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01. 고전, 예술을 입다. 페어링의 미학

배우 박지훈의 눈빛이 연 고전의 문: 활자를 감각으로 확장하는 페어링

by thelitheaven


책이 어려운 이유는 활자로 읽고 모든 걸 상상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점일 겁니다. 사실 그 점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지만, 초보 독서가들에게는 그 점이 가장 큰 어려움이 되기도 하죠.


그럴 때 가장 익숙하고 거부감 없는 방법은 바로 영상으로 먼저 접해 보는 방법이 아닐까요?

저 역시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저는 최근에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2번 관람했습니다.

전 뭔가를 반복해서 보거나 읽거나 듣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영화관에서 같은 영화를 한 주 간격으로 두 번 보는 건 이례적인 일이었죠.


처음에 영화를 볼 때는 유해진, 유지태 배우를 보러 갔습니다. 영화 마지막쯤부터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단종(박지훈)을 보면서 ‘아, 이 영화 다시 봐야겠구나‘ 싶었습니다.


네, 전 요즘 ‘단종앓이’ 중입니다.


조금 더 솔직히, 박지훈 배우 앓이 중이죠.

저 배우는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건가.

지훈 배우를 몰랐던 지난 시간들이 안타까울 지경이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지훈 배우님의 눈빛으로 느꼈던 단종의 서사가 짙게 다가왔습니다. 그 눈빛에 푹 빠졌고, 제 집요한 성격 덕에 지훈 배우의 지난 몇 년을 쥐잡듯 쫓아가면서 근래 며칠을 영상 보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결국 지훈 배우의 연기 영상을 뒤져 보기를 여러 날, 다시금 처음 느꼈던 영화 속 서사의 근본이 궁금해져서 책을 뒤져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단종에 대한 책이 읽고 싶어졌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중에 저와 같은 ‘앓이’중이신 분들이 계시겠죠?

영화 중에 어떤 장면, 또는 지훈 배우의 어떤 필로그래피에서 전율을 느끼고 저처럼 깊게 파고들어봤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전 책 읽는 걸 즐기는 사람이라, 그 전율이 책으로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제가 고전과 영화, 뮤지컬 등을 페어링 해서 읽으며 느꼈던 경험들을 노하우로 공유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번 글은 이 내용을 다뤄볼까 합니다.




책이 '미장센(Mise-en-Scène)'을 만났을 때




유형 1. 시각적 풍요로움이 보상될 때 :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의복과 배경으로 완성되는 18세기 영국”


오만과 편견은 600여 페이지에 달하는 꽤 두꺼운 장편 소설이지만,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는 소설이라 자부합니다. 처음에는 그저 로맨스 소설이라고 생각했지만 여러 인간 군상의 모습 보면서 다양한 이야기들이 가능한 책이라 생각했습니다.


책을 먼저 읽고 영화로 보았습니다.


그냥 뭐라고 표현할 수 있는 풍부함을 경험했습니다.

상상만 하던 베넷가 집안에서의 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 딸들이 뛰어다니는 발소리 등의 생활소음들이 특유의 영화 속 그 따뜻한 색감으로 연출되며 제 머릿속에 있던 활자가 색채를 입고, 침묵하던 문장들이 생생한 소음들으로 살아나는 정말 환상적인 경험이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완벽한 페이링을 상상하게 하는 와인을 떠올리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오만과 편견을 책과 영화로 보는 건 입에서 살살 녹는 스테이크를 먹으며 완벽한 조화를 이룰 산미의 와인을 떠올리는 일과 같았습니다.


어느 하나가 없어도 충분히 훌륭하지만, 둘이 만났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맛’이 있거든요.


참, 그리고 오만과 편견이 3/11일에 극장 재개봉을 했다하니, 미처 책을 읽지 못하셨다면 영화를 먼저 보고 책에 도전해 보시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20년만의 재개봉이라니 ‘클래스는 영원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유형 2. 원작의 깊이가 압승할 때 : 《액스》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 영상은 담지 못한 텍스트만의 서늘함


소설 액스는 촘촘한 구성을 갖췄다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이유로 반복되는 살인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고, 자칫 루즈해 질 수도 있는 구성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며 텍스트가 주는 그 헐렁함, 그 여백 사이에서 느껴지는 서늘함이 굉장했습니다.


그래서 인지 영화가 그 빈틈을 친절하게 채우려 할수록, 제가 느꼈던 원작의 긴장감은 역설적으로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영상이 갖는 특징상 극적인 장면과 영상미를 추구하는 것은 감독님의 당연한 선택이었겠지만, 원작의 그 투박하고 건조한 맛을 사랑하는 독자에게는 그 친절함이 조금은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좋은 영화였지만 저에게 소설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소설 액스의 매력은 독자의 상상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느슨함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영화에서는 그러한 느슨함을 느끼기는 힘들었습니다.

소설의 느슨함을 매우기 위해 여러 장면들이 추가된 것도 개인적으로는 불호에 가까웠습니다.


만약 소설을 보지않고 영화를 봤다면 오히려 몰입해서 볼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어떤 글은 영상보다 활자가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습니다.




유형 3. 방대한 서사의 밀도를 무대의 전율로 치환할 때 : 《웃는 남자》_빅토르 위고

: 위고의 만연체 사이를 파고든 무대 예술의 힘


웃는 남자는 독서초보였던 제가 독서모임을 시작하자마자 읽게 되었던 첫 고전이었습니다. 사실 이 고전의 산을 넘지 못했다면 전 지금도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이었을 겁니다.


빅토르위고는 좋게 말하면 정말 친절한, 나쁘게 말하면 정말 말이 많은 작가입니다.

사실 방대한 스토리의 이야기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2권의 장편으로 만들어진 이유도 바로 위고의 ‘친절한’ 설명 때문이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파도’에 대해 몇 장에 거쳐 설명하는 부분을 읽으며 이건 과학도서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면 감이 잡히실까요


그래서인지 뮤지컬이 더욱 궁금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무대에서 이런 장면들을 연출해 낼 수 있을까?

《오만과 편견》의 영화 미장센이 시각적인 안락함을 주었다면, 《웃는 남자》의 무대는 텍스트의 범람에 지쳐가던 나의 청각과 시각을 깨우는 동적인 파동이었습니다.


뮤지컬은 영화와 비슷하지만 조금 더 입체적으로 활자를 눈 앞에 펼쳐주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어떤 화려한 카메라 워킹보다 강력했던, 무대 위의 라이브 에너지가 빅토르 위고의 지독한 만연체를 한순간에 전율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원작을 읽은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내 상상속의 모습’과 ‘무대위 연출’의 차이점은 뮤지컬을 보는 내내 저를 자극시키며 끝없이 흥미를 유발시켰습니다.


방대한 서사와 지나친 친절(만연체)이 주는 피로감을 뮤지컬이라는 매체가 동적인 에너지로 돌파해 준 경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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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제가 경험한 세 가지 페어링은 저마다 다른 빛깔로 저를 책의 세계에 붙들어 두었습니다.


때로는 《오만과 편견》처럼 텍스트에 풍성한 색채를 입혀주기도 했고, 《액스》처럼 활자만이 가진 서늘한 공백의 힘을 역설적으로 깨닫게 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웃는 남자》처럼 방대한 서사의 무게를 감각적인 전율로 치환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저는 네 번째 페어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배우 박지훈의 그 깊고 아련했던 눈빛이 저를 이광수의 《단종애사》로 이끌었습니다. 600페이지가 넘는 고전의 무게가 예전만큼 두렵지 않은 이유는, 이미 영상으로 마주한 그 강렬한 미장센이 제 머릿속에서 활자와 만나 어떤 시너지를 낼지 기대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저에게 다른 매체와의 페어링은 단순히 즐거움에 그치지 않습니다.

활자에 색과 생동감을 입히고, 반대로 매체를 통한 강렬한 이미지가 어떤 활자로 표현될지 기대하게 하는 활동입니다.


언제나 그랬든 저는 다시 정갈한 활자의 세계로 돌아갑니다. 그곳에서 만날 새로운 전율을 기대해 봅니다.


여러분은 혹시 ‘단종앓이’의 전율을 무언가와 페어링해서 확장하는 경험을 하고 계시진 않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