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비주류’의 여자들 [영화]

찐따 선생 ‘양미숙’과 백엔짜리 여자 ‘이치코’


‘비주류’란 무엇인가. 사전에 따르면 '비주류(非主流)'는 대세를 이루는 큰 흐름, 즉 주류(主流)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중심에서 벗어난 갈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비주류 문화’란 A급이 아닌 B급으로 치부되는 문화를 말한다. 자주 들어본 표현인 'B급 영화'는 중심에서 벗어나 마이너하고, 저급하거나 수준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에는 ‘다양성’, ‘신선함’, ‘비정형성’이라는 긍정적인 키워드가 붙기는 하지만, 등급에 따라 평가하던 사회문화적인 잣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B급 영화’와 더불어 ‘B급 인생’을 사는 여자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는 흔하지 않다. 누가 봐도 예쁘고 깡마른 여자 배우를 ‘B급 여자’라고 대충 둔갑시켜 우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다수 영화들이 하지 않는 선택을 과감히 내세운 영화 <미쓰 홍당무> <백엔의 사랑>에 마음이 가는 이유다.



찐따 선생 ‘양미숙’ - 영화 <미쓰 홍당무>


나도 알아 내가 별로라는 거!
내가 내가 아니었으면 다들 이렇게 나한테 안 했을 거면서!



영화 <미쓰 홍당무>는 박찬욱 감독의 말처럼, 한국 영화에 ‘양미숙’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남겨줬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깊다. 양미숙이라는 캐릭터를 구성하는 모든 것은 독특하고, 지독하고, 그래서 흥미롭다.


원래 세상은 공평하지 않아. 그래서 우리 같은 사람들은 더 열심히 살아야 해.


고등학교 러시아어 교사인 29살 양미숙은 교내 ‘비호감’이자 일명 찐따이다. 그녀의 수업 시간에는 집중하는 학생이 없고, 선생님들의 치트키인 ‘첫사랑’ 이야기를 쭈뼛 꺼내도 학생들의 시큰둥한 반응에 다시 입을 꾹 다문다. 시도 때도 없이 얼굴이 빨개지는 안면 홍조증은 덤이다.


예쁘다는 이유로 대충 수업해도 사랑받는 같은 학교 러시아어 교사 ‘이유리’와는 영 딴 판이다. 이후 양미숙은 러시아어가 인기가 없다는 이유로 팔자에도 없는 중학교 영어 교사로 발령이 나버린다. 전공이 아닌 과목으로 엉뚱하게 발령이 난 것도, 자신이 짝사랑하는 서 선생님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이유도 모두 이유리 때문인 것 같다.


양미숙은 서 선생과 이유리의 사이를 떨어뜨려 놓기 위해, 서 선생의 딸이자 전교 왕따 서종희와 비밀스러운 동맹을 맺는다. 이 과정에서 양미숙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노력한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공이 아닌 과목을 가르치기 위해 새벽부터 영어 학원을 나서고, 돈을 모으기 위해 교무실에서 숙식을 하고, 서 선생의 아내를 탐색하기 위해 아내가 수업하는 벨리댄스 수업까지 듣는다. 여기에 서 선생과 이유리의 사이를 멀어지게 하기 위한 밑 작업인 야밤의 은밀한 채팅까지도 참여한다.



미숙’한 여성을 의도한 것 같은 이름을 가진 ‘양(미숙)양’은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눈치도 부족한 행동들을 이어 나간다. 열심히 공작을 펼치는데도 상황은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 이런 양미숙의 행동은 이상하게도 보는 내내 밉거나 한심하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들이 안쓰럽고, 사랑스러웠다.


양미숙의 비상식적인 행동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미숙에게 각박하다. 미숙은 그저 미숙으로 존재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미움과 비난의 눈초리를 보낸다. 그러나 미숙은 자신을 미워하는 세상의 눈초리에 숨지 않고, 오히려 당당히 무대에 오른다. 매우 도발적이었던 영화 포스터처럼, ‘나도 이 세상에 버젓이 존재한다’라고 도전장을 정면으로 내던진다.


타인을 질투하고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던 미숙은 엔딩에 이르러 “난 네가 참 마음에 든다”라고 말한다. 여전히 얼굴이 빨개지는 안면 홍조증을 고치지는 못했지만, 그런 ‘나’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사랑하기로 결심하는 미숙은 누구보다도 당당하고 사랑스럽다.



백엔짜리 여자 - 영화 <백엔의 사랑>



전 100엔짜리 여자거든요.


직업이라도 있었던 20대 양미숙과 달리, <백엔의 사랑> 속 이치코의 상황은 미래가 깜깜하다. 일본의 'N포 세대'에 속하는 이치코는 32세 백수 여성이다. 그녀는 일 경험도, 연애 경험도 없으며, 대학 졸업 후 부모님 집에 얹혀살며 하루 종일 비디오 게임만 한다.


집에서 얹혀살며 가게 일도 돕지 않던 이치코가 한심했던 여동생은 결국 이치코에게 심한 말을 퍼붓고, 한 판의 큰 다툼으로 이어진다. 이 다툼으로 인해 이치코는 홧김에 집을 나와 계획에 없던 독립을 시작한다. 자신의 생계를 위해 단골이었던 백엔 샵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고, ‘복싱’을 만나며 그녀의 삶에 전환점을 맞는다.


독립 전의 이치코는 희망도 목표도 없는 텅 빈 눈, 목소리에 힘이 없고 말끝을 흐리는 말투와 구부정한 자세를 유지한다. 백엔 샵에서 일을 막 시작했을 때에도 말투와 행동은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 이치코에게 복싱은 삶의 변화를 만들어 낸다. 이치코는 백엔 샵에서 같이 일하던 변태 이혼남에게 강간을 당하고, 처음으로 사랑하게 된 남자에게도 배신을 당하는 등 큰 아픔을 겪는다. 그러나 이치코는 물러서지 않는다.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복싱을 통해 잊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이치코가 겪어야 했던 최악의 상황들은 관객에게 다소 불편함과 분노를 유발한다. 그러나 그 이후 복싱에 진심을 다해 'いっ-しょうけんめい(잇쇼켄메이)'로 노력하고 변화하고자 발버둥 치는 이치코의 모습은 경이로움을 자아낸다. 단순히 복싱을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선수 등록 막바지 나이에 프로 데뷔를 목표로 복싱에 뛰어든다. 역경이 이치코를 더욱 간절하게 만들고 있었다.



선수 입장곡으로 이치코는 ‘백엔 샵’의 CM송을 선택한다. “이 노래는 뭐냐”라고 불평하는 관장에게 이치코는 “저는 100엔짜리 여자거든요”라고 담담히 대답하고 경기장으로 들어선다.


이겨서 승자가 되고 싶었어. 딱 한 번이라도 이겨 보고 싶었다고...


만반의 준비 끝에 올라간 경기장에서 이치코는 4전 4패의 결말로 경기를 마무리한다. 영화 속 내용이지만 ‘영화’같은 결말은 없다. 현실의 경기는 냉혹하고 ‘나’라는 이유로 봐주지 않는다. 경기가 다 끝나고 자신을 기다린 복서 출신 카노 앞에서 이치코는 한 번이라도 좋으니 이겨보고 싶었다고 아이처럼 운다.


결국 이치코는 패배자로 남은 걸까? 물론 이치코는 프로 데뷔 무대에서 패배자로 남았다. 그러나 그녀는 경기에 올라가기 전 이미 과거의 나를 딛고 일어난 ‘승리자’이기도 하다. 자신을 백엔짜리 여자라고 칭하며 묵묵히 경기에 임하러 나가는 모습에서 이미 이치코는 성장했다. 과거의 자신을 포용하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치코가 이번 시합에서 이기지 못했을지라도, 앞으로 이치코의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다. <백엔의 사랑>을 다 보고 난 후, 세상에 한 발을 내디딘 이치코를 진심을 다해 응원하고 싶어진다.



비호감, 비주류라는 칭호를 달고 다니는 양미숙과 이치코가 눈에 밟히고, 밉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지 고민해 본다. 아마 두 캐릭터가 가진 ‘비호감인 모습’, ‘찐따스러운 모습’이 내 모습 한편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두 인물은 영화 말미에 이르러 자신을 포용하고, 받아들이면서 앞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그 성장이 타인에게 어떻게 비칠지, 얼마나 미약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두 인물의 '새출발'에 힘입어, 나 또한 한 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할 뿐이다.



원문: 아트인사이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3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