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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수건을 건네는 손과 수건을 받는 손. [행복수건] 박스는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체육관에 들이찬 락스와 땀 냄새, 미끄러운 바닥과 싸우는 운동화 소리. 일정하게 세연과 수희 앞에서 줄지어 수건을 가져가던 선배들의 호흡, 말소리까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가득 세연의 귀로 들어선다. 세연을 떠난 행복이 손을 툭 치고 간다. 어떤 이의 손인지 알고 싶지 않아 흰 수건으로 눈을 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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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수건입니다. 잠시만요. 민혜의 볼과 어깨 사이에 자리 잡은 핸드폰은 눈치가 없다. 한민혜 여사의 집에서 가게까지 거리는 짧지만 사이에 이빨이 많은 계단을 지니고 있다. 갈 때는 내려왔고, 지금은 큰 호흡을 뱉으며 올라가는 중이다. 수건에 적어 보내는 일을 하는 민혜는 모르는 전화도 통화 버튼을 누르고 자신을 먼저 행복수건이라 소개해야 했다. 가방에서 유성매직을 꺼내 메모할 곳을 찾아 봤지만, 민혜의 얼룩덜룩한 손바닥 말고는 자리를 찾지 못했다.
돌찬지용이요. 문구는요?
세연아 태어나줘서 고마워.
세가 어떤 세일까요? 세상 할 때 세.
세상 할 때 세. 세를 다시 한번 손에 그려 넣는다. 제가 지금 외부라 추가요금은 오늘 중으로 문자로 넣어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3일 안으로 가능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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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연. 이름표가 붙어있는 사물함 앞에 텅 빈 행복수건 박스를 든 세연이 서있다. 평범한 박스 하나만 있으면 됐던 건데,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심부름을 했다. 수건을 나눠주다 보면 비워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위액만 남은 빈 속이 꼬인 느낌이다. 수건을 하나씩 나눠줄 때마다 위는 인상을 쓰고 주름을 만들었다. 빈 박스를 들고 탈의실에 도착했을 때는 몸을 움츠린 채로 잡히지 않는 위의 주름을 손으로 눌렀다. 이 공간에 들어선 순간부터 인상을 필 수 없었다. 한세연을 열어 박스 안에 뭐라도 채워본다. 사물함 문이 덜렁거리며 낡은 쇳소리가 길게 울린다. 운동화, 붕대, 전공 서적. 한세연을 쓸어 담는다. 훅 끼치는 비릿한 냄새에 멀미가 난다. 세연은 땀냄새라도 벗어던지고 싶은 충동에 사물함 깊숙이 있던 예비복을 꺼내 코를 박는다. 코끝에 닿는 이곳이 아닌 향에 세연은 탈출하듯 입고 있던 운동복을 급하게 목 끝까지 올린다. 세연의 손을 툭 치는 사물함 문이 이번엔 차가운 쇳소리와 함께 셔터 소리를 뱉어낸다. 역한 소음은 세연의 귀와 식도를 타고 위에 들이찬다. 셔터 소리는 위의 주름 하나하나를 누르다 뇌까지 끓어올랐다. 뒤집힌 채로 쓰인 옷은 세연의 코와 입을 막는다. 옷 위로 세연의 얼굴 윤곽이 희미하게 비쳤다가 일그러진다. 숨을 들이마시는 방법을 적어두고 싶지 않아 졌다. 사물함에 머리를 넣고 끓어올라 타버린 뇌를 두고 도망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