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기름 한 방울의 관계 물리
문득 올려다본 하늘은 먹구름으로 짙다.
볕이 가려 세상도 우중충하고,
기분마저 눅눅하다.
빨래는 마를까, 밥은 해야 하나.
할 일은 많은데 몸은 천근만근이다.
재너머 사래 긴 밭을 매는 기분.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긴 오는 걸까 싶은,
앞날마저 흐려 보이는 날.
그런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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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장마철에 비행기를 탄 적이 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걱정했는데,
막상 비행기가 대류권 위로 올라가자 비는 멎었다.
중학교 때 배웠다.
비행기는 기상 현상이 일어나는 대류권 위를 난다고.
배워서 알고 있어도,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들이 있다.
아래서 보면 캄캄한 먹구름도,
위에서 보면 새하얗다.
인생의 역경도, 슬픔도
그 자리에서 보면 막막하지만
조금만 자리를 틀면 또 다르게 보인다.
‘조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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숟가락조차 들 힘이 없을 때가 있다.
곁에 누운 고양이마저 귀찮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가만히 누운 채로 다정한 사람에게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말할 기력도 없을 것 같았는데
상대의 “여보세요.”를 듣는 순간,
답할 힘이 생긴다.
몇 마디 주고받다 보면
좀이 쑤셔 돌아눕게 되고,
별 얘기도 아닌 말을 투박하게 나누다 보면
목도 마르다.
목마른 사슴처럼, 물을 찾아 몸을 일으킨다.
희한하게 물 한 잔 마시면
숟가락 들 힘이 생겨 있다.
“야, 사실 나 밥 먹을 힘이 없어서 전화했어.”
“잘했다. 그럼 이제 밥 먹자. 뭐 먹을 거야?”
“몰라, 고추장밖에 없어.”
“좋지. 그래도 참기름 한 방울은 넣자.”
그래, 참기름 한 방울은 넣자.
고추장 한 숟갈만 덜렁 떠서 밥 위에 얹었다가도
다정한 이가 시키면
참기름병 뚜껑쯤은 따게 된다.
그러다 보면 밥 한 그릇 뚝딱이다.
뜨신 밥이 일단 들어가면
설거지 정도는 할 수 있고,
설거지 한 김에
내일 먹을 쌀도 불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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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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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인(人) 자는
서로 기대어 선 모습이라 했다.
사랑 애(愛) 자는
손(手)으로 마음(心)을 감싸는 모양이다.
형편없는 이런 내 마음을 가만히 감싸줄 손,
그 손은 내가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다.
그렇게 손을 잡으면
넌 별이 되고,
난 어느새 그 별을 따라
조금씩 움직이게 된다.
먹구름밖에 안 보이던 하늘에
‘너’라는 별 하나 뜨면,
우린 서로의 인력으로
당기고 밀며 움직인다.
조금만 고개를 돌려
너에게 전화를 걸고,
한 방울의 참기름만 있다면
내일도 사람처럼 살 애정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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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하루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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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해.
태풍 속에서 널 건져줄 순 없어도
그 태풍의 언덕에서
별을 보게 해 줄 순 있다.
내가 전능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관계가 널 움직이게 할 테니까.
곧 죽을 것 같아도,
별을 보면 딱 하루는 더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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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에픽하이 노래 가사 중에
제일 와닿았던 가사중 하나는,
돈 내라는 말보다 듣기 싫은 말이 '힘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