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이 직거래를 하려면?
어느 스타트업 대표님을 만났습니다. 식품 R&D영역에서 오랫동안 성과를 내신 분으로, 우연찮은 기회에 직접 제품까지 출시를 하게 되었습니다. 맛도 있는데 영양, 가격경쟁력까지 갖추었기 때문에 대형유통업체에 제안만 한다면 입점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MD연락처를 수소문해도 알 방법도 없고, 어떻게 제안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이때 쿠팡 로켓배송을 하고 있다는 업체에서 벤더거래 제안이 왔습니다. 본인들은 쿠팡에서 연간 00억대 거래 중인 업체로 소개했습니다. 거래방식에 대해 설명하면서 제품 샘플과 일정 수수료를 요구하였습니다. 업체는 간단한 상품 소개와 함께 견적서를 전달하였습니다. 몇 주가 지나고 담당 BM은 제품 표기사항에 문제가 있다며, 패키지 수정을 요청한다고 했습니다. 기존 제품을 재포장할 수 없어 새로 제품을 생산해야 했습니다. 자금에 부담이 되었으나, 입점 후 매출을 기대하며 재생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대표님은 이런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내가 직접 MD와 소통했더라면 중간수수료를 아끼면서 이익을 더 챙길 수 있었을 텐데.. 직거래를 했더라면 유통사와 제조사 상호 윈윈(Win-win)할 수 있었을 텐데.."
결국 업체는 논의 중이던 벤더를 건너뛰고 상품 담당자에게 직접 연락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대표님이 처음부터 이렇게 마음을 먹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첫 번째로 벤더업체가 하는 역할이 너무나도 단순해 보였습니다. 벤더업체가 정말로 쿠팡과 거래 중인지 확인하기 위해 동석한 MD미팅에서 벤더의 역할은 단순 상품소개를 하는 수준이라 수수료에 합당한 서비스를 받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또한 주변에서 하는 이야기도 신경 쓰였습니다.
“앞으로 신상품이 계속 출시될 텐데 시작을 벤더 통해서 하게 하면 목줄을 잡혀 영영 직거래 기회는 없는 것 아니냐”, “다른 벤더에서도 계속 연락이 오는데 어디 곳이 실력 있는지 비교해 보고 결정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등 일견 이해 가는 조언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소비자, 제조사, 유통업체 등 모든 입장에서 직거래를 하는 것이 옳은 선택으로 보입니다. 유통단계가 많아지면 가격이 올라갑니다. 올라간 가격은 최종 소비자가 부담해야 합니다. 제품이 비싸다고 소비자는 아우성칩니다. 생산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이익은 땀을 흘리지도 않은 벤더가 챙기게 됩니다. 그럼에도 왜 중간벤더가 여전히 존재할까요?
https://www.nocutnews.co.kr/news/4664831
직거래의 장점은 명확합니다. 중간 수수료 절감을 통해 제조사 유통사 모두 이익률을 늘릴 수 있습니다.
다만, 대형 유통업체 입장에서는 중간벤더와 거래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사유가 있습니다.
MD는 하루에도 수십 건의 상품제안을 받게 되는데, 국내외의 모든 제안을 살펴보기엔 물리적으로 시간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메일을 확인하지도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제안 상품의 대부분이 기준 미달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벤더는 1차 게이트웨이 역할을 합니다. 유통사 품질, 운영기준에 맞는 상품을 자체적으로 선별하여, 기준치에 해당하는 상품만 MD에게 제안합니다. 품평에 올릴만한 어느 정도 걸러진 상품만 검토하면 되니 업무가 줄어듭니다. MD가 벤더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입니다.
제가 신입시절 만난 업체 중에는 상품제안과 더불어 업계 트렌드, 경쟁사에 대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벤더가 있었습니다. 상품에 대한 안목이 부족한 제게 관점을 알려주기도 하고, 선임 MD가 알려주지 못하는 현실적인 정보를 주기도 했습니다. 알고 보니 벤더업체의 대표는 대형유통업체에서 MD팀장을 하시던 분이었습니다. 업체가 MD의 관점에서 선별하여 제안하니 입점 확률이 당연히 높고, 내부 품평에 통과할 수 있도록 각종 자료와 근거를 제공해 주니 함께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중소기업이 대형유통업체에 입점하는 확실한 경우는 다음 3가지입니다.
1. 시장에서 소위 ‘뜨는 브랜드’ 일 경우
2. 브랜드는 덜 알려졌더라도 차별화된 컨셉 또는 디자인으로 차별화된 제품일 경우
3. 컨셉이 차별화되거나 트렌디하지 않더라도 제조시설을 보유하여 원가경쟁력이 있는 경우
위 세 가지 경우에 해당하는 업체라면, 유통업체에서 먼저 연락하여 입점 제안을 할 것입니다. 현실은, 위 세 가지에 딱 부합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점입니다. 브랜드력, 컨셉, 원가경쟁력이 비슷비슷한 레벨의 업체가 입점신청을 한다고 했을 때, MD와 소통이 잘되고 신뢰관계에 있는 기존 거래선의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벤더를 통한 입점이 직거래를 통한 입점보다 수월한 이유입니다.
제품을 축구선수에 비유를 하자면, 메시급의 퍼포먼스를 보이는 선수라면 감독이 어떻게든 팀에 데려오려고 노력하겠으나, 비슷비슷한 급의 선수 중에서는 감독의 의도와 전술을 잘 이해하는 선수가 팀에 선발된다고나 할까요?
“한국말이라 알아듣긴 했으나, 용어가 낯설어 미팅내용이 잘 이해가지 않았다."
"프로세스를 설명 듣긴 했는데, 상대가 바빠 보여 질문하기 눈치 보였다."
“앞으로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유통 MD와 첫 미팅하고 난 후 어느 대표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운영을 위한 세부내용을 업체에 설명하는 것은 MD/AMD의 당연한 역할입니다. 그러나 실제상황에서는 매뉴얼을 읽어보고 알아서 운영프로세스를 익혀오라고 하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친절한 MD는 찾아보기 어렵고, 시간을 할애하여 설명해주지도 않습니다.
벤더는 유통업체와 제조사 간 입장의 괴리를 중간에서 현실적으로 정리해 주며, 상호 소통을 통해 제품이 유통업체에서 잘 판매되도록 운영 대행을 합니다.
일반적으로는 직거래가 벤더거래에 비해 높은 이익률 확보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동일상품을 벤더가 운영했을 때 오히려 수수료가 낮아지고 이익액이 커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거래규모가 큰 벤더업체의 경우 수수료협상에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지 못한 소규모 직거래보다 유리합니다. 또한 행사구좌의 선정에 있어서 우선고려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노출 및 매출증가의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직거래보다 벤더업체의 거래조건이 좋은 경우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추가로 따져보아야 할 것은 직거래를 위한 인건비, 관리비, 시간 등입니다. 특히 제조 R&D기반의 업체의 경우 익숙지 않은 마케팅, 영업 업무를 직접 할 때에 대한 어려움을 겪곤 합니다. 브랜딩, 바이럴, 체험단 등 챙길 것도 많고 유통사 요청에 따라 이것저것 하다 보면 이익이 남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매출 규모를 달성하기 전까지 영업, 마케팅 업무를 벤더에 아웃소싱하는 것도 선택할 만한 전략입니다.
해외 유명브랜드도 한국에 진출할 때에는 곧바로 지사를 설립하지 않습니다. 본인의 브랜드를 로컬에 잘 정착시킬만한 대리인(대행사)과 협업합니다. 그리고 목표한 규모를 달성한 후 또는 직접 운영이 가능한 상황이라고 판단될 때 판권을 거둬들이고 지사를 통해 스스로 운영합니다.
유통거래도 비슷합니다. 벤더를 통해 입점한 후 일정규모 이상의 매출을 보여주고, 운영 노하우를 체득한 후 스스로 운영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지속적으로 경쟁력 있는 신상품 제안이 가능한지?
-단품이 아닌 시리즈 또는 상품군 단위의 SKU를 운영할 역량이 되는지?
-유통사의 정책과 요구사항을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지?
최소 한 달에 2~3회 이상 소통할 만한 신상품, 프로모션 등의 이슈 거리가 있다면 MD로서도 충분히 직거래를 검토해 볼 만합니다.
다만 벤더거래에서 직거래 전환 시 계약서/약정서를 통해 영업권등의 분쟁의 소지를 사전에 차단하여 문제를 만들지 않아야 합니다. 분쟁에 있는 업체를 환영할 MD는 없습니다.
변호사, 법무사, 변리사 등 각 서비스의 전문가를 이용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전문 지식과 경험을 통한 확실한 성과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변호사라고 해서 다 같은 변호사도 아니고 내 사건에 적합한 변호사를 찾는 것이 중요하듯, 내 상품의 방향성을 잘 이해하고 장기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벤더를 알아보는 것도 제조사의 능력입니다.
https://news.koreadaily.com/2019/04/07/society/generalsociety/7129813.html
온라인 커머스 플랫폼의 확장은 제조사가 직거래하기보다 수월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정보는 오픈되어 있고, 상세페이지 제작, 온라인 마케팅을 대행해 주는 업체는 차고 넘칩니다. 갈수록 벤더의 설 자리는 줄어들고 직거래가 유리한 환경입니다. 처음만 어렵지 계속하다 보면 못할 일도 아닙니다. 결국 직거래와 벤더거래 모두 상품을 브랜드를 키우고 매출을 올리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일 뿐 정답은 없습니다.
벤더거래/직거래 모두 장단점이 존재합니다. 수수료와 기회비용, 장단기 전략방향을 고려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처음부터 스스로 개척을 할 수도 있습니다.
마중물로서 벤더를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영업은 벤더사에 맡기고 제품개발과 생산에 집중할 수도 있습니다.
각자 처한 상황과 회사의 방향성에 따라 적절하게 선택하셨으면 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