다. 특히 영화에서 중심으로 조명하는 선택은 '사랑'이다.


아사코는 2년 전 오사카에서 갑자기 사라진 첫사랑 바쿠와 똑같이 생긴 료헤이를 도쿄에서 만나며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그러나 바쿠와 료헤이는 흡사한 외모 외에는 공통점이라고는 전혀 없다. 현실적인 회사원 료헤이와 원만한 관계를 맺어가며 결혼까지 향해 가던 중, 갑작스럽게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바쿠가 아사코 앞에 나타난다. 아사코는 자신과 떠날 것을 제안하는 바쿠의 손을 잡고 료헤이를 떠난다. 그렇게 떠난 길에서 아사코는 돌연 다시 료헤이에게 돌아가겠다는 선택을 내린다.


이동진 평론가는 해당 영화를 통해 옳지 않은 혹은 좋지 않은 첫 선택의 번복이 더 어려우며, 용기와 결단이 필요함을 언급했다. 그리고 이전까지 아사코는 항상 수동적으로 움직이던 인물이었으나, 이 장면에서 오롯이 자신의 주체적인 첫 선택을 내린다는 해설이 이어졌다.


영화에 관심을 갖기도 전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알게 된 셈이지만, 오히려 이동진 평론가의 해설은 해당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당시의 나는 조기졸업이라는 선택을 내린 후, 번복할 수 없는 선택임에도 찝찝함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 고민에 조금이라도 해답이 될까 싶어 영화 <아사코>를 틀었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충동스럽게 느껴지는 아사코의 변화를 이해하기 어려웠으며, 그 행동에 내포된 의미 또한 알아차리지 못했다. 여러 평론과 후기를 찾아보았음에도 여전히 내게는 아리송한 영화로 남았다. 당시 아사코는 료헤이를 만나러 가면서 스스로와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지, 어떤 깨달음을 얻고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끊임없이 궁금했다.


무엇보다도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은 건 나를 향한 질문이었다.


나는 과연 내가 잘못한 선택이 있다면 아사코처럼 바로잡을 용기가 있을까? 애초에 그게 잘못된 선택임을 알기나 할까? 아사코는 자신의 선택이 잘못됐다는 걸 비교적 빠르게 인지해서 이를 되돌리려고 고군분투하는데, 난 과연 되돌릴 수 있는 길목에 서 있기는 한 걸까?



일 년 반이 지난 지금의 나로 돌아와, 현재 시점에서 해당 영화와 내 고민을 되짚어본다.


먼저, 선택의 번복이 어려운 이유는 과거 자신의 선택이 옳지 않았다는 깨달음과 인정을 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틀렸음을 정면으로 직시한다는 건 가슴 아프고 씁쓸한 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게다가 종종 번복이 과거의 선택이 틀렸다는 ‘인정’인지, 포기를 정당화하기 위한 ‘합리화’인지의 경계도 매우 불분명하게 느껴진다.


솔직히 말하자면 조기졸업을 다소 후회한다.


한 학기를 더 다녀 졸업을 유예할 수도 있었고, 학생이라는 안락한 신분 속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학생 신분으로 얻을 수 있는 혜택이 그렇게 많았다는 걸 소속된 곳이 하나 없는 신분이 된 후에야 피부로 체감했다. 일 년 반이 조금 넘게 이어진 방황은, 마치 내 인생에 빈 공간이라도 생긴 것 같은 ‘공백기’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아사코가 바쿠를 선택한 이유에는 첫사랑이 갖는 강한 이끌림이 있었을 것이다.


나 또한 태어나서 처음 가져본 꿈이 주는 강한 인력에 이끌려 배우라는 직업을 꿈꿨다. 무대를 동경하던 나는 대학 시절 운명적으로 본 공연에 빠졌고, 그 마음은 계속 부풀어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이어졌다. 본격적으로는 1년의 휴학과 1년 반의 졸업 이후의 시간과 돈을 배우라는 직업 준비에 쏟았고, 올해 도합 약 4년을 바라보던 꿈을 돌연 모두 정리했다.


아사코가 관객에게는 충동적으로 느껴질 만큼 빠르게 자신의 선택을 번복했던 것처럼, 나도 내 꿈을 정리하겠다는 결심과 실행, 그리고 마무리까지 겨우 한 달이 걸렸다.


아사코는 바쿠를 따라가는 선택을 했기 때문에 자신이 료헤이를 사랑한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아사코는 료헤이에게 돌아가겠다는 선택을 내린 후 완전히 변모한다. 영화 내내 수동적이었던 아사코는 바다와 산까지 넘어가며 그동안 만나온 사람들을 찾아가 직접 사과를 하는 행동으로까지 나아간다.



괜스레 아사코와 나를 빗대어 본다.


주변 사람들이 당황할 정도로 갑작스러웠던 내 선택은 내게는 너무나도 확고했고, 당연한 수순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말과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 직감이 나에게는 명확한 정당성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남들이 ‘옳지 않다, 좋지 않다’라고 규정한 그 선택을 직접 내려보았기에, 되돌아갈 수 있는 길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아사코의 선택에는 대가가 따르고, 그에 따른 책임 또한 아사코의 몫이다. 그리고 아사코는 그 선택에 책임을 진다. 나 또한 나의 온전한 선택들에 대해 책임을 지며 나아가야 한다.


바다와 산을 넘어가던 아사코처럼, 나 역시 내가 건너온 시간을 부정하지 않은 채 앞으로 걸어가려 한다. 번복은 후퇴가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의 전진이라고 믿으면서.




원문: 아트인사이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9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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