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나는 말을 줄이기 시작했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들을 좋아하게 되었고 이해받기 위해 애쓰는 마음을 조용히 거둬들였다. 어떤 날은 하루가 아주 느리게 흘러간다. 차를 우려내는 손길이 물보다 먼저 시간을 데우는 것 같고 고양이가 창문 틈으로 들어온 햇살에 몸을 눕히면 그 작은 숨결 하나로도 방 안이 가득 찬다. 그럴 때면 문득 내 안에 있던 소란들이 가만해진다. 무언가를 설명하려던 마음도 누군가를 향해 내밀던 말들도 그저 조용히 제자리를 찾아간다.
나는 ‘공’이라는 단어를 자주 떠올린다. 비어 있다는 건 텅 비고 허전하다는 말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안에는 말을 꺼내지 않아도 되는 깊이가 있었고 애써 무언가를 채우지 않아도 되는 너그러움이 있었다. 공은 때때로 앉아 있는 나를 그대로 두는 힘이 된다. 아무 말 없이도 함께 있는 것처럼 어느 문장도 끝까지 쓰지 않아도 괜찮은 것처럼 비워진 자리 안에서 나는 조금씩 내 마음을 찾아간다. 책상 한쪽에 쌓인 메모들 읽지 않은 책 위에 내려앉은 먼지 누구도 보지 않았지만 그 안에만 존재하는 풍경들 그 조용한 틈 속에서 나는 나를 조금 더 느리게 들여다본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이 조용히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걸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마음은 알고 있다.
비워진다는 건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일이었다. 너무 많은 것들이 겹쳐져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 말들이 쌓여 있으면 들리지 않던 목소리 그 모든 것이 비워졌을 때 비로소 나타났다. 나는 가끔 관계 속에서도 공을 떠올린다. 함께 있는 동안 무엇으로 채우려 했던 마음이 있었음을 서로를 이해시켜야만 가까워진다고 믿었던 순간들을 이제는 조용히 놓아본다. 말을 줄이고 설명을 멈추고 침묵으로도 충분했던 날들을 돌아본다. 어쩌면 가장 가까웠던 순간은 아무 말 없이 같은 창밖을 바라보던 그때였을지도 모른다. 그 자리엔 의심도 설득도 없었고 그저 머물러 주는 마음 하나가 전부였다. 공은 관계의 틈을 가르치고 공은 존재의 빛을 여는 길이 된다.
내가 나를 너무 바쁘게 채우고 있을 때 사람들의 목소리에 휘둘리며 나를 잊고 있었을 때 공은 조용히 내 어깨를 두드렸다. 괜찮아 지금은 멈춰도 돼 비워도 돼 사라지지 않아. 그러고 보면 신앙도 그런 것이었다. 꾹꾹 눌러 외우던 기도문이 아니라 가만히 머물러 있는 시간 속에서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건네는 부르심. 하느님은 언제나 가장 조용한 공복의 순간에 나를 만나주셨다. 나는 이제 조금 알게 되었다. 무언가를 열심히 채워야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걸. 오히려 다만 그대로 비워진 채 있는 그대로 앉아 있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걸. 공은 그래서 없음을 말하는 단어가 아니라 깊이를 품은 단어다. 그 안에는 여백이 있고 그 여백은 또 하나의 풍경이 된다. 그리고 나는 그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으로 조용히 살아간다.
사랑 역시 공과 닮아 있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을 비워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 말을 줄이고 내 욕심을 접고 내 방식대로 이해시키려던 마음을 내려놓아야 그 사람의 결이 보이기 시작했다. 함께 있어도 되지만 떠나도 되는 자리 그가 고요히 숨 쉴 수 있도록 마련해둔 한 칸의 여백 같은 마음 거기에는 매달림도 간청도 없고 다만 너그러움만 남는다. 사랑은 그렇게 점점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조심스레 비워지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 사람이 웃으면 기쁘고 그가 멀리 있어도 안심되며 그의 시간과 내 시간이 꼭 포개지지 않아도 서운하지 않은 마음 오히려 멀어질수록 더 깊어지는 신뢰 그런 사랑은 끝내 비워진 자리처럼 평화롭다. 그 자리에 나는 조용히 등을 돌리고 앉아 바라본다. 그가 돌아오든 머물든 사랑은 이미 그 안에 깃들어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