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 Dec 10. 2021

지도교수를 갈아치우다

내 인생 차악과 최악의 지도 교수

내가 다닌 대학의 학부생들은 졸업 논문을 두 가지 형태 중 하나로 써서 낼 수 있다. 하나는 스스로 정한 주제에 관한 다양한 논문을 읽고 그 내용들을 정리해서 나름의 결론과 함께 제출하는 형태이고 다른 하나는 실질적인 연구에 참여해 그 연구에 관한 논문을 쓰는 것이다. 보통 졸업 후 취업을 생각하는 학생들이 전자를 많이 선택하고 대학원을 생각하거나 연구 관련직을 생각하는 학생들은 후자를 많이 선택한다.


나는 대학원을 생각 중이었고 미래에 연구직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후자의 논문을 쓰고 싶었다. 졸업 논문을 위한 연구는 보통 1년 정도 하기 때문에 일찍부터 지도교수를 찾고 연구를 시작해야 했다. 학교에서 따로 학부생들을 위해 연구 자리를 소개해주지 않기 때문에 개인이 교수들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내고 발품을 팔아가며 연구 자리를 찾아야 했다. 거기에 우리 학교는 학부생들의 연구 참여 비율이 높아서 경쟁률이 만만치 않았다. 나도 몇 번의 퇴짜를 맞고 3학년 여름 겨우 한 자리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나보다 1년 먼저 들어와서 연구를 이끌고 있던 학부생 한 명이 있었고 지도 교수도 착해 보여 괜찮은 자리에 들어왔다고 생각했다.


그 착각이 깨지는데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학부생이 연구를 이끌고 있다는 것부터 이미 탈출각이었는데 생초짜인 나는 그 시그널을 잡지 못했다. 지도 교수는 학부생의 연구에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고 박사 과정 학생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그나마의 박사 과정 학생도 얼굴 보기가 힘들었고 지도 교수의 모든 관심은 지역 고등학생들의 연구 활동들이었다. 연구와 관련된 대부분의 배경지식과 기술들은 같은 학부생에게 모두 배웠고 그나마도 그 친구는 스스로 모든 논문 작업을 하느라 항상 피곤에 절어있었다. 연구를 시작한 지 보름쯤 되었을까 그 친구는 나에게 소중한 충고를 해줬다. 


"이제 분위기 좀 알겠어? 도망갈 수 있을 때 도망가. 나처럼 너무 멀리 와서 돌이킬 수 없기 전에."


여름방학이 끝나고 나는 정중히 다른 연구도 해보고 싶다고 설명한 뒤 그 연구실을 나왔다. 교수도 딱히 나에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조금의 아쉬움도 없어 보였다. 그렇게 다시 새로운 자리를 찾기를 몇 개월, 겨울 방학이 시작하기 전 새로운 교수를 만날 수 있었다. 연구가 활발한 교수였고 몇 번의 미팅에서 나에게 관심도 많아 보였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연구를 진행시킬지 계획을 세우는 걸 보고 이번엔 느낌이 좋다고 생각했다. 내 생에 최악의 지도 교수를 만난지도 모르고.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한 건 겨울방학이 끝난 뒤였다. 이걸 연구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하다. 이 교수와 지낸 4개월 동안 한 거라곤 논문 읽고 질의응답 뒤 욕먹은 것뿐이다. 매주 월 수 금요일엔 교수와 미팅이 있었다. 1대 1 미팅은 아니었고 이 교수의 모든 학생들과 함께하는 미팅이었다. 모두 한 자리에 모이면 지도 교수가 한 명 한 명의 연구를 확인하고 질문하고 다음 계획을 세우는 등의 일들을 했다. 나는 항상 1번 타자였는데 그 의미는 내가 끝날 때까지 나머지 학생들은 내가 끝나기를 한 없이 기다리며 내가 지도 교수에게 와장창 깨지는 모든 모습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미팅룸을 따로 잡은 게 아니라 학과 건물 복도 중앙에 마련된 쉼터에서 미팅을 했기때문에 지나가는 다른 학생들이나 교수들의 시선을 함께 견뎌야 했다,


이제 막 연구를 시작했을 때는 당연히 연구에 관한 배경지식을 쌓기 위해 관련 논문들을 읽는다. 그전까지는 이렇게 깊은 논문들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내용 파악 조차 힘들 때가 많았고 논문의 대부분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사실 지금도 그다지 여유 있지는 않다) 그러다 보니 지도 교수의 관련 질문들에 대답하기 힘들었고 지도 교수는 그때마다 나를 비난했다.


 "이건 정말 기본이야. 과학 비전공자들도 아는 거라고." 

"(한숨) 기초물리 수업 듣기는 했니? 수업 패스는 했어?"

"이걸 모른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지금 수업 듣는 건 이해가 가?"

"우리 학교 어떻게 들어왔지? 이건 고등학생들도 아는 거야."


처음엔 나의 발전을 위한 따끔한 훈계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나는 더욱 불타올라 공부했고 예상 질문들을 뽑아 빼곡히 답변을 준비해 가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엔  당당히 대답을 하다가도 교수의 끝까지 파고드는 질문에 결국 한계에 도달하고 그러면 나는 다시 엉터리 답변을 하거나 아예 답을 못할때가 많았다.


일주일에 3번 남들 앞에서 욕먹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가지다 보니 내 몸이 먼저 반응하기 시작했다. 우선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고 매일 밤 불면증에 시달렸다. 겨우 잠들어도 마세한 소리에 금세 깨버렸고 미팅 시간이 다가오면 심장이 두근거려 미쳐버릴 것 같았다. 미팅에선 손을 벌벌 떨었고 항상 얼굴이 새빨개져서 미팅을 끝냈다. 미팅이 끝나고 방에 돌아오면 혼자 울기도 정말 많이 울었다. 내가 너무 멍청해서 천체물리는 내 길이 아닌 것 같았다. 그만두고 싶었고 머리도 나쁜 게 괜히 욕심부려 미국까지 나온 벌을 받는구나 싶었다. 당연히 대학원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내가 어떻게 감히 대학원을 가나 절망했다.


그렇게 몇 달을 지내다 보니 어느 순간 깨달았다. 아 이러다 내가 죽을지도 모르겠다. 자의든 타의든 나는 분명히 죽을 것 같았다. 내가 정말 소질이 없어서 천체물리를 때려치우더라도 이곳을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벗어나겠다고 생각하고 나니 점점 새로운 생각이 뻗어나갔다. 내가 정말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할 만큼 바보 멍청이인가. 내가 바보 멍청이 일지언정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창피를 당해야 하나. 내가 여기서 이렇게 힘들게 버티고 있을 이유가 없다. 나는 내 기준에서 항상 최선을 다하면서 내 할 일을 하면 된다. 이건 이제 그만두자.


하지만 그전에 딱 한 번 더 용기를 내보고 싶었다. 미팅이 시작하기 전 지도교수와 1대 1 면담을 신청했다.


면담에서 지도교수에게 물어봤다. 내가 연구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조금 버겁다. 연구를 하고 싶은데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지도 교수는 단호했다. 졸업논문은 문헌 조사 정도의 수준으로 어떻게든 졸업은 할 수 있지만 연구는 절대 못한다고. 네가 정말 연구를 하고 싶다면 내가 좀 더 열심히 도와주겠다 라고 했다. 앞의 말에 조금 자존심이 상했지만 나는 마지막으로 교수의 뒷말에 희망을 걸었고 알겠다 좀 더 열심히 해보겠다고 말한 뒤 다시 미팅에 참석했다.


그날 교수의 질문들은 더 날카로웠고 비난은 더욱 거셌다. 다른 날 보다 더 집요하게 질문했고 더 오랜 시간 비난하며 날 붙잡았다.


아 더 열심히 도와준다는 게 이런 거구나.


그날 저녁 교수에게 그만두겠다는 이메일을 보냈다. 다음날 따로 이야기 하자는 교수의 말에 얼굴을 마주 보고 그만두겠다고 말하고 교수의 연구실을 나왔다.


며칠을 쉬었고 그동안 다시 일어날 힘을 충전했다. 이 교수를 완전히 끊어 내고 나니 바닥을 치던 자존감이 조금씩 차올랐다. 나는 그렇게 모욕을 당할 사람이 아니었는데. 내가 부족할지언정 그런 취급을 받을 사람이 아닌데. 다시 도전할 거다, 보란 듯이 연구 활동으로 졸업 논문을 쓰겠다 라고 다짐했다.


무계획으로 연구실을 나온 것 치고 다음 연구실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한참 힘들 때 조언을 구했던 다른 교수가 있었고 그 교수의 추천으로 새로운 교수를 찾아갔다. 결론만 말하자면, 활발하게 연구활동을 할 수 있었고 그 활동으로 졸업 논문을 냈으며 내 연구 결과들을 담아 학계에 논문도 제출했다. 후일담이지만 새로운 교수는 처음 내가 찾아왔을 때 더 이상 학생을 받을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일단 찾아온거 이거 한 번 공부해보라고 던져준 일에 A부터 Z까지 준비해오는 걸 보고 나를 받아줄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나를 괴롭히던 교수의 영향이긴 했지만 하나도 고맙지 않다. 그가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든 이건 내가 해낸 일이고 그는 내 인생에 빌런이었을 뿐이다.


재밌는 것은 스웨덴에서 석사과정 중에 그 빌런 교수를 만난 일이 있다. 우리 학교는 매 주 1명 다른 학교에서 사람을 초대해 강연을 열었는데 초대 강사 중 한 명이 그 빌런 교수였다. 강연이 끝나고 고민하던 나는 인사라도 하러 갔다. 내가 어디 학교를 나왔는지 학과 사람들 대부분이 알았고, 그 학교의 교수가 이번 강연에 초대됐다는 것도 대부분이 알아서 인사를 안 할 수 없었다. 인사는 간단하게 습관처럼 입에 배어 있는 말을 내뱉었다.


"안녕 오랜만에 보내. 이렇게 보니 반갑다."


교수는 의외라는 듯 대답했다.


"네가 그렇게 말해주니 정말 고마워. 나도 다시 보니 반갑다."


자기도 알았나 보다 내가 웃으며 인사를 건넬 관계가 아니라는 걸.

매거진의 이전글 수강 신청할 때만큼은 누구보다 용감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