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1
기저질환이 있으면 일상생활이 조심스러워지게 마련이다. 꼭 자신이 아니더라도 가족중에 누군가가 그렇다면 온 가족 구성원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살게 된다.
우리 아버지는 당뇨 30년, 암 15년 경력자라, 조심하는 쪽으로는 잔뼈가 굵은 분이다.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기, 백신 덕도 있겠지만, 아버지에게 내가 코로나를 옮기는 주범이 될 수 없다는 심리적 마지노선이 있었기에 스스로 감염되지 않고 잘 버텨왔다.
주변에서 가까운 이들이 코로나에 감염되면 나는 위로랍시고, ‘넘어진김에 쉬어가는거지 뭐, 이참에 휴가받은셈 치자’라고 말하곤 했다. 언제나 이놈의 가벼운 입이 문제다. 죄 값이라도 치루는 양 우리 부부에게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찾아왔다.
옮았다고 하지만 누가 누구에게 옮겼는지는 사실 알 수 없다.
감기 몸살이라도 한 5일쯤 지속되면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목소리는 왜 이모양인가, 가래는 왜 하얀색일까 갖가지 생각들 가운데 쇼파 위로 하루가 흘러갔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고나자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혼자서 가게를 운영하는 친구는 꼼짝없이 며칠 동안 개점휴업이었고, 작은 회사에 다니는 친구는 격리와 상관없이 괜찮아지면 알아서 출근하라는 상사의 지시를 들었다고 한다.
나는 그나마 유급병가를 쓸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할까?
파키스탄은 국토의 1/3이 홍수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듣는 것 만으로는 도무지 피해의 규모를 짐작할 수 없다. 코로나 감염이든 홍수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그 피해의 농도는 각자에게 다른 것 같다.
나는 정확히 일주일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 일상으로 돌아왔다.
감염과 상관없이 흘러가고 있던 평온하고 단단한 일상의 바닥으로 연착륙 할 수 있었다.
비록 콧물은 계속 목 뒤편으로 넘어가고 있지만.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남들보다 조금 더 조심해야 한다. 어떤 당뇨환자는 근처까지 바짝 다가온 죽음을 잠시 외면하고 술과 담배를 한다. 자기 선택이고 스스로 감당할 일이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와 노력, 태어난 체질과도 상관없이 언제나 더 큰 위험을 감수하고 살아야한다면,
연착륙이 불가능 할만큼 활주로가 흙바닥이라면,
누군가 아스팔트까진 아니라도, 바닥을 다지려는 시도 정도는 해줘야하지 않을까?
넘어진김에 나의 업(業)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