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당신의 조표는 무엇입니까

음악으로 풀이하는 사랑, 관계, 철학

by 퇴B


같은 음으로 울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고 해서,

우리가 완전히 공명하고 있다고 착각하지 않는다.


당신이 더블플랫인지, 더블샵인지, 혹은 온음으로 울고 있는지는

당신이 살아온 인생의 조표를 읽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지금 당장의 공명이 아니라,

오래도록 한 악보 안에서 함께 연주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수록 나는 당신이 지나온 과거가 궁금하다.


그건 당신의 과거가 지금의 한계를 만들었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과거가 만들어낸 당신의 흐름을 알고 싶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인생에 붙은 조표를 읽어주지 않는 사람에게

지금 내가 더블샵 파인지, 온음 솔인지를 설명하는 일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에겐 지금의 음가만이 중요할 뿐이다.


그러나 나는 온 힘을 다해 내지른 더블샵이 당신이라고 착각하거나,

삶의 고비에서 속절없이 꺾여버린 더블플랫이 당신이라고 안심하고 싶지 않다.

나 역시 생의 흐름 속에서 임시표처럼 누덕누덕 삶을 이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언제나 나는 원래의 음가를 되찾고 싶었다.

그리고 당신도 그러하리라 믿는다.


그러므로 당신의 조표를 읽어내는 일,

그게 내가 당신을 계속 만나고 대화하는 이유다.


인생이 혼돈의 불협화음 속에 번뇌할지라도

나만은 당신의 음을 정확히 들어주고 싶다.

그래야 나 또한 내 소리자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설사 당장은 듣기 싫은 고성이 오갈지라도.


온당한 서로의 음가일 때,

우린 어쩌면 서로 화음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무서워서

당신이 까치발로 서서 내내 불안하기를,

혹은 고개도 들지 못할 무게감에 고꾸라지기를

강요하기엔 내가 당신들을 너무 사랑한다.


만약 우리가 여기서 안녕이라 하더라도,

내게 알려줬으면 좋겠다.

당신들의 조표와, 당신들의 온당한 소리자리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