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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사김 May 16. 2022

소비자는 확인받고 싶다.

사랑한다면 징표를 보여주세요.

오늘은 조선일보에 게재된 “오은영의 토닥토닥”에서 발췌한 내용으로 글을 시작합니다.

“다친 것도 아닌데, 자꾸 밴드를 붙여달라는 아이들이 있어요. 왜 그런 걸까요?”

 우리 어렸을 때, 배가 아프다고 하면 엄마가 따뜻한 손으로 배를 문질러주며 “엄마 손은 약손”이라고 말해줬던 경험이 있을 거예요. 그 행위에는 노래의 운율에서 느껴지는 다정한 청각적 자극, 배를 부드럽게 문질러 줄 때의 따뜻한 촉각적 자극이 녹아 있어요. 가까이 느끼는 엄마의 냄새 같은 후각적 자극도 있었습니다. 엄마가 배를 문질러주면 아픈 것이 조금 나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마음까지 편안해지면서 스르르 잠이 오기도 하죠.

밴드도 그런 의미가 있어요. 아이가 아프다고 하면 엄마는 “어휴, 여기가 아팠구나. 호~” 하고 밴드를 붙여줍니다. 아이는 이때 엄마의 숨결을 느끼고, 엄마가 붙여준 밴드로 엄마의 관심과 사랑 등을 눈으로 확인해요. 아이가 자꾸만 밴드를 붙여달라는 이유는 엄마의 긍정적인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싶기 때문이에요. 말로만이 아니라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겁니다.

 저도 어렸을 때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 '머리가 아프면 머리에', '배가 아프면 배에' 밴드를 붙여달라고 했다더군요. 밴드는 “기능상”으로는 전혀 작동을 하지 않지만, “정서적”으로는 저를 안정시켜주는 가장 확실하게 작용하는 장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일종의 플라시보 효과라 할 수 있는데, 제품에도 이와 같은 효과를 적용한 사례가 많습니다. 실제 기능상의 작동과는 상관없을지라도 특정 표식이나 장치를 통해 소비자는 제품의 기능과 효익에 대해 안심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UV살균기, 출처=아마존 닷컴]

식당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컵 살균기는 UV램프나 LED를 통해 위생을 관리합니다. UV(Ultra Violet), 즉 자외선은 짧은 파장을 이용해 세균, 바이러스의 DNA를 파괴하여 살균 소독의 효과를 만듭니다. 일정 시간을 살균시간을 준수하면, 실제로 세균의 99.9% 이상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에 코로나 사태 이후 칫솔 살균기, 공기청정기 등으로 급속도로 확산되었습니다.

그런데, 자외선은 눈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실제 살균이 되고 있는지, 아닌지에 대해 소비자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그래서 떠올린 방법이 UV램프 주변부에 블루라이트를 심어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파란 불빛은 살균과 전혀 관계없는 표시일 뿐이지만 실제로 우리는 파란불이 켜지고, 꺼지는 것을 보며 살균이 되고 있구나, 멈춰졌구나라고 판단하게 됩니다.

더구나 UV 선에 직접 노출되는 부분만 살균이 되는데, 물건이 겹쳐있다면 살균효과는 거의 없고 물기가 있을 경우에도 효과는 상당히 낮아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UV살균기는 효과가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일정 시간 제대로 노출할 경우 주요 세균은 없어지며, 대부분 고온 열풍 살균방식을 동시에 적용하기 때문에 빛이 닿지 않는 부분에 대한 살균 효과에 대해서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다양한 UV살균기 사례, 출처: 아마존닷컴]

 위와 같은 징표, 장치가 꼭 눈에 보이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동차산업의 무게중심이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이동하면서 엔진 특유의 소음이 드라마틱하게 줄어들게 됩니다. 하지만 스포츠카나 할리데이비슨과 같은 특유의 엔진음을 즐기는 소비자에겐 전기차의 무소음은 오히려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갖게 됩니다.


제조사에서는 소비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정체성을 보여주는 장치로 별도의 사운드를 녹음하여 내장하였습니다. 소비자들은 우주선에서 날법한 특유의 소리를 통해 자신의 애마들이 살아 움직임을 느끼게 됩니다.

[포르쉐 전기차 타이칸, 출처=포르쉐]

비슷하게 전기밥솥의 ‘췩췩췩’ 소리도 녹음된 음향으로서 “밥이 잘 되고 있구나”라는 심리적인 안정을 주는 장치입니다.


식품에도 이러한 장치들을 무수히 볼 수 있습니다. 알로에는 과육 그 자체로는 향과 맛이 없습니다. 알로에 주스를 마실 때 느껴지는 특유의 상큼한 향은 사실 합성향료(청포도 향)의 것인데, 소비자가 오감으로 제품을 느끼게끔 만든 장치입니다.

대량 생산되는 식품에서 원재료 자체의 향을 인지시킬 정도가 되려면 높은 원가와 까다로운 가공방법이 필요하기 때문에 손쉬운 합성, 인공 착향료를 통해 제품의 맛과 만족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요구르트에는 요구르트 향, 비타민 음료에는 드링크 향, 두유의 땅콩 향이 사용되는 것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위와 같은 확인 장치에 대한 평가는 엇갈립니다. 실제 작동하지 않는 것을 작동하는 것처럼 속이는 ‘소비자 기만’이라는 주장과 제품 오감 만족을 통한 ‘경험의 극대화’라는 측면이 맞섭니다.  

개인적으로는 ‘제품 만족의 극대화’ 측면에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생활습관보다 빠른 시대에, 소비자의 익숙한 경험과 만족을 충족시키기 위한 필요한 장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거짓 정보나 사실과는 관련 없는 내용으로 고객을 속이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법적 테두리 안에서 소비자가 만족할 만한 다양한 노력이 이루어지길 기대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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