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코를 뚫고 왔다.
내 위산도 속을 뚫었다.
오늘은 쿨병 걸리고 싶은 옛날사람이다.
아침 일찍 친구와 약속이 있다는 딸아이를 내보내고부터 계속 속이 찌르르 찌르르 싸아 해지기 시작했다.
친구를 만나서 뭘 할지 알지만, '그걸' 하지 않았기를 바라는 희미한 한줄기 희망을 잡고
그 찌르르한 가슴을 살살 달래며 딸아이를 기다렸다.
하지만 나의 그 희미한 희망을 여지없이 뭉개고 딸아이는 코에 두 개의 구멍을 뚫고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보니 내 가슴속에도 구멍이 뚫린 듯하다.
내 속에서는 또 두 목소리가 서로 싸움이 났다.
- 별거 아니야... 그저 흔한 피어싱인데 뭐...' / 그래도 안 했으면 좋겠어.
- 그게 뭐라고...우리 애만 뚫은 것도 아닌데 밖에 나가봐 다들 뚫었어 /하지만 안 뚫은 애들이 더 많은데...
- 얼굴에는 제발 하지 말았으면... / 귀에 하나 얼굴에 하나 뭐가 다른데.
- 편견 덩어리네... 피어싱 했다고 다른사람 되는거 아닌데./ 알면서 못받아들이는 내가 한심해.
딸아이는 사실 몇 해 전부터 운을 띄우며 살살 간을 보았다.
이미 대학도 졸업했고, 성인이 된 이상 자기가 하고 싶은걸 마음대로 하겠다는 생각이 강한데,
그나마 부모를 생각해서, 자기 마음대로 다 하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우리의 반응을
봐가면서 하고 싶은 피어싱이나 타투등에 대해 하소연의 탈을 쓰고 설득을 하곤했다.
그때마다 나는 펄쩍 뛰며 제발~~ 을 외쳤지만, 아이의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나는
언젠가는 딸아이가 자기 하고 싶은데로 다 할 거라는 예상을 하고 있었다.
다만 그 시기를 좀 늦추면, 행여 그 마음이 변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이 있었기에
딸아이에게 좀 더 생각해 보자고 했지만 내 꼼수는 통하지 않는 듯했다.
그동안 나를 많이 봐준 딸아이는 대학 졸업 후 팔 안쪽에 작은 타투를 하고 나타났고
이번에는 피어싱으로 'my life, my body'를 증명하며 내 위산을 분출시키는 중이다.
아침부터 가슴이 찌르르 한건 내 스트레스 수치를 정확히 알려주고 있는 내 '위산과다' 때문이다.
딸아이의 팔에 새긴 타투를 처음 보았을 때는 정말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스러웠었다.
화를 낼까 하는 생각이 잠깐 스치기도 했지만 그건 그냥 내 감정만 표출할 뿐 딸아이와 나의 관계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딸아이를 꼭 안아주고 제발 더 이상은 하지 말자고
부탁했었다. 그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콧볼에 구멍 두 개를 뚫고 상기된 얼굴로 들어온 딸아이를 또다시 안아주며
Please no more...라고 부탁 했다.
'알았어 엄마~' 하고 가볍게 대답하는 말이 믿음은 안 가지만, 그래서 또다시 한다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테지만 그래도 저리 대답해 주니 고맙기까지 하다.
남편도 애써 태연한 척하며 아프지는 안았냐 묻고 별일 아닌 듯이 아이를 대했지만 그의 속도 나만큼
타고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우리는 한동안 딸의 피어싱 이야기를 서로 꺼내지 않았다.
둘 다 아직은 마음 편하게 받아들이고 이야기하는 건 힘들기 때문에......
주변에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다들 한 목소리로 반응을 한다.
" 뭐 어때... 요즘애들 다 하는데, 그게 뭐라고... 다 개성이지...."
남의 자식 이야기라서 다들 쿨병들이 난 건지 아니면 정말 큰 문제가 안된다고 생각하는 건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사람마다 다들 가치관이나 관점들이 다를 테니까...
이제 20대 초반인 딸아이는 지금의 선택을 나중에 후회할지 아니면 계속 타투와 피어싱을
이어갈지 모르겠다. 그리고 아이의 선택에 부모의 의견이 얼마나 영향을 줄지도 알 수 없다.
엄마를 위해서 몇 년만 더 참아줄 수 없냐는 나의 부탁에, 이미 많이 참았고 내 인생이고 내 몸이라고
대답하는 딸아이 말처럼 딸의 선택이고 그녀의 인생이니 아무리 부모라도 선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옛날사람'인 나는 딸아이가 피어싱을 하고 온 날의 이 복잡한 심정을 그냥 넘어갈 수 없어서
이렇게 기록을 해본다.
오늘의 나는 이랬었다.
피어싱을 하겠다며 딸이 나간 뒤 아침부터 위산이 요동을 치기 시작했고
코를 뚫고 점심에 들어온 딸을 보니 위산이 넘처서 속이 쓰렸고,
별거 아니라고 스스로 다독이며 가족과 함께한 저녁에는 입맛을 잃어 밥을 넘기기 어려웠다.
눈물도 조금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