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20년차 사회복지사 #3
일하면서 매일 마주하는 것은 '정답이 없는 문제'들입니다. 교과서에는 윤리 강령이 적혀 있고 지침에는 절차가 명시되어 있지만, 막상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의 삶은 그 틀 안에 깨끗하게 담기지 않습니다.
우리는 늘 '경계'에 서 있기 쉽습니다. 어떤 날은 규정을 지키는 것이 사람을 외면하는 일이 되고, 뭔가 더 해보려면 규정을 살짝 넘어서야 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이때 내 안에 단단한 가치관이 서 있지 않다면, 우리는 사람을 서류나 일감으로 대하거나, 감정에 치우쳐 원칙을 잃고 헤매게 됩니다. "이 선택이 과연 그의 존엄을 지키는 길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지는 과정이, 그 경계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해줍니다.
일이 고되고 반복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앞에 앉아 있는 어르신이 '한 사람'이 아니라 '처리해야 할 사례 1건'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효율성을 따지고, 빨리 상담을 끝내고 실적을 채우고 싶은 유혹이 듭니다.
내가 만나는 분이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고, 고유한 역사를 가진 유일한 존재임을 기억해 내는 과정이 없다면 나의 태도와 성실을 유지하기 쉽지 않습니다.
현장은 때로 우리를 무력하게 만듭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현실, 쏟아지는 민원, 성과를 요구하는 압박 속에서 우리는 지쳐갑니다. 어떤 직업은 닥친 고난에 대하여 물질적 보상이 있을수 있겠으나, 우리 일은 그런식으로 위안하기 어렵습니다. 이때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은 외부의 칭찬이나 급여가 아니라, "내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내 안의 확신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명확히 되새기고 있다면, 비록 당장의 결과가 아쉽더라도 포기하지 않게 됩니다.
단, 그 과정에서 숫자가 목적이 되기 시작하면 일이 좀 이상해집니다. 줄 서 있는 100명에게 빵을 나눠주면 한 시간 만에 실적 100건을 채울 수 있습니다. 가정방문을 가는데 가기전에 전화하고, 후원품을 들고 가면 갑자기 실적이 3건으로 불어납니다. 방문, 모니터링, 후원품전달까지 별도로 일지를 씁니다. 그런데 한 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눠도 실적은 1건입니다. 숫자로 증명하기엔 맥빠지는 일입니다.
가치기반으로 하는 일에 숫자와 성과와 실적을 요구하는 것은 어찌보면 무리한 요구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동일한 시간과 노력으로 쌓이는 숫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측면에서 보면 국민의 세금과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조직에 속해 있기에, 우리가 한 일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 증명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목표를 달성하고 실적을 채우는 것은 기관의 존립을 위해, 그리고 내 월급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빵을 주는것도 모니터링도 상담도 모두 우리가 해야할 일입니다. 그리고 사회복지사 당사자만이 자신이 얼마나 일하고 있는지, 혹은 어떻게 일해야하는지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가치와 윤리는 평소에 잘 보이지 않지만 결국 우리를 지탱하는 유일한 도구일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어떤 사회복지사인지는 내가 가장 잘 알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