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 편히 아프기도 힘든...
아침에 침대에서 내려오는데 갑자기 허리가 시큰... 동작이 얼어버린다.
그야말로 허리를 또 '삐끗' 했다.
이미 이와 비슷한 전쟁을 많이 치러본 내 몸은 자동 경계태세를 시작하며 온몸이 긴장을 한다.
'아... 또 시작인가?' 짜증이 밀려옴과 동시에 이번 공격은 얼마나 클지 가늠해보며
조금씩 몸을 움직여 발을 떼어본다. 걸을 때마다 허리는 시큰거리고 고개 들기도 힘들다.
'이번엔 좀 큰 게 왔군... 한 일주일은 가겠네...' 자동 견적이 나온다.
오래전, 어린 딸들의 육아가 한창 치열할 때, 아주 좋지 않은 자세로 딸아이를 들어 올리다가
허리를 한번 다친 이후로 이 느닷없는 요통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오곤 한다.
한의사 말이, 우리 근육은 기억력이 아주 좋아서 한번 놀랜 근육은 비슷한 강도의
자극이 오면 어김없이 그 부위가 경직이 되기 때문에 같은 부위의 통증이 반복되는 것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한번 심한 요통을 경험한 이후로, 마당에서 삽질을 하다가...
좀 무거운 걸 들다가... 일상적인 집안일 중에... 좋지 않은 자세를 잡다가...
이 요통은 수시로 나를 공격하며 일상에서의 나를 항상 긴장시킨다.
처음 요통이 찾아왔을 때는 걸음을 떼지 못할 정도로 심해서 곧바로 한의원으로 향했다.
평소 겁도 많고, 주사나 침에 공포심이 있어 웬만하면 그냥 참고 견디며 살고 있었지만
그때는 고통이 너무 심해서 다른 선택을 할 여유가 없이 한의원에 가서 첨으로 온몸에 침을 꽂았었다.
인자한 성품만큼 침술도 인자하신 그 한의사분은 정말 거의 고통 없이 침을 놓아주셨고 효과도 좋아서
하루 이틀 지나서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 호전되었다.
하지만 그분은 그 치료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하시고 다른 도시로 이사를 하셔서 더 이상 치료를 받지 못해
그 이후부터 이곳저곳 여러 한의원을 전전하게 되었다.
첫 한의원 경험이 좋았던 덕분에 침을 맞는 것에 조금 용기가 생겨서 허리가 아플 때마다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았는데 불행히도 나의 마지막 한의원 덕분에 더 이상 침을 못 맞게 되었다.
그동안 아플 때마다 방문했던 여러 한의원에서는 나의 첫 번째 한의원만큼의 드라마틱한 효과를 경험하지
못했기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매번 다른 한의원을 찾아다녔는데 마지막 한의원에서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내가 그렇게도 두려워했던, '아픈 침'을 맞게 되었다.
소심한 성격이라, 아파도 웬만하면 참고 표현하지 않는데, 다리 부분의 '침' 이 너무 아파서 '으악' 소리를
지르며 '선생님, 너~무 아파요!'라고 소리를 지르니, 그 한의사는 '그 부분이 뭉쳤기 때문에 더 아픈 겁니다, 풀어지느라고 아픈 거니 좀 참으세요!'라고 하며 치료를 끝내고 일주일 후에 한번 더 오라고 했다.
하지만 그 치료가 나의 마지막 한의원 방문이 되었고, 그 이후로 아무리 허리가 아파도 그 '침' 만큼 아프지는
않기에 그냥 버티면서 자연히 좋아지기를 바라며 시간과 싸우기만 했다.
매번 요통이 재발할 때마다 이상한 걸음으로 집안을 걸어 다니는 나를 보며 남편은 침을 맞으라 잔소리를
하고 주변 지인들도 아프지 않게 침 잘 놓는 좋은 한의원이 있으니 한번 방문해 보라고 여기저기 주소를 보내주기도 했지만, 나는 온갖 핑계를 다 대고 도망 다니면서 침 맞기를 거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약도 없는 이 '요통'에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그다지 많지 않다.
허리 부분을 매일 새로운 파스로 도배를 하고 -이 파스가 도움이 되는지 안되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단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보니 할 수 있는 건 뭐든 해보자는 심정으로 매번 파스를 사용한다.
복대처럼 생긴 허리 벨트를 단단하게 쪼여서 허리에 힘을 좀 보탠다 - 이 허리 벨트는 사실 도움이
많이 된다. 이 허리 통증이 뼈에 이상이 있는 건지, 근육에 있는 건지 아님 두 가지 모두에 있는 건지 모르지만, 허리가 시큰거릴 때 느낌은 마치 뼈가 서로 어긋나서 잘 맞지 않을 때마다 생기는 통증 같은
느낌이 드는데, 벨트를 하면 근육을 단단히 조여 주니, 걸을 때나 움직일 때 고통이 훨씬 줄고 편하다.
아무튼 요통이 시작되고 나면 일상생활이 엉망이 된다.
매일 줄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잡다한 집안일들을 살피지 못하는 건 물론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다.
앉아있어도, 누워도, 어디에 기대고 앉아도 아프고 서있기도 힘들고 걷기도 힘들다.
몸이 힘들다 보니 하루 종일 편한 잠옷으로 버티고, 얇은 잠옷 탓에 한기가 들면 쓰고 벗기 편한
담요를 뒤집어쓰고, 당연히 제대로 씻지도 못하니 몰골이 말이 아니다.
하루 종일 실체 없는 적에게 공격당하는 기분이다.
통증과 한편이 돼서 나를 공격하는 것들은 짜증, 스트레스, 식욕부진, 소화불량, 불면증.... 등등
집안일은 물론, 개인적으로 해야 할 일들도 손도 못 대고 있다.
기다리는 사람은 없지만 쓰던 글도 마무리해야 하고,
역시 기다리는 사람은 없지만 시작한 웹툰도 업로드해야 하고,
그리다 만 그림도 마무리해야 하고, 새로운 그림도 시작해야 하고...
따지고 보니 모두 나와의 계약이고, 내가 나를 들볶고 있는 일들이다... 조금은 허무하네.
요통에 특효약은 없지만, 힘들다고 하루 종일 누워있는 것보다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조금씩
움직이는 게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도움이 된다 해서 간단한 집안일도 해가며 살 살 움직이고 있다.
험한 몰골로 벽을 짚어가며 집안을 돌아다니는 나를 보는 게 가족들은 부담스럽고 힘든지
자꾸 앉아서 쉬라고 하는데도 무시하고 좀비처럼 조금씩 조금씩 돌아다닌다.
요통에 대해선 나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남편이 며칠을 나를 따라다니며 걱정을 하더니,
급기야 자기도 허리가 아프다며 벨트를 찾는다.
남편은 재택근무 중이라 하루 종일 소파와 한 몸이 돼서 미팅을 하고 일을 하느라 노트북을 끌어안고 산다.
저런 생활을 계속하고 있으니 요통이 와도 놀랄 일도 아니지만 왜 하필, 왜 지금...
남편은 내가 감기 걸리면 자기도 아프고, 내가 소화가 안되면 자기도 소화가 안 되는 사람이다.
왜 그런지는 특별히 시간 내서 생각해 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하품처럼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정신적으로
전염이 되어서 그런 건 아닐까?
암튼, 남편도 아프다고 하니 골치가 더 아파진다.
많지도 않은 식구 중에 둘이 복대를 하고 누워있을 수는 없지... 한 사람이라도 일어나야지.
가벼운 운동도 통증을 완화시킨다고 해서 틈나는 대로 몸을 풀어주기로 한다.
둘이 몸져누울 수 없으니 나라도 살기 위해 뭐라도 하기로 했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 이럴까?
살기 위해 만세를 하고, 살기 위해 몸을 뒤틀고, 팔다리를 펼 수 있는 만큼 앞뒤 좌우로 늘려가며
틈틈이 스트레치를 한다.
아직 내 손길이 필요한 가족들이 곁에 있고,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들이 여전히 있다 보니
마음 편하게 아픈 것도 쉽지 않다. 하지만 이 또한 내가 하는 선택...
그냥 잠시 손을 놓는다고 뭔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도 알지만... 그 '놓는 것' 이 아직도 쉽지가 않다.
지금 연습 중이니 조만간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길...
그리고, 매번 나 아플 때마다 함께 아픈 그도 그의 아픔에서 좀 더 자유로워 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