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20년차 사회복지사 #2
복지관에서 일하다보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더라도 어느정도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을 분류해서 보게 되기 마련입니다. 후원자, 자원봉사자, 이용자.....
역할구분이 필요할수도 있고, 관에서는 늘 숫자를 요구하는지라, 일하면서 이들을 마음속으로 나눠보는 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일입니다. 하다못해 후원자 명단이 있어야 감사 편지를 보내고, 자원봉사자 실적이 있어야 인증서를 발급하며, 이용자의 서비스 이용 기록이 있어야 우리의 일을 증명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결국 깨달은 것은, 우리가 그들을 구분 지어 부르는 순간 그들의 역할도 딱 그 이름 안에 갇히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이름은 대상을 최대한 단순하게 규정하고 경계를 짓는 도구이기 쉽습니다. 그리고
복지는 어찌보면 이러한 경계들을 허물어나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이 구분은 사람을 위계적으로 만들기 쉽습니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후원자와 자원봉사자를 '주는 사람(Giver)', 이용자를 '받는 사람(Receiver)'으로 설정합니다. 주는 사람은 선하고 힘이 있으며, 받는 사람은 약하고 수동적인 존재라는 틀이 작동하는 순간, 수평적인 관계는 어려워집니다. 복지관에 오는 어르신이 단순히 '서비스 이용자'로만 규정되면, 그는 평생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는 존재로 남습니다. 다르게보면 그분이 일상적으로 동네 아이에게 주전부리를 건넬 때, 이미 훌륭한 후원자이자 자원봉사자입니다. 우리가 씌운 '이용자'라는 이름이 그분의 가능성을 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지역사회에서 삶은 역할극처럼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어제 도시락을 배달받았던 분이 오늘은 동네 청소에 나설 수 있고, 매달 후원금을 내시던 사장님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상담이 필요해질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삶은 유동적인데, 복지관의 행정체계와 사회복지사들의 무의식적인 분류가 그들을 고정된 칸막이 안에 가두려 합니다. 복지관의 어떤 주민 모임에서는 도움을 받던 분들이 모여 반찬을 만들고, 오히려 지역의 더 어려운 분들을 돕는 주체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들을 이용자라고 불러야 할까요, 자원봉사자라고 불러야 할까요? 그들은 그저 관심을 가지고 서로를 돌보는 '주민'입니다.
사회복지사들의 '조직화'에 대한 개념규정이나 생각들은 정말 제각각입니다. 그리고 정말 많은 복지사들이 단순 서비스 말고 조직화를 해보고싶다고 합니다. 그런데 방법론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너무 추상적이거나 관념으로 가득하기 일쑤입니다.
'복지관이 다 해주는 곳'이 아니라 '주민이 서로를 돕는 곳'이 되면 좋겠습니다. 후원자와 이용자와 봉사자를 엄격히 구분하면, 복지관은 영원히 중간에서 물건을 전달하는 배송원 노릇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면, 주민과 주민이 직접 만납니다. 이용자가 자원봉사자가 되고, 후원자가 이웃이 되는 순환이 일어날 때, 비로소 건강한 생태계가 만들어집니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진정한 의미의 주민조직화이자 지역복지가 아닐까요.
'복지관을 여러 측면에서 적절하게 도울수 있는 자생적 주민조직'이란 사실은 신기루 같은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지역자체를 살리기 보다는 복지관이 해야할 일을 더 쉽고 편하게 하기 위한 발상이기 쉽습니다.
우리가 필요할때 언제든 부를수있고, 언제나 힘을 보태어주는 사람들은 복지관으로 인해 조직화된 것이아니고 원래 주변에 관심이 많은 선한 사람들입니다. 세상에 그렇게까지 일방적이고, 형편 좋은 일은 안타깝게도 자주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일하는 중간 중간 "이분은 도시락 받는 분"이라고 단정 짓기보다 "이분은 우리 동네에 살고있는 김복동님"이라고 불러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형편과 상황이 다를 뿐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