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이 진실이 되는 순간 [공연]

이름과 집, 그리고 도망이라는 선택 - 연극 <내가 살던 그 집엔>

by 소인정의 모놀로그
포스터


연극 〈내가 살던 그 집엔〉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오셀로>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원작을 읽으며 서사에서 비켜나 있던 에밀리아의 이야기에 주목한 마정화 작가는, 서사의 공백을 1970년대 후반 한국이라는 시공간으로 옮겨와 새롭게 구성한다. 작품은 원작의 구조를 차용하되, 여성 인물들의 목소리를 전면에 내세우며 전혀 다른 결의 서사를 펼친다.


극은 ‘거짓말이야’라는 노래로 문을 연다. 이 도입부는 단순한 장치가 아니라,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로 기능한다. 원작 〈오셀로〉가 ‘가짜 이야기’에서 출발해 그것이 현실을 잠식하는 과정을 그렸다면, 이 작품 역시 거짓과 진실의 경계를 넘나든다. 특히 여성 서사에서 ‘거짓말’은 단순한 기만이 아니라, 진실을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표현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제공 극단 적 / ©sol__Kim


무대 위에는 네 명의 여성이 놓인다. 화교라는 이름표를 지녔으나 정체성은 한국에 더 가까운 ‘마마’, 가족의 부양 요구에서 벗어나고자 도망쳤지만 여전히 원가족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한 ‘엄마’, 그리고 마마와 엄마의 딸인 ‘나’, 마지막으로 결혼이주를 통해 한국에 정착한 이주 여성 ‘꾸엔’이다. 이들은 서로 다른 배경을 지녔지만, ‘집’과 ‘가족’이라는 공통된 축에서 얽혀 있다.


서사는 엄마, 나, 그리고 마마와 꾸엔의 이야기로 교차되며 전개된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자연스럽게 ‘누구의 말이 진실인가’라는 질문에 다다른다. 그러나 “연극에 존재하는 모든 대사는 진실이며, 거짓말하는 사람은 없다.”라는 작가의 언급은 각 인물은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발화하며, 그 말은 당사자에게 있어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결국 이 작품은 객관적 진실이 아닌, 주관적 진실들의 충돌과 공존을 보여준다.


제공 극단 적 / ©sol__Kim


제목에서부터 강조되는 ‘집’은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상징적 공간이다. ‘내가 살던 그 집’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물리적 장소를 넘어, 기억과 관계가 중첩된 장소성을 드러낸다. 집이라는 공간은 작품 내 여성들에게 양가적인 장소로 기능한다. 안식과 보호의 공간인 동시에 폭력과 억압이 스며 있는 장소이며, 오랜 시간 머물렀음에도 온전히 소유할 수 없는 공간이기도 하다. 인물들에게 집은 잠시 머물 수는 있지만, 안정감을 느끼며 한 개인으로서 온전히 설 수 있는 자리로 정착하기에는 어려운 장소로 그려진다.


이와 맞물려 눈에 띄는 점은 여성 인물들에게 ‘공식적인 이름’이 부재한다는 설정이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쉽게 주변화되어 온 여성들의 위치와 긴밀히 연결된다. 마마, 엄마, 그리고 나는 모두 부계 중심의 이름 체계로부터 비켜난 존재들이다. 자신의 친부를 모르는 마마, 아버지로부터 도망쳐 가정을 떠나온 엄마, 그리고 아빠가 없이 자란 나 모두 부계로부터 부여받는 ‘이름’으로 규정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반면, 이름을 지닌 남성 인물들은 사회적 규범과 기대 속에서 기능한다.


제공 극단 적 / ©sol__Kim


작품의 후반부, 마마는 엄마에게 팔찌와 함께 자신의 이름 ‘타오타오’ 중 타오를 나눠준다. 한국어로 ‘도망가다’라는 의미를 지닌 이 이름은 단순한 호명이 아니라, 관계를 통해 새롭게 부여된 정체성이다. 두 인물은 비로소 소중한 사람에게서 받은 이름을 통해 서로를 확인하고 연결된다.


작품 내 여성들이 현실에서 선택할 수 있는 해결 방안이 ‘도망’이라는 점이라는 점에서 ‘도망가다’라는 이름의 의미는 뜻깊다. 작품 내 여성들에게 심리적인 집이 되어 주는 건 또 다른 여성들이다. 마마와 엄마는 서로에게 ‘집’이 되어주고, 꾸엔은 고향의 여성 친족들과의 연결 속에서 심리적 안식처를 찾는다. 결국 이들에게 집이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감각에 가깝다.


제공 극단 적 / ©sol__Kim


후반부에 드러나는 현실은 마마와 엄마에게 다소 가혹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제시하는 마지막 장면을 하나의 진실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모든 이야기가 ‘떠남’에서 시작되듯, 마마와 엄마의 도망이 단순한 이탈이 아닌 새로운 가능성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게 된다. 어딘가에서 다시 함께 살아갈 두 인물이, 이번에는 온전히 자신들의 이름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본다.



원문: 아트인사이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8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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