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내린 삶 앞에서
과거의 오늘을 보니, 오늘이 바로 제주 입도 9년차 되는 날이다. 실로 만감이 교차한다. 서울에서 60평의 살림을 정리하고 이민 가방 두 개로 짐을 줄여 비행기에 올랐던 그날을 나는 잊지 못한다. 제주공항에 내려섰을 때, 내 마음엔 세 가지 감정이 뒤엉켜 있었다. 설렘, 두려움, 그리고 타오르는 열정. 나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 차를 몰고 한라산이 보이는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가장 거룩해 보이는 곳에 차를 세워, 대지에 고개를 깊게 숙이고 절을 했다. 땅에 입을 맞추며, 나는 이방인임을 고백하고 이 땅에 무사히 살아가게 해달라고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정말 힘들 때면 나는 바다로 가서 하소연했고, 진짜 모르는 일이 생겼을 땐 사람에게 묻지 않고 언제나 자연에게 물었다. 내가 자연을 존중하니, 자연 또한 나를 지켜주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한 고마움의 연속으로 나는 여기까지 왔다. 나는 제주 2만여 평의 대지 위에 클래식 음악학교와 예술마을을 세우기 위해 내려왔다. 준비 기간만 2년이 걸렸고, 일은 무사히 흘러가는 듯했다. 그러나 어느 날, 사드가 내 앞길을 가로막았다. 거액의 투자가 눈앞에서 사라졌고, 그때의 참담함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서울의 지인들은 다시 돌아오기를 권했다. 제주에서 생고생하는 나를 걱정해주는 그 애정 어린 마음은 받았지만,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다.
매일같이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내 존재를 증명해야 했다. 그러면서 서서히 타인의 평가가 아닌 내가 만족하는 삶으로, 내 삶의 척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제주에 맞게 내 삶을 고쳐 쓰는 연습을 했다. 이주민들보다 현지인과 어울렸고, 제주 말을 남들보다 빠르게 익혔다. 솔직히 말하자면, 제주에서는 생존정신 하나로 버텨야 한다. ‘살아야 한다’는 다짐. 나는 살아내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일들은 “내가 왜 제주에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이유를 나 자신에게 먼저 설득하는 과정이었다. 그것은 뼈를 깎듯 힘들고 고독한 시간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 삶의 목표는 또렷해졌다.
궁극의 내 삶이 향하는 방향이 보이자, 그리되기까지의 모든 어려움은 견딜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조금씩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것이 곧 '진행의 의미'였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그 안에서 단단한 내부의 축이 서서히 세워지고 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것으로 버티고 있다. 이후 나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이제는 세 번째 법인을 준비하고 있다. 어찌 보면, 지금 내가 만들고 있는 ‘더 세인트’는 지난 9년의 제주의 시간이 응축되고 정제된 하나의 결정체다. 이 프로젝트는 단지 사업이 아니라, 삼십 이후, 오십 이후에 내가 살아내야 할 삶의 윤곽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내 일상에서 마주치는 이웃을 사랑하고, 풀 한 포기조차 귀하게 여긴다. 내 삶의 확장과 집중, 선택에 대한 책임, 그 모든 것이 지금 이 현재라는 시간 안에 있다. 나는 다시 두 주먹을 쥐어본다. 살며 참 많은 이들로부터 용기와 힘을 얻었다. 이제는 그 고마움을 내가 기워 갚을 시간이 도래했다. 삶의 용기를 심어주는 사람, 그러한 인간이 되는 것이 나의 소망이다. 오늘도 경화로 향하는 길목에서 푸르게 살아남은 바다를 바라보며, 8년 전 이 섬에 발을 디뎠던 나를 조용히 불러내어 말한다. 그때의 선택은 헛되지 않았노라고. 그리고 지금도 나는 여전히,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