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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iday Mar 13. 2022

자가격리... 선물 같은 시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나의 동지들.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새벽 5시.

오라는 데로 오고 가라는 데로 가고, 보여달라는 거 다 보여주고  하라는 데로 다 하면서 무거운 가방을

끌고 입국장을 빠져나오니 겨울인데도 온몸이 땀에 젖어 버렸다.


안내해 주시는 분의 허락을 받아 공항 내의 편의점에 들러 눈에 띄는 데로 대충 먹을걸 주워 담았다.

컵라면, 컵밥, 삼각김밥, 햇반, 김치, 커피, 물...

영종도 내의 자가격리 숙소로 가기 위해 공항 밖으로 나오니 아직도 어두운 새벽,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서둘러 외투를 꺼내 입었다. 지정받은 방역택시를 타고 숙소로 들어와서 짐을 놓고 침대에 누우니

방이 눈에 들어온다. 앞으로 일주일 지내야 할 숙소, 창문을 통해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게 보인다.

공항뷰 숙소는 처음이다.

잠깐 쉬고 오픈 시간에 맞춰 지역 보건소로 출발, 9시 10분 전에 도착했는데 줄이 길다.

1차 pcr 테스트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니 긴장이 풀어지며 그제야 배고픔도 함께 밀려온다.


밥 먹어야지...

작은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참치마요 삼각김밥의 껍질을 벗겨서 한입 베어 물었다.

빠지직...

입안에서 마른김이 부서지며 고소한 맛과 참치마요의 감칠맛, 차갑지만 고슬고슬한 밥맛이 느껴진다.

뜨거운 컵라면 면발을 혀로 후려치면서 국물을 원샷, 첫끼를 가뿐하게 끝냈다.

준비하고 먹고 치우는데 10분도 채 안 걸린다. 아 ~ 이렇게 편하고 좋을 수가...

3년 만에 방문한 한국에서의 첫끼가 삼각김밥에 컵라면이라고 하니까, 오랜만에 한국에 갔는데

다양한 배달음식이나 맛있는 포장음식을 먹지 웬 삼각김밥이냐고 미국에서 전화한 남편이 한마디 한다.

모르는 소리... 살림하는 주부들 나의 동지들은 내 맘을 알거라 생각한다.



코비드 19 이 시작되면서 여러 가지 생소한 용어들이 갑자기 일상용어처럼 다가왔다.

팬데믹, 확진자, 언택트, 사회적 거리두기, 비말 감염, 밀접접촉자 등등...

그중에서도 가장 우리의 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게 '자가격리'라고 생각한다.

코비드 19 이 시작되던 초기에는 근거 있는 두려움과 근거 없는 두려움이 뒤섞이고

거기에 이 생소한 현실 속에서 어떤 판단도 자신 있게 할 수 없는 두려움까지 더해져서 코로나에

관련된 것은  그저 공포로만 다가왔다. 일상생활을 하다가 확진자나 밀적 접촉자로 확인되면

일상과 '격리' 된 생활을 해야 하니 '격리'라는 용어 또한 잠재된 두려움을 품고 있는 무서운 용어가 되었다.

처음 자가격리를 시작할 때에는 실체를 알 수 없는 대상에 대한 두려움에 비장한 각오를 다지며

2주간의 자가격리를 시작하고 서로 격려하며 지냈지만 격리 대상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격리도 하나의

일상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자가격리를 대하는 사람들의 자세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슬기로운 자가격리에 대한 조언과 경험을 서로 공유하며 막연한 두려움을 조금씩 희석시켜가면서

격리생활을 받아들였고 또 이 격리 생활을 받아들이는 자세나 방법도 연령대나 남녀 성별, 직업별로도

많은 차이를 보였다.

많은 주부들은 자가격리 대상이 되었을 때 이런저런 현실적인 걱정에 마음이 편치 않은 사람들도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2주? 껌이지... 뭐가 걱정이야 한 달도 할 수 있어' 라며 환영하는 주부들도 많이 있었다.

격리가 시작되고 제한된 공간에 갇혀서 자가격리를 시작하는 주부들의 심리상태는, 뭐랄까...

두렵지만 기대되는...

슬프지만 설레는...

걱정되지만 홀가분한

조금은 좋지만... 죄책감도 살짝 드는...

이런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뒤섞여서 조금 혼란스럽기도 했다.

눈뜨면 이어지는 끝없는 일상에서 잠시 놓여나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누구도 챙겨주지 않아도 되는

진공상태 같은 공간에 툭 떨어진 느낌. 자유롭지만 그 안에서의 자유로움이 마냥 편안하지만은 않은 건 

그동안 주부로서 학습된 많은 습관과 버릇이 아직도 몸과 마음에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서 그 혼란스러운 격리생활도 나름 익숙해지고 진공상태의 공간에서

붕붕 떠다니던 마음이 조금씩 내려앉으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오롯이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고

그 주어진 시간이 더없이 소중해진다.

언제 또 이렇게 철저하게 혼자 지내는 시간을 갖게 될까.

언제 또 이렇게 아무 때나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시간을 갖게 될까

언제 또 이렇게 내입에 들어가는 음식에만 신경 쓰며 지내는 시간을 갖게 될까...

하루하루 일분일초가 소중하다 보니 2주의 격리 생활이 그다지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 한편 저 아래, 애써서 외면하고 있는 저 구석에는 언제 엄마가 일상으로 돌아오나

언제 아내가 일상으로 돌아올까 목 빼놓고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이 주머니 속 뾰족한 송곳처럼 예고 없이 

쿡쿡 찔러대며  틈틈이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코로나 확진을 받고 화장실이 딸린 안방에서 격리생활을 했던 나의 친구는, 매번 잠만 자고 나오기만 했던 그 안방을 격리생활을 하면서 찬찬이 둘러보니 평범했던 공간이 새롭게 보이면서 그동안 안보였던 공간이 보이고, 격리 기간 동안 자신을 보듬어주었던 그 공간에 더 애착이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밥 먹고 유튜브 보고, 밥 먹고 드라마 보고, 밥 먹고 책 읽고 하는 나름의 평화로운 루틴을 즐기다 보니

이 또한 내려놓기 아쉬운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한다.

방역지침이 다소 간소화되고 정리되어가는 거의 끝무렵에 한국을 방문한 나는 방역 초기보다는 비교적 쉬운 격리생활을 경험했다. 기간도 1주일로 줄어들었고 자가격리 앱도 폐지가 돼서 매일 체온과 건강상태를 보고해야 하는 의무사항도 없는 격리생활을 했다.

처음 자가격리를 준비하면서는 그 1주일 동안에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시작만 하고 미루어 놓았던 글들도 마무리하고, 또 시작만 하고 마무리 못한 인스타툰도 마무리하고

한국에서 수강신청을 해놓은  클래스를 위한 밑그림 작업도 충분히 해놓고... 등등

하지만 나의 그 계획은 첫날부터 어그러졌다. 우선 내 나이와 체력을 계산에 넣지 않았던 것.

10시간 넘는 비행의 여독이 예전처럼 쉽사리 풀리질 않아서인지 아니면 코로나 시국의 복잡했던 입국절차를 끝내고 긴장이 풀어져서 인지 시도 때도 없이 잠이 쏟아지고, 눈을 뜨고 있어도 몸을 움직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뭐 어때...

누가 뭐라는 사람이 없는데...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하다 보니 2~3일이 후딱 지나가 버린다.

정신 차리고 계획했던 일들을 마무리하기 위해 노트북도 켜놓고, 스케치북도 펼쳐 놓았지만 둥둥 떠다니는 

마음은 또 쉽게 잡히지 않는다. 일이 손에 안 잡힌다는 게 이런 걸까...

늘 시간에 쫓겨 틈틈이 작업을 하고, 해야 할 일들을 늘 줄 세워서 치러내면서 생활하다가 막상 온전한 시간을 다 얻었는데도 그 시간들을 감당 못하고 흘려보내고 있는 자신을 보니 마음이 착잡하다.

하지만 뭐 어때...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되지... 늘 그래 왔던 것처럼...

꼭 마무리해야겠다는 강박에서도 자유로워지고 격리 생활을 즐기기 위해  글을 쓰다가 자기도 하고 

그림 그리다가 자기도 하며 지내다 보니까 격리 마지막 날이 되었다.

이런 상태라면 일주일 더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우리 주부들 마음이 이랬구나...

자가격리가 끝나면 거의 3년 만에 엄마 얼굴을 보러 가는 거라 친정 집으로 가는 마음도 바쁘긴 하지만

또 한편 철저하게 홀로 지냈던 시간이 끝나는 것에 대한 아쉬운 마음도 함께 올라왔다.

외부와 차단된 1~2주간의 격리생활은 일상에 지친 주부들 에게는 마치 선물 같은 시간이다.



3년이 다 되어가는 코로나 시국 동안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가족들은 전에 없이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그에 따라 주부들의 가사노동의 양도 함께 많아지다 보니 자가격리를 대하는 마음도 이렇게 

남다른 게 아닌가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슬기로운 자가격리 경험담들이 많이 올라온다.

2주의 자가격리 기간에 뭘 할까요? 하는 물음에

넷플릭스 드라마 정주행, 하고싶었던 게임, 홈트, 밀린 영화 몰아보기, 제목만 읽고 덮어두었던 책들 끝내기

그리고 배달 맛집에 대한 정보교환도 치열했다.

나는 계획했던 만큼 슬기로운 자가격리를 하지못했지만,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먹고 싶을 때 먹으면서 지냈던 그 일주일이 길고 힘들었던 코로나 시국이 내게 준 선물 같은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동안 충분히 힘들게 했고 선물도 고맙게 받았으니 이제 그만 좀 헤어져도 되는데 그렇지 않은가 보다.

은근슬쩍 눌러앉을 모양이다.

전문가들도 그냥 살살 달래면서 함께 살아야 할거 같다고 한다.

참 벅찬 손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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