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을 일찍 만났다. 이 문장에서 말하는 ‘신’은 특정 종교에서 말하는 신도 아니고, 교리 속에 자리한 신도 아니다. 신을 믿기 시작한 시기와는 다르다. 내가 말하는 신은, 인간 안에 본래부터 자리한 신성(神性)이고, 우리가 태어날 때 이미 품고 온 영혼의 빛이다. 그러니까 나는 단지 그 신성을 조금 일찍 알아차렸을 뿐이다.
인간은 누구나 신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단지 그 빛이 너무 작거나 희미해 보여서, 혹은 세상의 소음에 묻혀버려서, 그것을 알아차리는 데에 시간이 걸리는 것뿐이다. 어쩌면 대부분은 평생을 살아가면서도 한 번도 자신의 신성을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치기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어떤 절박한 순간, 어떤 감당할 수 없는 통증이나 결핍 앞에서 그 신성의 문을 열어본다. 나에게는 그것이 어머니의 죽음이었다.
나는 남들보다 훨씬 일찍 부모님의 죽음을 경험했다. 아홉 살이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나조차도 알지 못하는 신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그것은 누가 가르쳐 준 기도가 아니었다. 어딘가에서 배운 예식도 아니었다. 단지, 너무 고통스러워서, 너무 간절해서, 어떻게든 이 고통을 멈추게 해달라는 외침이, 나도 모르게 기도의 형식을 취하게 만든 것이다.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고,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애원을 했다. ‘제발…’이라는 그 말 하나가, 내 아홉 해의 모든 생애를 이끌고 나와 그분 앞에 무너진 순간이었다. 그리고 신은 그날, 어머니의 고통을 멈추게 하셨고, 어머니를 데려가셨다.
신은 응답하셨던 걸까? 아니면, 단지 죽음이 예정대로 도착한 것이었을까? 나는 지금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같은 아이가 아니었다. 인간의 고통과 삶의 덧없음, 태어남과 사라짐, 그 모든 근원적인 물음이 나를 집요하게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세상은 왜 이토록 불공평한가. 사랑은 왜 떠나는가. 삶이란 대체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인가.
그 질문들 앞에서 나는 일찍부터 철이 들어버린 아이였고,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는 우주의 문을 혼자 두드려야 했다. 그 문이 열리기를 바라며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홉 살에 단테의 『신곡』을 펼쳤고, 지옥의 칠층산을 마주하며 죽음 이후에 갈 수 있는 어떤 장소가 있다는 사실이 내게 이상한 위안을 주었다. 그것이 천국이 아니더라도, 어딘가 갈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내 상실은 덜 외로워졌다.
그러나 『신곡』은 나에게 너무 큰 책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다시 책을 펼쳤을 때 나는 너무 무서웠다. 인간의 죄와 심판, 지옥의 형벌들을 마주하기엔 내 마음은 아직 순수했고, 순수하기 때문에 더 상처받기 쉬웠다. 나는 책을 덮었고, 그 무거움은 나의 내면 어딘가에 잠복해 버렸다.
그 후 오랜 시간이 흘렀고, 나는 토머스 머튼의 『칠층산』을 만났다. 단테의 칠층산과 머튼의 칠층산이 겹쳐지던 날, 나는 다시 단테의 책을 꺼냈다. 이번엔 조금 다르게 읽혔다. 좀 더 성숙한 눈으로, 좀 더 넓은 시선으로. 그러나 그 무렵 나는 또 다른 질문 앞에 서 있었다. ‘정말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 하는, 차갑고 맹목적인 회의.
삶은 왜 반복되고, 왜 끝이 있는가. 왜 어떤 사랑은 오래가고, 어떤 사랑은 하루도 버티지 못하는가. 죽음은 왜 이렇게 쉽게 오고, 희망은 왜 그토록 늦게 오는가. 신이 있다면, 왜 그토록 침묵하시는가. 나는 그 긴 침묵 속에서 신을 잃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침묵을 통해 신을 이해해가기 시작했다. 신은 응답하지 않을 때조차도, 나를 향해 응시하고 계신다는 것을. 인간의 고통을 해결해주는 존재가 아니라, 그 고통을 통과하도록 옆에 머무는 존재라는 것을.
나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내가 아는 만큼, 내가 겪은 만큼, 내가 고개를 숙인 만큼 신은 내게 조금씩 다가오셨다. 신은 멀리 있는 인격적 존재가 아니라, 내 안에 흐르는 어떤 원형 같은 것이다. 내 마음의 가장 깊은 물결이 멈추지 않는 곳, 그것이 신의 자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묻는다. 지금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 하나가 나를 계속 걷게 하고, 쓰게 한다.
신을 묻는 일은 곧 나 자신을 묻는 일이다.
신을 찾는다는 건, 삶을 사랑하고 싶다는 또 다른 이름이다.
그리고 그 사랑이 너무 아파서, 때로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