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 영화 - <빌리 엘리어트> [영화]

미운 오리 새끼에서 백조로의 당당한 비상, <빌리 엘리어트>

by 소인정의 모놀로그



일명 ‘인생 영화’를 물어보는 질문은 매번 깊은 고민에 빠지게 만든다. 특히 ‘인생’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인생의 무게만큼이나 큰 부담감이 몰려온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 해에 영화를 본 횟수가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던 중, 한 수업을 통해 만난 <빌리 엘리어트>는 내 ‘인생 영화’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 영화가 어떠한 이유로 내 ‘인생 영화’가 되었는지 소개하고자 한다.



시공간적 배경, '광부 대파업'과 더럼 마을



<빌리 엘리어트>는 1980년대 영국 북동부 탄광 마을 ‘더럼’을 시공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당시 영국 수상인 대처는 국영기업의 민영화 정책을 추진했고, 그 결과 공공 부문 노조 파업이 대대적으로 진행됐다. 그중에서도 대처 정부와 가장 첨예하게 부딪힌 곳이 바로 탄광 노조였다. 영화 속 빌리의 아버지와 형은 더럼에서 일어나는 탄광 노조 파업에 핵심적 리더로 활동한다.


광부들로 구성된 마을인 더럼은 마초적인 남성성, 가부장제의 입김이 센 공동체다. 그러나 파업이라는 마을의 위기가 장기화되면서, 공고했던 규범에 점차 균열이 생긴다. 그 시작점 중 하나가 체육관에서 함께 이루어지게 된 ‘권투’‘발레’ 수업이다. 발레 수업 공간이 파업 장소로 쓰이게 되면서 남성들의 공간(Boys Club)이었던 체육관에 발레가 불쑥 들어오게 된다. 영화 초반부, 성별과 공간이 철저하게 구분되는 두 수업은 마을의 전통적인 고정관념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동시에 빌리와 발레의 만남을 성사시킨다.



'발레'라는 춤이 가진 젠더와 계급적 의미



체육관에 울려 퍼지는 피아노 반주는 돌아가신 엄마의 연주를 연상시킨다. 우아한 피아노 선율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춤은 자꾸만 빌리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빌리는 할아버지부터 아버지, 그리고 형까지 이어져 내려온 권투 글러브를 쉽사리 놓을 수 없다. 파업이 장기화되며 생계를 위한 돈마저 구하기 어려워진 와중에도, 빌리의 아버지는 빌리에게 권투 수업료인 50센트를 매일 쥐여준다. 왜 하필 ‘권투’여야 할까. 권투 수업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더럼 마을 내 진정한 ‘사내’로 인정받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빌리가 탄광 마을에 사는 노동자 계급에 속한다는 사실도 발레와 빌리의 사이를 가로막는 요인이다. 빌리의 할머니는 어릴 적 발레 유망주였음에도 무용수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는 발레가 전통적으로 귀족과 왕족 등 상류층의 향유 대상으로 여겨져 왔고, 노동 계층은 진입하기 어려운 분야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빌리와 발레 사이에 존재하는 남성성이라는 ‘젠더’, 노동자 ‘계급’이라는 두 가지의 큰 벽은 빌리를 발레와 어울리지 않는 ‘미운 오리 새끼’처럼 보이게 만든다.



발레를 향한 열정과 몰입



빌리는 긴 갈등 끝에, 발레 수업이 이루어지는 체육관 구석으로 걸어 들어간다. 본격적으로 발레 수업을 듣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발레 서적을 끼고 다니며 화장실, 침실 등 공간을 가리지 않고 발레 연습을 지속해 나간다. 윌킨슨 부인이 준 발레 슈즈를 돌아가신 엄마가 써준 편지와 함께 보관해 놓기까지 한다.


발레에 단단히 빠진 빌리는 남자가 발레를 하는 것은 집안의 수치라고 여기며 반대하는 아버지와 형 앞에서도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날 밤까지 체육관에서 발레를 연습하던 빌리는 결국 아버지에게 당당하고 열정적인 춤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증명한다.


Once I get going… then I like,
forget everything.
And… sorta disappear.
Like I feel a change in my whole body.
And I’ve got this fire in my body.
I’m just there. Flyin’ like a bird.
Like electricity.”

(춤을 출 때는 모든 걸 잊게 돼요.

마치 내가 사라지는 느낌이에요.

내 몸 속에 불길이 솟으면서 날아올라요. 마치 새처럼.

온몸에 전기가 통하듯이.)


춤을 출 때 어떤 느낌이냐는 로열발레학교 심사위원의 질문에 빌리는 위와 같이 답한다. 빌리의 솔직한 대답은 심사위원의 마음뿐만 아닌, 관객들의 마음까지 움직이게 만든다. 단 한 번 주어진 인생에서 빌리만큼의 열정을 갖고, 진심으로 사랑하고 몰입하며 꿈꿔 온 무언가가 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빌리의 변화, 그리고 아버지 '재키'의 변화



이 작품의 또 다른 성장의 주인공은 빌리의 아버지 ‘재키’이다. 재키는 체육관에서 빌리의 춤을 장면으로 마주한 뒤, 빌리가 간절히 열망하는 댄서라는 꿈을 지지할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인다. 재키는 곧장 윌킨슨 부인을 찾아가 발레 수업을 지속해 줄 것을 부탁하고, 동료들에게 ‘배신자’라는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파업을 관두고 일터로 돌아간다. 영화 내내 묵묵하고 감정 표현이 서툰 재키는 빌리의 로열발레학교 합격 소식을 듣고 처음으로 활짝 웃는다.


나이가 들고 <빌리 엘리어트>를 다시 볼 때, 점차 빌리보다는 재키의 희생과 변화에 더 초점을 두게 된다. 빌리가 자신의 날개를 펼치기 위해 런던으로 떠나는 날, 재키와 빌리의 형 토니는 일을 하기 위해 탄광으로 내려간다. 11살의 소년이 꿈을 좇으며 성장하는 모습만큼이나 광부로서 몇십 년을 살았을 아버지 재키의 행동이 뭉클하고 극적으로 다가온다. 자신의 전부였을 가부장적 사고방식과 파업으로써 얻는 정의감을 내려놓고, 아들을 위해 일터로 돌아가는 아버지의 모습은 어쩌면 영화 내에서 가장 놀라운 변화일지도 모른다.



빌리의 비상, 발레의 변화



영화의 결말에 이르러 성인이 된 빌리는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 주인공 백조가 되어 무대 위로 힘차게 날아오른다. 빌리가 연기하는 <백조의 호수>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고전 발레와는 사뭇 다르다. 고전 발레의 대표 작품 <백조의 호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는 가녀린 여성 백조들의 섬세한 춤 대신 근육질의 상체를 드러낸 남성 백조들의 힘과 카리스마 넘치는 군무를 무대 전면에 내세운다.


‘남성 백조’라는 신선한 컨셉과 ‘힘과 아름다움, 자유’를 가진 백조를 동경하고 사랑하는 왕자의 이야기는 파격적으로 다가온다. 실제 <빌리 엘리어트>에서 성인이 된 빌리 역할은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 오리지널 캐스트였던 아담 쿠퍼가 맡았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 성장하고 변화한 것은 탄광 노동자의 아들이었던 빌리뿐만 아니다.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 작품의 등장은 발레라는 양식화된 예술 장르 또한 기존의 통념을 해체하고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젠더와 사회적 계층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던 빌리의 춤은 아버지와 마을의 변화를 이끌었다. 그리고 영화에 나오지 않는 또 다른 빌리'들'과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쳐 현실의 변화를 일궈냈다.



영화는 침대 위에서 점프하는 빌리를 비추며 시작된다. 그리고 결말에서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에서 무대 위로 비상한 빌리를 보여준 뒤, 엔딩 크레딧에 영화 초반부의 장면을 다시금 삽입하는 수미상관 구조를 띤다. 이 장면의 반복은 춤추는 빌리의 역동성과 변화의 에너지를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빌리 엘리어트>처럼, 문화 예술은 세상을 향해 던지는 작지만 단단한 ‘돌멩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문화 예술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세상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지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빌리 엘리어트>를 비롯한 수많은 문화 예술은 변화하는 세상을 작품 속에 담아내고,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분야가 변화하고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한다. 문화 예술이 던지는 작지만 단단한 돌멩이가 결국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 낸다고 믿는다. 이것이 내가 <빌리 엘리어트>를, 그리고 문화 예술을 사랑하는 이유다.




원문: 아트인사이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26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