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잡이부터 시작된 글쓰기와의 운명적 만남
여기, 인생 첫 생일 파티를 맞이한 아이가 있다. 이 아이는 분홍색 한복을 차려 입고 아빠의 품에 안겨 지금 막 테이블로 손을 뻗는 중이다. 아이가 손을 뻗는 테이블 위에는 쌀, 실, 연필, 공책 등의 물건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태어나 처음 받는 엄청난 관심 속에 내리는 선택이 아이 인생의 실마리를 제공할지도 모른다. 두구두구... 아이의 선택은?
바로 알록달록한 연필! 아이는 자신이 어떤 선택을 내린지도 모른 채 입을 헤~ 벌리고 있다. 이 모든 순간은 사진으로 남아 기록되었고, 이십여 년이 지나 나는 글쓰기와 독서를 사랑하는 활자 중독 인간으로 자라났다.
돌잡이의 영향인지, 나는 유난스러울 정도로 작고 사소한 장바구니 리스트부터 내 인생의 터무니없이 큰 목표까지 모든 걸 기록한다. 장르도 넓다. 나 혼자만의 감정을 적는 소소한 일기부터 친구들과 함께한 소중한 시간을 담은 블로그, 책이나 영화를 본 후의 감상문, 새로운 걸 배우고 잊지 않기 위해 꼼꼼히 적어두는 작업 일지까지.
인생의 사용 시간을 퍼센티지로 나타낸다면, 내 인생에서는 ‘쓰는 시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척 클 것이라고 확신한다. 흰 천과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옛날 드라마 속 말처럼, 난 연필과 공책만 있으면 뭐든지 기꺼이 기록할 사람이다.
사랑, 가난, 그리고 재채기는 숨길 수 없다는 탈무드의 명언이 있다. 옛말 틀린 말 하나 없다더니, 나 또한 사랑하는 마음을 잘 숨기지 못한다. 사랑의 대상은 매우 다양하다. 그 대상은 사람일 때도 있고, 동물일 때도 있고, 심지어는 무생물일 때도 있으며, 한순간에 지나가 버리는 특정한 분위기일 수도 있다. 일단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면 가슴이 벌렁벌렁거리고, 급기야 그 기분에 마음이 홀딱 잠겨 바깥으로 울컥울컥 흘러나올 때도 있다.
좋아하는 마음을 좋아하는 행위로 표현하면 기쁨이 두 배라는 생각으로, 나는 주로 좋아하는 마음을 글로 써서 동네방네 알리는 유난을 자주 떤다. 요즘처럼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 시대에는 카톡 단체방에 가정통신문을 보내듯 내 마음을 글로 적어 전단지 돌리듯 뿌리기도 한다.
이 행동은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내 ‘오타쿠’ 기질로부터 나온다. 내가 사랑에 유독 취약하게 태어난 걸지도 모르겠다. 내 관심 레이더는 누구보다 빠르게 좋아할 만한 거리를 포착하고자 움직인다. 그리고 좋아하는 요소가 생기면 어떻게든 그 마음을 표현하고 좋은 점을 알리고 싶어 한다.
앞에 사람을 잡고 수다를 떨어도 좋지만, 글쓰기로 표현하는 방식을 조금 더 선호하는 편이다. 아무래도 여러 사람들에게 전파하기 위해서는 말보다 글이 용이하기 떄문이다.
공개된 온라인 플랫폼에 글을 쓰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코로나 시기, 사람들이 그리워 자주 보게 된 뮤지컬이었다. 현장성이 강한 뮤지컬은 그 순간이 지나면 사라져버린다. 나는 그날 그 시간의 공연에서 느낀 감정들을 글로나마 붙잡아두고 싶었다. 사람과의 단절이 당연했던 시기에 글로 인해 숨통이 트였다. 그 호감의 씨앗이 자라 에디터의 길까지 나를 이끌었다.
예전에는 주로 좋아하는 장르에 대한 글을 썼다면, 최근에 들어서 글의 주제가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내가 존재하는 주변 및 세상을 관찰하고 사랑하고자 쓰기 시작했다. 감정과 생각은 신기루 같은 것이어서 잡아두지 않으면 까먹어 버린다.
어쩐지 내 글쓰기는 지나가버릴 덧없는 감정과 생각을 잡아서 꼭꼭 담아두고 싶다는 집착과 소유욕에서 비롯된 건 아닌가 하는 기분도 든다. 하지만 세상과 사람을 향한 관심과 사랑이 글을 쓰게 만드는 주요한 동력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