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예체능 계열에서 학교폭력 '미투'가 끊이질 않는다. 대부분의 사연은 '특별'하거나, '영향력' 있는 사람이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갑질, 왕따를 주도했다는 얘기다. 나는 예전에 영화를 하며 꽤 다양한 사람을 만나봤다. 다른 분야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영화인은 예술을 한다는 '자의식'이 꽤 강한 편이다. 그런 강한 '자의식'은 종종 똘기로 변한다. 그래서 왠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똘끼 있는 사람을 많이 보거나 듣게 된다.
똘끼는 꼭 나쁜 쪽만 있는 건 아니다. 긍정적인 똘끼(?)로 주변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는 좋은 쪽도 있다. 그런데 나쁜 쪽의 경우가 기억에 남는 건 왜일까. 좋은 똘끼보다는 나쁜 똘기에 대한 기억이 스멀스멀 떠오르곤 한다. 갈굼부터 시작해서 상습적인 폭언, 무소의 뿔 같은 사람, 군대식 문화에 아직도 남아있는 사람, 주먹다짐까지 사례는 아주 다양하다.
물론 내가 직접 겪어본 건 그중에서 아주 소수의 사례, 빙산의 일각이었다. 다행히(?) 내가 경험했던 현장에선 갈굼이나 폭언까진 간혹 있었어도 폭행이나 주먹다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문은 많았다. 누가 그랬다더라. 누가 때렸다더라. 누가 엎드려뻗쳐를 시켰다더라. 누가 20층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갈구고 1층으로 내려오자 다시 20층 버튼을 누르고 올라가면서 갈궜다더라. (정말 오해할까 봐 하는 말이지만, 좋은 사람이 더 많다)
그런 사람에게는 이상하리만큼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나는 '예술'을 한다는 자의식이 강한 사람(물론 모두가 그렇진 않다)이었다. 나는 예술을 하니까, 나는 특별해, 나는 남들과는 달라. 그래, 뭐 이 정도는 괜찮은 자부심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는 건 좋은 일이니까. 나도 그런 생각을 하긴 했으니까.
문제는 이런 자의식이 과해, 남한테까지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마음을 짐작컨대 '예술을 하는데, 이 정도는 당연한 거 아니야?'같은 마음이었을 거로 생각한다. 세상에 당연한 게 있을까? 물론 일에 있어서 '당연함'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당연함'은, 내가 맡은 책임과 업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을 하는 것, 딱 그 정도의 '당연함'이다.
그 경계를 넘어선 '당연함'을 남한테 강요하는 순간 문제가 된다. '당연함'을 무기 삼아 남을 갈구고, 폭언한다. 이 '당연함'은 누구에게도 있어서는 안 되는 거 아닐까? 모든 문제는 거기서 시작되는 거 아닐까?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학창 시절에 매를 맞던 일이 당연했던 게 그렇게 오래된 일은 아니다.
그때는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때리는 선생님이 많았다. 리코더라던가, 야구 배트라던가. 단소라던가. 빗자루라던가. 정말 끔찍이 학생을 아꼈던(?) 한 선생님은 자신이 매질할 나무를 정성스레 손질하고 코팅해서 만들어왔다. 그리고 자신이 이걸 주말에 자기 시간을 뺏겨가며 얼마나 열심히 만들었는지, 학생들을 생각하며 만들었노라고 주장했다. 그들의 생각도 당연함에서 시작됐다. 나는 선생이니까 당연히 너를 체벌하고 바로잡을 권리가 있어. 언어폭력을 포함한 가정 내에서의 폭력도 당연함에서 시작된다. 나는 엄마니까, 나는 아빠니까 당연히 이 정도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이야.
누군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예술하는 사람은 원래 다 그래요?"
나도 온전히 다 겪어본 건 아니고, 성급한 일반화를 하고 싶은 것도 아니지만 선뜻 '아니'라고 대답하지 못했다. 그냥 어물쩡 어물쩡 '뭐 그런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고'정도로 대답했다. 언제쯤 '당연히 아니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영화를 비롯해 예체능인이라면, 제발 당신의 특별함은, 겉으로 보이는 말과 행동이 아니라 실력과 작품으로 보여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