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목욕

사는 이야기 #2

by 제이비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도 벌써 2년이 가까워진다.

그는 마흔에 결혼했고 마흔한 살에 아들 하나를 낳았다.


믿음직한 가장이었으나, 아버지 노릇이 영 서툴렀다. 남편 노릇이라고 능숙했을 리 없지만, 요령을 피우지도 않았고, 책임을 미루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아주 어릴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나는 친할아버지 할머니의 얼굴을 모른다. 어쩌다 거기까지 알게된 오랜 지인이 나에게 말해주었다. '너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와 지냈던 경험이 없으니 어린 너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잘 몰랐을 수도 있다고' 일리있는 이야기다.


인생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좋은 면만 보여주는 사람은 속에 딱 그만큼의 어둠이 있게 마련이다. 아버지는 나에게 좋은 점이 더 많은 사람이다. 과하게 유쾌한 적도, 깜짝 파티도 없었지만, 어둠도 없었다. 술을 좋아했지만, 거하게 취해서 돌아온날은 그저 조용히 잠드는 것이 주사였다. 나도 그렇다.


아버지는 50대에 접어들면서 당뇨와의 오랜 싸움을 시작했고, 얼마 안 있어서 여러 종류의 암들이 꼬리를 물고 찾아왔다. 나쁜 일은 대개 같이 온다.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해 불평과 불만을 입에 담지 않았고, 그 당시 나는 그것이 얼마나 힘든 자기통제의 산물인지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70이 되기전에 시한부 판정을 받았던 그는 죽기 전 소원이라고 공언했던 아들의 결혼식에 말끔한 양복을 차려입고 참석했다. 아픈 사람 같지 않았다. 얼마 안 있어, 한 점 망설임도 없이 성공 확률이 1할도 되지 않는 수술을 선택했고, 아무 의심도 없이 수술실로 들어갔다가 보란듯이 돌아왔다.

이후 20년이 넘도록 병원을 오가며 자신과 싸워온 그는, 신기하게도 명절이 되면 입원을 반복하고 고통으로 가득한 시술을 밥 먹듯이 받으면서도 아들에게 하소연 한 번을 하지 않았다.

다만 본인의 와이프에게는 숱하게 역정을 냈다고한다...나중에 들은 이야기다.


2023년, 아버지는 요양병원에 갔지만, 그에게는 첫날부터 감옥이었다. 그는 자기 집에 살고싶어했다.

나는 사회복지사로 평생을 살아왔지만 정말 다른 방법이 없어 그의 소원을 들어줄 수 없었다.

그리고 약 한 달간의 내적 갈등과, 주 보호자인 어머니의 각오를 담보로 아버지가 퇴원했다.


희망찬 길이 아니었으나, 아버지는 퇴원 당일 마주친 모든 병원 사람들과 웃는 얼굴로 인사를 나눴다.

그날 아버지는 몹시 신났다. 집돌이도 그런 집돌이가 없다. 나도 그렇다.


곡절 끝에 요양병원에서 탈출할 수 있었으나, 직면할 수밖에 없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그는 평생 하루에 두 번씩 샤워하고 매주 목욕탕을 가던 깔끔한 남자였는데, 병원이 아닌 집에서는 그 모든 것이 불가능한 미션이다.


그때 내 인생의 궤적에 대해 좀 진지하게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이동목욕 담당자로 사회복지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말이 좋아 담당이지, 그 당시엔 내가 때밀이인지 사회복지사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일상을 한동안 보내야 했다.

밥푸는 사람인지, 택배기사인지...그때는 참 고민도 많았다.


결과적으로 ‘전문가’에게 아버지의 목욕은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옷을 어떻게 벗겨야 하는지,

욕조에 힘없는 사람을 어떻게 옮겨야 하는지,

물 온도는 어때야 하는지,

목욕은 어느 정도 수준에서 안전하게 할 수 있는지.


그 모든 것들은 다행히 오랜시간이 지난 뒤에도 몸에 각인되어 있었다. 마치 예비군이 훌쩍 지난 뒤에도 소총 정도는 두세번 만져보면 익숙하게 다루는 것 처럼


아버지는 일주일에 한 번씩 주말마다 집에서 나와 함께 목욕했다.

씻기면서 매번 온몸으로 삶의 종착지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는 그를 느꼈다.

직면하고 싶지 않지만, 모를 수가 없는 그 몸짓과 눈빛.

목욕을 세 번 하는 동안 그는 점점 더 힘을 잃어갔고, 그를 씻기는 방법도 매번 달라져야 했다.


물이 차다.

욕조에 5분만 더 들어가 있겠다.

눈이 따갑다.

비누칠을 살살해라

머리는 좀 빡빡 감겨라......


어린시절 그렇게 싫어하던 아들을 매주 일요일 아침 목욕탕에 데려갔던 그는,

한마디 하소연도 하지않다가, 40년이 지난 후에야 나에게 맨몸으로 투정을 부렸다.

우리는 비로소 입장이 바뀌었다. 그리고 그 상황이 묘하게 기꺼웠다. 아버지와의 어떤 기억보다도, 마지막 3주, 세 번의 목욕이 선명하다.


사십 대 후반에 만리타국 건설 현장으로 모험을 떠나는 배짱과,

의사가 하지 말랬다고 그 날로 술과 담배를 끊는 단호함을 함께 지녔던 그는,

평생을 과묵한 소시민으로 살아온 끝에,

병원이 아닌 본인의 집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생을 마쳤다.


혹시 잊을까, 기록으로 그를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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