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에서 인간을 읽어내다

by 이 경화


인간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만 안다고 정의한다. 우리가 어떤 현상이나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납득하려 할 때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묻는다. “아니, 그래서 그거 네 눈으로 봤어?” “그거 직접 들은 이야기야?” 이 질문은 곧 신뢰하지 못한다는 가장 확실한 방증이다. 신뢰란 보지 않고도 믿는 마음인데 이 질문은 확인되지 않은 모든 존재를 '거짓'으로 몰아간다.


나는 무조건적인 신뢰를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맹신은 때때로 더 큰 허상을 만들고 상처를 남기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확인되지 않는 앎 너머의 진실들까지 모두 "거짓"으로 치부하는 것, 그건 또 다른 오만이다. 세상에는 증명되지 않았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진실이 아닌 것도 아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진실은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않는 것들의 너머에 있다. 우리는 거의 모든 중요한 것들을 직접 겪지 않고도 믿고 살아간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를 사랑했던 시간들, 신의 존재, 한 사람의 내면, 혹은 누군가의 고통… 이 모든 것들은 '너머'에서 온 진실이다. 확인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사라지지 않는.


보지 않으려 했고 부정했던 시간들. 누군가의 철저한 외로운 고통. 그리고 신의 존재까지도, 모두 '너머'에서 온 진실들이다. 우리가 회피했던 순간, 불편해서 외면한 이야기들, 감당할 수 없어서 신을 지워버렸던 기억들… 그 모든 것들은 결코 사라진 적 없고 그저 우리 인식의 바깥, 경험의 경계 너머에 머물러 있었을 뿐이다.


그 의식의 흐름, 공기의 밀도,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읽어내는 힘에 인간의 사유는 존재한다. 우리가 보았던 것, 들었던 것에만 멈추어 있는 사유는 답답하다. 그런 이들은 자신이 보고 듣고 만져보지 않는 것을 이해하는 능력을 잃는다. 그들은 자신의 경험 바깥을 ‘거짓’이라 부르고 타인의 내면을 ‘과장’이라 의심하고 심지어 보이지 않는 사랑마저 ‘허구’로 몰아간다.


어떤 식물도 그 뿌리를 보여주지 못해 5년 동안 오해를 받는 나무가 있다. 바로 까마귀 대나무로 알려진 오죽(烏竹)이다. 오죽은 뿌리를 땅에 뻗는 데만 족히 5년이라는 세월이 걸린다. 그 시간 동안 땅 위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움도 없고 잎도 없고 생의 기척조차 없다. 그러나 그 5년 동안 오죽은 끊임없이 자신을 아래로 아래로 밀어 넣는다. 토양을 만나고 암반을 뚫고 어둠 속에서도 방향을 찾아간다. 그리고 5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뻗어나간 가지에서 작은 움이 튼다. 그 순간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야 자라기 시작했구나.” 그러나 진실은 그 반대다.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그 나무의 생명이 전혀 활동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그 무지가 그 생명을 죽여버릴 수는 없다. 보이지 않는 시간들, 들리지 않았던 움직임이 좁은 시야와 인식과 오해 속에서 우리는 많은 진실과 생명과 움직임을 시체로 만들고 있다. 사실 많은 진실들이 그렇게 우리의 외면에서 하루에도 몇 개씩 죽어나가고 있다.


인간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그 사랑이 상대에게 느껴지지 않고 보이지 않는다 해서 쉽게 판단되어서는 안 된다. 사랑은 때로 뿌리처럼 작고 조용하게, 그러나 굳게 집요하게 뻗어간다. 오죽이 바위도 뚫고 굳은 땅도 헤치며 나아가듯 사랑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 연결로 깊이에서부터 뻗어온다. 그러니 우리는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끊어진 줄 알아선 안 된다.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사랑이 아니라고 함부로 말해선 안 된다.


사람을 읽어낼 때, 아니 애정을 가지려 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뿌리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고 내가 느낄 수 없더라도 상대가 고통과 세월을 이겨내며 뻗으려 노력했던 그 강인한 뿌리를 볼 줄 알아야 한다. 그 실패와 좌절이 뿌리가 되어 서로 얼키고 설켜 단단하게 서로를 지지하고 있는 그 뿌리를 보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줄기와 이파리와 화려한 꽃만을 즐기는 놀이가 절대 아니다. 향기롭고 찬란한 순간에만 머무는 관계는 시간이 흐르고 바람이 불면 가장 먼저 시든다. 사랑은 그 사람의 뿌리까지 내려가서 아직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여전히 땅 밑에서 힘차게 뻗어 나가는 그 진실을 마주하려는 의지다. 말하지 못한 고통, 드러내지 못한 상처, 지나온 시간의 무게까지 껴안으려는 태도에서 사랑은 시작된다. 사랑이란 새싹 하나 피워내기까지 뿌리를 뻗는 그 기다림과 조용한 신뢰의 과정이다. 결국 사랑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도 그 곁에 남아주는 사람의 것이다. 꽃만 탐하고 멀어진 관계는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언제나 흙 속의 고요한 충성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너무 자주, 너무 쉽게 누군가의 사랑을 평가한다. 표현이 부족하다고, 말이 없다고, 감정을 숨긴다고 해서 그 사람의 마음이 얕다고 단정짓는다. 하지만 어떤 사랑은 말보다 오래 잠들어 있었고, 눈빛보다 더 멀리서부터 걸어오고 있으며, 침묵 속에서 더 깊게 타오른다. 진짜 사랑은 드러내지 않아도 자란다. 그것은 이해받기를 강요하지 않고, 대신 끝까지 머물 준비가 되어 있는 마음이다. 사랑은 존재의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시작되어, 바람이 불고 계절이 바뀌어도 사라지지 않는 어떤 감각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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